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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05. 2023

여섯 마음의 글을 마무리하며

선량의 에필로그

수많은 글쓰기 모임이 있다. 서점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부터 지역 글쓰기 모임, 회사 동호회 글쓰기 모임,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까지.

코로나 이후에는 온라인 모임이 활성화되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직접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부담감도 없이 언제 어디서든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모임.

포털 사이트에 검색만 하면 다양한 형태의 글쓰기 모임이 주르륵 검색된다. 드넓은 광야 같은 글쓰기 모임 중에 작은 모래 한알 정도가 바로, 내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이다.



첫 책을 출간한 후 지금까지 여러 온라인 모임을 운영해오고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초고클럽"이다.

내가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의 모토는 "누구나 쉽게 글을 쓸 수 있는 모임"이다. 이제 막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들, 글을 써보고 싶은 사람들, 글쓰기의 즐거움과 습관을 만들어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하지만 초고클럽을 기획하고 회원을 모집했을 때는 마음이 달랐다. 이제는 단편적인 짧은 글이 아니라 긴 글을, 타인이 주는 글감으로 쓰는 대신에 자신이 직접 기획하고 써보는 글, 내 인생의 주제를 찾아보고 그 주제에 맞춰 목차를 구성하고, 브런치북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출판사 투고도 해보고, 책도 만들어보는 모임. 초고클럽을 시작했을 때의 꿈은 참으로 원대했다.

하지만 멤버들의 반응은 내가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브런치 북을 만든 것만으로 만족해요."

"이렇게 길게 써 본 것으로 충분해요."

"출판사 투고는 도저히 못하겠어요."

"꼭 책을 출간해야 하나요?"


이들의 작지만 확실한 대답은 "글쓰기의 끝은 물성이 있는 책이어야 한다."는 내 사고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이라니....

초고를 다 쓰고 마무리가 되었음에도 1년이 지나도록 단톡방을 없애지 못한 이유는 아마도 그동안 함께 쓴 글만큼 멤버들과 나눈 마음의 길이가 고무줄처럼 길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이미 완료된 모임에 "공동매거진을 써보자"라고 제안한 것은 특별한 목적 없는 단톡방에 남아있기가 싫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들과의 인연이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처럼 끊어지지 않길 바랬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같은 주제로 글을 쓰며 멤버들의 삶 속으로 한발 더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림동화 같은 글을 쓰는 파란 선 작가님의 글에선 동화와 현실이 버무려진 글을 읽었다. 지금도 눈이온 다는 노르웨이의 삶은 마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에서 끝나지 않고, "그러나"가 붙은 반전이 계속 이어질 것만 같았다. 나는 자꾸만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다음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다시 가장 처음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언젠간 꼭 이야기의 마침표를 볼 수 있기를.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어려워요."

매번 이렇게 말했지만, 막상 미숙 작가님의 글에선 등대를 볼 수 있었다. 파도가 치고 폭풍이 이는 바다에서 흔들림 없이 묵묵히 방향을 알려주는 등대 같은 글. 잠잠할 때도 시끄러울 때도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서 있는 등대처럼 미숙 작가님은 글의 방향을 잡아주었다. 이제 글쓰기가 어렵다는 말은 넣어 두길, 이렇게 잘 쓰시면서.


꼭 한번 민숙 작가님의 베이킹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글에서 느낄 수 있는 삶에 대한 확신과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수려한 형용사만큼이나 화려한 손놀림을 느껴보고 싶다. 문장을 쓰고 맺는데 주저함이 없는 것은 아마도 작가님의 삶을 이끌어가는 데 주저함이 없기 때문이 아닐는지. 함께 공동매거진을 쓰는 내내 사람과 일 때문에 힘들어하셨는데, 주저 없이 에필로그를 쓰듯 그 사람과의 감정도 안녕할 수 있기를.


"꼭 열심히 살아야 해요?"

리엘리 작가님의 문장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단 한 번도 물음표를 던져본 적 없는 부사 '열심히'.

나는 매사에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기에 열심을 내기 위해서는 큰 의지가 필요하다는 걸 몰랐다. 하지만 열심히 살지 않기 위해 자발적 게으름을 선택한 유미님의 글에서 나는 그녀의 열심을 읽었다. 매번 가장 먼저 글을 쓰고 발행한 사람이 리엘리 작가님이었으므로.


완벽한 날을 위해 모든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완벽한 한 편의 글을 위해 쓰고 지우 고를 반복하는 류 연 작가님. 나는 작가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행복'하기를 바랐다. 짧은 문장에서 그녀의 고뇌를 읽었고, 끝내 찍고 만 마침표에서 그녀의 안도를 읽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도가 응답되어 고뇌와 안도가 에필로그와 함께 행복으로 점철될 거라는 걸 확신했다. 부디 어여쁜 신부 곁에 다정한 신랑이 언제나 함께 하기를.





그동안 함께 쓴 이 공동 매거진이 어떤 모양으로 남게 될지 잘 모르겠다.

나는 또 이 글을 아까워하며 또 다른 열심을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각자 살아온 삶이 다르고, 살고 있는 장소가 다른 것처럼, 글을 통해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각자 다를 것이다.

이후의 글쓰기는 각자의 몫이라는 걸 인정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우리의 에필로그가 각자의 프롤로그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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