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와 다툼이 공존할 때
여행 중에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다툼”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니 결혼하고 갔던 신혼여행에서부터 싸웠다.
여행지에서도 싸웠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도 싸웠었다. 결혼한 지 일주도 안 돼서, 내가 이 남자와 결혼을 잘한 것인가….. 심각하게 고민을 했더랬다.
작년 여름, 베네치아와 피렌체로 여행을 갔을 때도 싸웠다. 여행 와서 노트북만 쳐다보며 일만 하는 그와 여행까지 와서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는 아이들이 못내 얄미워서 나는 가족들을 숙소에 두고 혼자 뛰쳐나갔다. 혼자서 미술관도 가고, 베네치아 좁은 골목도 걷고, 스프리츠도 마시며 화난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혼자 여행했던 그 시간이 쫌 좋기도 했다.
이번에도 우리는 싸웠다. 여행 가기 일주일 전이 바로 우리의 12주년 결혼기념일이었다. 프러포즈도 제대로 못 받았는데 결혼기념일을 챙길 사람이 아니므로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 내가 좀 챙길까 싶었는데 이미 그전부터 감정이 상해있었던 터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보내고 말았다.
며칠 동안 계속 싸웠다. 큰 소리를 내거나 치고 박으며 싸운 건 아니지만, 냉랭한 분위기가 되는 것 자체가 나에겐 “싸움”이다.
그리 특별한 일로 싸운 건 아니다. 그랬다면 덜 억울할 것 같다. 사소한 말 한마디, 그 한마디 때문에 삐지고, 말을 섞지 않고, 냉랭해지고 만다.
내가 몇 마디 말을 섞으려 질문을 해도 그는 응, 아니. 단답형으로 대답한다. 이렇게 옹졸한 인간과 내가 왜 결혼을 했나….. 또 한 번 나의 과거를 후회로 물들인다.
오스트리아로 출발하던 날 아침, 나는 부랴부랴 짐을 싸고, 주먹밥을 만들고, 아이들을 챙겼다.
9시에 출발한다는 그의 말에 그 시간에 맞춰 준비를 했다. 그런데 평소엔 가장 느리게 준비하던 사람이 오늘은 웬일로 가장 먼저 서두른다. 8시에 출발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속으로 투덜대기 시작했다.
‘본인은 자기 짐만 싸면 되지, 아침 안 먹는다 이거지. 미리 말을 했어야지. 짐을 다 싸지도 않았는데 왜 이리 배려가 없어…. ’
아직 준비를 마치지 못했는데 먼저 짐을 들고 집을 나서는 그를 향해
“왜 이렇게 서두르고 난리야~ 좀 차분히 좀 하자!!”
라고 한 말이 화근이 되었다.
냉랭한 분위기를 가득 안고 인스브루크로 출발했다. 4시간 55분이 찍혔다. 가는 내내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그를 보며 권태기를 떠올렸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평소에 살갑게 지내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편은 아니었다. 싸우기도 했지만 화해도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10년 넘게 살아도 그 사람의 속은 알 길이 없고, 내 속을 보여줄 길도 없다는 게 여전히 아이러니다.
권태가 심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
꼴도 보기 싫은 사람과 어떻게 살지?
헤어져야 하나?
아이들은 어쩌지?
나는 여행 가는 차 안에서 언젠간 다가올, 하지만 아직 닥치지 않은 미래를 끌어다 내 앞에 놓고 이리저리 계산을 한다.
그때 무심히 틀어 놓은 김창옥 강사님의 말이 흘러나왔다.
“가족은 너무 잘하려고 하면 안돼요. 그저 서로에게 예의 바르게 해 주세요. 말을 할 때도 좋은 말만 하려고 하지 말고, 예의 있게 말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 말을 듣고 있던 첫째 아이가 한 마디를 한다.
“이거 엄마한테 하는 말 같은데….”
나는 억울했다. 내가 그렇게 예의 없게 말을 했던가?
“그래. 내가 죄인이다. 다 내가 잘못했네. 내가 죽을죄를 졌네. 다 내 잘못이다! “
옆에 있던 그가 갑자기 폭소를 터뜨렸다.
“와. 지안아 너 정말 통찰력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네가 하네. “
그렇게 마법에 걸렸던 그의 입이 풀렸다….
그 후 가는 내내 우리는 김창옥 강사님의 강의를 들었다…..
여행을 하며 찍은 멋진 사진을 sns에 올렸다. 다들 너무 멋있다, 부럽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행 사진엔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이 수북하게 쌓여있다. 여행은 분명 즐거운 것이지만, 다툼의 시간이 언제나 포함되어 있다.
항상 행복할 수 없고,
항상 기쁘게 살 수 없다.
삶이 긍정이더라도 도처에서 부정이 끼어든다. 그러니 삶의 한 단면만 보고 그 사람의 인생을 재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며칠 전 하교 길에 투닥투닥 싸우던 아이들이 집에 돌아간 후엔 어느새 딱 붙어서 놀고 있다.
“너네들 아까는 싸우더니, 지금은 왜 그렇게 사이좋아? “
내 질문에 둘째가 한 마디를 한다.
“엄마, 남매는 원래 그래. 남매는 잘 싸우고 또 잘 놀아. 그게 현실남매지. “
거참, 두 녀석이 매번 옳은 말만 해대니, 내가 더 이상 설 곳이 없구나…..
권태를 심각하게 고민하던 나는 그가 욕구불만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다. 현실부부의 삶이란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