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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Feb 05. 2023

이해는 기본 값, 배려는 옵션

희로애락애오욕 중에 ‘로’



일요일 밤이면 아이들은 매번 똑같은 말을 한다.

“주말이 왜 이리 빨리 가. 벌써 내일이면 월요일이야. 아…. 학교 가기 싫어….”

직장인에게도 학생들에게도 오고야 만다는 그 월요병이 우리 집 아이들에게도 발현되고 말았다.



아이들이 월요일을 특히나 더 싫어하는 이유는 이탈리아 수업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학교지만 일주일에 세 시간 정도 이탈리아 수업이 있다. 이 학교에 처음 입학했던 해에는 '이탈리아어 beginner class'가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 간단한 이탈리아 말을 배울 수 있었다. 정규 수업시간에도 새로 입학한 아이들에겐 특별한 과제를 내주지 않았고, 발표를 시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완전히 다른 처지가 되었다. 이번 연도에 새로 입학한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작년에 입학한 아이들은 beginner class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일 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beginner가 아니라는 말과 함께.


정규 이탈리아 수업시간에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레벨로 아이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선생님 질문에 대답을 못하면 화를 내고, 숙제를 제대로 못해도 화를 냈다. 선생님 말은 겨우 10% 정도만 대충 알아듣고, 시험을 볼 때는 프랑스어 말로 대충 찍는 아이들에게 말이다.


다행히도 선생님이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화를 내는 횟수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수업 태도가 안 좋은 아이들에게 더 많이 화낸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는 그 화가 누구에게 향하는지에 상관없이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을 한다.

매주 월요일 아침이면 아이의 스트레스 지수는 더욱 높아져서 울상을 짓고 나에게 온갖 짜증을 부린다…..




‘희로애락애오욕’

일곱 가지 감정 중에 이번주 주제는 두 번째 감정, 바로 ‘노함’에 대한 것이다.

이 주제를 놓고 며칠 째 글감을 떠올렸다.


1. 위에 쓴 글처럼 아이의 학교 선생님의 화

2. 2022년 12월 31일 자정을 몇 시간 앞두고 남편과 대판 화를 내며 싸웠던 이야기

3. 십 대가 돼 갈수록 짜증이 점점 늘면서 엄마의 화를 돋우는 아이들의 이야기

4. 부모님께 한 번도 대든 적 없던 내가 큰아이 때문에 친정아버지께 큰소리로 화낸 이야기

5. 요즘 사람들의 가슴에 기본으로 품고 있는 다스려지지 않는 화


이중에 어떤 글감으로 글을 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글을 썼다 지웠다. 제목을 썼다 고쳤다. 주제를 다시 떠올리고 지난 에피소드를 다시 복기했다.


그런데 여전히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나는 노트북을 그대로 두고 다음 주에 있을 아이의 카니발 코스프레 의상을 만들었다. 검은 고양이가 되겠다는 딸아이를 위해 재료를 잔뜩 사다가 고양이 귀를 만들고, 검정 스타킹을 잘라 고양이 꼬리를 만들었다.

다 만든 의상을 입고 한 마리 검은 고양이가 된 딸아이를 보니 흐뭇하다.


가족들 저녁을 먹이고 다시 앉아 글을 쓰려는데 여전히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딸아이를 불렀다. 욕실에 앉혀서 어깨에 수건과 비닐을 두른 후 분무기를 아이의 머리에 칙칙 뿌렸다. 가위를 들고 아이의 긴 머리를 싹둑 잘랐다.

아이의 얼굴은 염려했던 것보다 마음에 든 표정이다.


벼르고 벼르던 일을 오늘 해치웠다. 굳이 오늘 안 해도 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하고 나니 마음이 시원하다. 이 마음을 유지하며 글도 해치워야 하는데….




이번 글이 써지지 않는 이유를 나는 이미 알고 있다.

화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내가 화를 내는 것도, 남이 화를 내는 것도 모두 싫다. 싸움은 더더욱 싫고 조금의 오해도 싫다.

그러고 보니 선생님이 다른 아이에게 화를 내도 긴장하는 아이의 성향은 나를 닮은 모양이다.

거기다 대고 “그냥 무시해.”라고 말했으니.

나도 잘 못하는 ’ 무시‘를 아이에게 요구하다니.

내가 잘못했네.  잘못했어.



나는 그냥 화를 덜 내며 살고 싶다.

나와 관계하는 사람들과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좋은 말만 하고 살고 싶다.  

상대에 대한 이해는 기본 값으로, 서로에 대한 배려를 옵션으로 한다면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텐데.


20대 즈음에 꿈이 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제 꿈은 세계평화입니다.”


그 꿈을 위해 내가 한 일이라곤 가만히 앉아서 기도한 것뿐. 아무런 액션도 하지 않은 채 사십 대가 되었다.

이제는 내 얼굴과 내 삶에 책임을 져야 할 나이가 되었으니, 말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움직여야 하는 나이이다.


다시 한번 젊은 날의 꿈을 꺼내본다.

“제 꿈은 세계 평화입니다.”


이해는 기본 값으로,

배려는 옵션으로 한다면

세계평화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본 매거진 ‘다섯 욕망 일곱 감정 여섯 마음’은 초고클럽 멤버들과 함께 쓰는 공공 매거진입니다.
여섯 멤버들의 ‘희로애락애오욕’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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