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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an 23. 2023

6개월 만에 폐업하는 카페, 20년은 기본인 카페

카페를 가업으로 운영하는 사람들

san siro 축구 경기장 근처에 작은 바가 하나 있다. 저녁이면 이곳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젤라또를 사 먹는다. 그저 평범한 바 같은데 왜 저렇게 손님이 많은 건지…. 신기했다.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걸까?

조금 과장해서 밀라노에는 50미터 간격으로 커피를 파는 카페 또는 바(bar)가 있기 때문이다.

Floriana gelato & chocolate



바 마다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다.

주로 담배를 파는 따바끼(tabacchi)에서는 교통카드와 복권을 함께 판다. 지하철역에 있는 기계를 이용해도 되지만, 지상에서 버스나 트램을 이용할 때 따바끼에서 표를 살 수 있다.

따바끼에서도 물론 커피를 기본으로 판다. tavolo라고 쓰여있다면 앉아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이 있다는 뜻이다. 동네 어르신들은 아침부터 따바끼에서 복권도 긁고, 커피도 한잔 하고, 옹기종기 모여 낮술도 한잔 한다.

Tabacchi



cafeteria라고 써진 곳에서는 주로 커피를 팔지만, 커피 하나만 단품으로 취급하는 곳은 거의 없다.

cafeteria옆에는 분명 gelateria 또는 pasticceria, pane가 쓰여있을 것이다. 말 그대로 gelateria가 있다면 커피와 젤라또를, pasticceria가 쓰여있는 곳에서는 커피와 달달한 디저트를(여기서는 돌체(dolce)라고 한다), pane가 쓰여있다면 커피와 빵을 파는 곳이다.


신기한 것은 체인점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탈리아에서 밀라노에만 있다는 스타벅스와 일리 카페 외에는 체인점이 거의 없다.


딱 하나, 밀라노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marchesi 1824라는 카페가 있다.

카페 이름처럼 1824년에 시작된 카페로, 18세기 건물에서 여전히 운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밀라노에는 3개의 체인점을 운영하고 있다. 밀라노의 첫 pasticceria 가게로, 다양한 디저트를 판매하고 있어서 여행객들이 꼭 찾는 곳이기도 하다.

거의 200년이 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기분. 이건 직접 마셔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간혹 메뉴판에 써진 커피 값과 계산할 때 지불한 커피 값이 다르다며 바가지를 당한 것 같다고 불평하는 여행자들이 있다.


사실 이탈리아에는 두 개의 커피 값이 있다. 바로 자리에 앉지 않고 서서 마시는 커피 값과 테이블에 앉아서 마시는 커피 값이다.

서서 마시는 커피 값은 정부에서 정해 둔 커피 값을 받는다.(에스프레소 한 잔에 1유로 ~ 1.5유로) 하지만 만약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는 순간, 서비스 차지가 붇는다. 그건 가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5배 정도 지불해야 한다.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산시로 축구 경기장 근처의 그 가게는 커피와 젤라또를 파는 곳이었다. 왜 이렇게 손님이 많은지 궁금해 현지 친구에게 물어보았다.

"이 가게가 1979년에 처음 생겼는데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어서 이 동네에서 꽤 유명해. 특히 젤라또가 맛있기로 유명해. 한번 먹어봐. 맛이 달라."

1979년이면 내 언니가 태어난 해와 같다. 무려 40년이 넘은 가게였던 것이다. 그 말을 듣고 커피와 젤라또를 먹으니, 이상하게 더 맛있게 느껴진다.



밀라노엔 이런 카페가 꽤 많다. 부모가 하던 카페를 그대로 물려받아 운영을 한다. 10년은 기본이고 20년, 30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커피와 디저트, 젤라또와 빵을 판다. 그 사이엔 추억도 함께 서려있는 것 같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커피를 팔고 있으니 단골의 자녀, 단골의 자녀의 자녀가 또 단골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서 카페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대한민국은 커피지옥"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였다. 한 건물에 네 개의 카페가 입점을 했는데, 서로 가격 경쟁을 하느라 아메리카노 한잔 값이 1,300원으로 내려갔다는 기사였다.

이런 커피 지옥에는 여지없이 대형 브랜드와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들어서있는데, 그 사이에 끼인 개인 카페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을 하는 작은  카페가 많다고 한다.




카페창업은 누구나 꿈꾸는 삶이다. 소자본으로 작은 카페를 열고, 커피와 디저트를 팔면서 단골을 만들고, 소소하게 돈을 벌면서 일상을 꾸려가는 꿈.


하지만 이 꿈이 한국에서는 절대 소소한 것이 아닌 것 같다.

무엇을 하더라도 경쟁을 해야 하고, 다른 가게보다 차별화된 메뉴가 있어야 하고, 친절해야 하고, 청결해야 하고, 가격도 착해야 하고.

경쟁이 시작되는 순간, 소소한 꿈은 저 멀리 날아가버리고 만다.



한국이나 이탈리아나 커피 소비량은 절대 적지 않다. 하지만 카페를 대하는 모습은 꽤나 차이가 난다.


그것은 100년이 넘은 건물에서 여전히 사는 사람과 30년이면 건물이 낙후되어 재개발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차이가 아닐까.


물론 장단점은 있다.

옛 것을 고수하느라 뭐든지 비효율적이고, 거북이처럼 느린 행정절차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시스템을 자랑하는 한국에서 살다 온 우리에게 속이 터지다 못해 울화통이 터지는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내 단골 카페가 내 아이의 단골이 되고, 내 아이의 아이가 단골이 되는 역사는 왠지 부럽기만 하다.



나는 위의 기사를 본 후,

밀라노의 카페에 대한 글을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목적은 없다.

단지, 카페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을 한번 더 들여다보고 싶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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