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삶은 여행

대충 떠난 여행 1.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계획이 없어도 괜찮아!

by 선량

이번 부활절 연휴는 고작 하루, 게다가 부활절 전날에는 주일학교에서 수련회가 있었다. 여행을 가더라도 밀라노 근교의 작은 도시로 당일치기 여행을 주로 다녔기에 이번 부활절 연후에도 그렇겠거니, 생각했다.

밀라노에 살지만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하는 이유가 몇 개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남편의 휴가 일정 때문이다. 휴가를 쓸 수 있긴 하지만, 법인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순간 여러 변수가 발생한다.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는 남편을 보기가 불편하다. 차라리 여행을 안 가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교회학교 청소년부 교사로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는 주일 예배만 드렸기 때문에 주말을 이용해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수 있었는데 지금은 쳥소년부 예배준비를 해야 하기에 그럴 수가 없다.

세 번째 이유는 내가 운전을 못하기 때문이다. 운전만 할 줄 알았다면 남편을 떼어놓고 자유롭게 여행을 다닐 수 있을 것도 같은데. 20년 전에 딴 운전면허증은 두 번의 적성검사를 했음에도 여전히 신분증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네 번째 이유는 큰아이가 아직도 멀미를 하기 때문이다. 그놈의 멀미는 언제까지 하려는지.... 버스나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싶지만, 큰아이의 멀미가 언제나 발목을 잡는다.

이런저런 이유로 긴 휴가가 아니면 여행을 가지 못한다.



"오스트리아 갈까? 거기 좋데."

근처 소도시로 일박 이일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대뜸 오스트리아 여행을 언급했다. 하지만 구글로 검색해 보니, 밀라노에서 오스트리아까지 최소 5시간이 걸린다. 남편 혼자서 운전을 해야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싶다. 나는 평소에도 오스트리아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런데 며칠 후 그가 숙소를 예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 학교 며칠 빠져야겠는데?"

오 마이갓!!

결국 학교도 이틀 빠지고, 주일학교 수련회도 빠지고 갑자기, 아주 갑자기 오스트리아 여행을 가게 되었다.



사람마다 여행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우리는 언제나 대충대충이다. 아마도 해외에서 오래 살면서 매번 짐을 싸고 풀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에도 우리의 대충 여행은 변하지 않았다. 출발하는 새벽에 일어나 대충 짐을 쌌다. 오스트리아는 아직 겨울이라는 아주 얇은 정보 하나만 듣고 겨울 잠바와 겨울 옷을 챙겼다.

대충 챙기다 보니 역시나 빠뜨린 물건이 있다. 얼굴에 바를 크림도 안 챙겼고, 클렌징크림도 안 챙겼고, 둘째의 칫솔도 빼먹었고, 양말도 부족하다.

뭐, 괜찮다. 얼굴에 스킨만 바르고 선크림을 쓱쓱 문질러 발랐다. 둘째는 첫날에 오빠의 칫솔을 빌려서 양치를 했고, 둘째 날엔 새 칫솔을 하나 샀다. 그리고 서로의 양말을 쉐어하며 신었다.

뭐, 죽고 사는 일이 아닌 일에는 크게 마음 쓰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은 법이니까....




첫 번째 목적지인 인스브루크까지는 5시간이 걸렸다.

아직도 이탈리아인가? 싶었는데 갑자기 '오스트리아'라는 알림이 떴다. 경계선 하나 없이, 통행료 하나 없이 국경을 넘었다는 게 마냥 신기했다.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의 가장 큰 차이점은 교통법규였다. 오스트리아에 오니 아무도 과속을 하지 않았고, 함부로 끼어들기를 하지 않았다. 밀라노에선 흔하게 볼 수 있는 질주하는 바이크도 보이지 않았고,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뭔가 정갈한 느낌이랄까.

작은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알프스 설산을 바라보며 마음까지 정갈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숙소 근처에 도착했지만 주차 공간이 없다. 구글 지도를 보며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탈리아에선 쉽게 주차했었는데, 여기선 도통 주차 방법을 알 길이 없다. 구글번역기를 들고 주차 표지판을 검색했다. 다행히도 주차증을 끊는 방법은 이탈리아와 비슷했다.

겨우겨우 주차를 하고 숙소에 가서 짐을 풀었다.

사실 우리 집 두 아이들은 여행을 다닌다기보다는 숙소를 옮겨 다닌다는 게 맞겠다. 여행 간 지역의 이름도 기억 못 하고, 그 지역의 풍경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숙소는 기가 막히게 기억한다. 아이들은 숙소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냄새, 화장실 구조와 침대 등을 보며 숙소를 기억한다. 숙소가 좋았다면, 그 여행은 통째로 좋았다고 기억하는 것이다.

이번 숙소가 그랬다. 창밖으로 보이는 알프스의 설산과 작은 공간에 충분히 쉴 수 있게 비치된 침대, 넓은 창틀에 앉아 쉴 수 있는 공간까지. 아이들의 마음에 쏙 드는 모양이었다.



컵라면을 후루룩 먹고 밖으로 나갔다. 인스브루크에서 유명한 게 뭔지 미리 알아보지 않고 왔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에겐 구글맵이 있으니까. 구글맵에는 그 지역의 관광명소를 바로 볼 수 있다. 우리는 어슬렁어슬렁 도시를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어떤 아저씨가 사진을 찍고 있는 내 뒤에서 장난을 치더니, 아이들 옆으로 가서 한마디 한다.

"So beautiful weather!!"

처음 본 사람들과 유쾌하게 인사를 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유쾌함이 이 도시에 잔뜩 묻어 있었다.

이 지역에서 유명한 강가로 향했다. 그곳이 유명한 이유는 강가에 즐비하게 서있는 알록달록한 집 때문이다. 뷰 포인트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핸드폰을 꺼내 예전에 내가 그렸던 그림을 찾았다. 비슷한 듯 다른 그림과 지금 내 눈앞에 놓인 풍경을 비교하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충만해졌다.

내가 그렸던 장소에 내가 서있다는 기쁨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바로 옆에 푸드트럭 여러 개가 있었다. 우리는 키가 큰 게르만족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독일어를 쓰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이지만, 영어로도 쉽게 소통이 가능하다는 게 놀라웠다. 이탈리아에서는 어림도 없기 때문이다.


배불리 먹고 해가 뉘엿거릴 때 어슬렁어슬렁 숙소로 돌아갔다.


우리의 대충대충 여행의 첫날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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