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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Feb 02. 2023

밀라노 속의 작은 중국

밀라노 카페 이야기

아이들이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걸 확인한 후 발길을 돌렸다. 이른 아침의 공기가 꽤 쌀쌀했다. 평소엔 남편이 출근길에 아이들을 차로 바래다주는데 한국으로 일주일간 출장을 가는 바람에 아침마다 분주한 등교를 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이 그리 큰 일은 아니지만, 버스 한 번, 지하철을 또 한번 타고 가는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안녕 쏘냐, 오랜만이야.”

일본 친구 나오꼬였다. 오랜만에 아침에 만났다.

“응. 오랜만이야. 남편이 한국에 출장을 가서 내가 왔어.”

“커피 한잔 할 수 있어?”

“오! 좋지~”

“어디로 갈까? “

“아델라이드로 가자!”

우리는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아델라이드 카페로 향했다.



학교 앞에는 카페가 2개 있다. 하나는 실외에만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Baarebo bar이고 다른 하나는 부모님의 가게를 이어받아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Adelaide cafe이다.

두 곳 모두 학교에서 가깝기도 하고 지하철 역 근처라서 언제나 손님이 넘친다. 그중에서도 Adelaide cafe는 커피가 맛있기로 유명하다. 지금껏 마셔본 카푸치노 중에 이곳의 카푸치노가 가장 맛있었다.



나오꼬와 함께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나 사람이 많다.

“뭐 마실래? 내가 살게.”

나오꼬가 먼저 선수를 친다.

“응? 아니야. 괜찮아.”

“아니야. 오랜만에 내가 살게. 뭐 마실래?”

“그래, 그럼 다음엔 내가 살게. 난 카푸치노!”



카운터에서 커피를 주문하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처음 이 카페에 왔을 때,

“두에 카푸치노!”라고 주문을 했다. 주인 할아버지는 날 보며

“두에 카푸치노는 없는데?”

라고 말하며 웃고 있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나오꼬가, “두에 카푸치니!”라고 정정해서 말해주었다.

단수와 복수에 따라 명사의 형태가 바뀐다는 걸 몰랐던 내 실수였다.  그때부터 주인 할아버지는 날 보며 아는 체를 하고는 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젊은 중국 남자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가게는 그대로인데 서빙하러 다니는 사람도 중국인, 이탈리안 바리스타 옆에 서있는 사람도 중국인이다.

“여기 주인이 중국인으로 바뀌었대. 바리스타는 그대로인 것 같은데…. “



밀라노엔 이민자가 정말 많다. 길거리 장터에 가면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야채나 과일을 팔고 있다. 아이들을 돌봐주는 베이비 시터는 대부분 필리핀 사람이다.

그리고 중국 사람들은 어딜 가나 있다.  밀라노 시내 잡화점 주인은 대부분 중국인이다. 다이소만큼은 아니지만 소소하게 필요한 물건을 사러 중국인 잡화점에 자주 들른다. 밀라노 시내의 일식집주인도 대부분 중국인이다. ‘옥자’라는 한국 식당 주인도 중국인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Bar를 운영하는 중국인이 가장 많다.


이탈리아에서 사업을 하는 일은 꽤 힘들다. 세금이 매출의 40% 정도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중국 사람들은 어쩜 이렇게 사업을 잘하는지. 심지어 이탈리아 말도 잘한다.

생존력은 어마어마한 건지, 중국사람들끼리의 커뮤니티가 잘 되어 있는 건지….

우리를 중국인으로 오해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아델라이드 카페의 주인이 바뀌었다고 하니 괜히 속상했다. 장사가 꽤 잘 되는 가게였는데 무슨 일일까… 괜히 마음속으로 오지랖을 피웠다.

카푸치노를 홀짝홀짝 다 마시고 카페를 나왔다.

“챠오, 챠오!!”

중국인 사장님이 활짝 웃으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한다. 그러고보니 분위기가  그전보다 조금 더 친절해진 것 같다.



내가 중국말을 좀 할 줄 알았다면 밀라노 생활이 조금 더 편했을까? 여기는 밀라노지만 작은 중국이나 마찬가지니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탈리아 말도 못 하고 중국말은 더 못한다.

눈치만 늘어서 대충 알아먹고 바디랭귀지와 구글 번역기로 대충의 삶을 산다.

그래도 살아진다는 게 신기하다.

나는 아무래도 중국사람들처럼 생존하긴 그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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