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에세이
“머리 좀 봐줄래? 정수리 부분이 따끔거려….”
괜한 걸 시키는 그가 얄미웠지만, 일어나서 그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뭐…. 괜찮은데?”
“그래? 그 아래 부분이 따끔 거리던데.”
“어디 보자…. 어? 이게 뭐지?? “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왜?”
“어머, 이게 언제 생겼다니. 자기야, 원형탈모가…. 생겼네. 어쩌냐…. 이제 막 시작된 것 같은데? “
나는 핸드폰을 들고 그의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밀친 다음 원형탈모 부위가 잘 나오도록 사진을 찰칵 찍었다.
정수리에서 조금 아래쪽에 있어서 머리카락을 들춰보지 않는 이상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위치였다.
바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원형탈모의 원인은 대부분 스트레스 때문이며 초기에 병원 진료를 받고 약물치료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동안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는데 결국이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대머리가 된다고 해도 내가 사랑해 줄게….”
시답잖은 말로 그에게 위로를 건넸다.
키 작은 건 용납해도 대머리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던가?
어느 포털 사이트이서 대머리인 사실을 숨기고 가발을 쓴 채 결혼했다가 신혼 초에 딱 걸려서 이혼 위기에 처했다는 글을 봤다.
대머리가 문제인지, 애초에 거짓말을 한 것이 문제인지 알 수는 없으나, 사람들이 머리털에 관해 생각보다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그러니 탈모 샴푸, 모발 강화 샴푸 등이 꾸준히 인기 있는 것이겠지.
대머리는 유전적 원인이 가장 크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 아버님의 머리숱도 많지 않았었다. 하지만 결혼 전 그의 머리숱은 꽤 풍성했다. 오히려 너무 많아 걱정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해외생활을 하는 동안 그의 머리숱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는 특히 정수리 부분을 신경 썼다. 그 부분이 가장 눈에 띄는 부위였기 때문이다. 매번 핸드폰을 손에 들고 머리 위로 올린 다음 정수리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부위에 탈모가 생기다니….)
“엄마, 탈모는 유전이라는데 나도 탈모가 생기면 어쩌지? 나 대머리 되기 싫은데….”
머리숱이 적은 편인 딸아이가 날 보며 심각하게 말한다.
“점점 많아질 거야. 엄마 머리숱 많은 거 알지? 엄마 딸이니까 괜찮을 거야…“
라고 말했지만 사실 나도 확신할 수 없다…..
원형탈모를 처음 인지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병원 진료를 보고 왔다. 주사 까지는 아니더라도 바르는 연고라도 처방해 줄 거라 생각했는데 병원에서는 아무런 처방도 해주지 않았다. 원형탈모 부위의 두피가 빨갛게 발적이 되어있고, 약간의 염증 소견이 보인다며 조직검사를 해보자고 했다나.
밀라노의 피부과에서는 그의 탈모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병원의 어이없는 진료에 분개하고 있을 때 퍼뜩 유럽국가의 남자들이 떠올랐다.
프랑스 사람인 내 친구의 남편은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이상하게 보인다거나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이탈리아 사람인 다른 친구의 남편도 머리카락이 한 올도 없다. 그는 꽤 유쾌한 사람으로 아줌마들과 수다도 잘 떠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이 나라엔 대머리가 엄청 많다.
그래서 50원짜리 동전 크기의 탈모는 별개 아닌 것일지도 모르겠다.
머리띠를 하고 세수를 한 뒤 거울을 보았다.
이마의 왼쪽 윗부분이 횡~ 하다. M자형 탈모가 최근에 도드라져 앞머리를 잘라 이마를 가렸다. 한동안 앞머리에 가려 보이지 않던 이마의 탈모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탈모 면적으로 따지자면 그의 원형탈모 부위보다 내 이마의 탈모 부위가 더 넓어 보인다.
나이가 들고, 노화가 진행되고, 피부의 탄력은 떨어지고, 털은 빠지고.
어쩔 수 있나.
이게 바로 우주와 시간이 인간에게 부여한 자연의 섭리인 것을.
그가 대머리가 되어도 내가 사랑해 주고,
내가 대머리가 되어도 그가 사랑해 주겠지…..
아니면 서로의 머리털을 사이좋게 나눠가지던지.
본 글은 남편의 허락하에 쓴 글입니다.
남편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탈모 사진은 첨부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