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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17. 2023

3. 영어 말고 이탈리아어

이탈리아어 못해도 꿋꿋하게, 아무튼 밀라노!!

[수강 가능한 강의가 없습니다. 강의 수강 기간이 만료되었습니다.]


“헉, 벌써 3개월이 지났다고? 신청한 지 며칠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끝났다고?? 한 번도 안 들었는데….. 오 마이 갓… 이게 벌써 몇 번 째나~~~”


너무나도 억울하고 돈이 아까워 강의 사이트로 들어가 문의사항을 남겼다.

“제가 수강 신청을 해놓고 너무 바빠서 강의를 하나도 듣지 못했습니다. 기간 연장이라도 안 될까요?? 정말 하나도 못 들었단 말입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문의를 남겼지만, 돌아온 답변은 역시나였다.


[만료된 강의는 다시 들을 수 없으며 기간 연장도 할 수 없습니다. 재수강해주세요.]


형용사나 부사 하나 없는 건조한 문장을 보며  AI의 답변인가? 의심했지만, 이네 생각을 고쳐먹었다.

“나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닌가벼~~~”

어찌나 천진난만 긍정주의자인지….

(하지만 이 사실을 남편은 절대 모르게 해야 한다…)



이탈리아어를 전혀 모른 채 밀라노에 왔다.

아무렴 여행자들이 그렇게 많이 찾는 나라인데, 해마다 패션위크니, 디자인위크니, 하며 유명한 할리우드 배우들이 드나드는 도시인데.


설마, 영어가 안 통하겠어???


인도에서 갈고닦은 생존영어는 이럴 때 꽤 쓸만하다. 정확한 문법을 쓰지 않아도,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을 깡그리 무시해도 말이 통하는 영어.

원어민이 아닌 이상 너도 외국인, 나도 외국인. 이럴 땐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서로 못하는 영어로 대화해도 어찌나 마음이 잘 통하는지.

“밀라노도 분명 그럴 것이다!!! “

라고 생각하며 왔는데 그건 완전한 우리의 착각이었다.


밀라노에 입성한 첫날, 간단한 음식과 마실 물을 사러 근처 마트에 갔다. 카운터에 물건을 올려두고 계산을 기다렸다.

“!@#$%^&*?”

“sorry?”

“!@#$%^&*?”

“can you speak english?”

“*&^%$# (- -  )(.  - -)”

우리가 알아들은 말은 물음표와 고개 절레절레 뿐이었다…..


그제야 부랴부랴 시*스쿨 “왕초보 이탈리아어” 강의를 신청했다. 원어민과의 일대일 강의는 왠지 자신이 없었는데, 인사말이라도 알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알파벳과 인사말부터 시작하는 왕초보 이탈리아어를 들으며 그제야 마트 계산원이 하는 말이 무엇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부온 조르노! 사께또?”

“안녕하세요, 비닐가방 필요해요?”




이탈리아 사람들은 자신의 문화와 언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우리들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떠나고 싶어 안달하지 않는다. 밀라노에서 태어난 사람은 밀라노를 가장 좋은 도시라고 생각하고, 베네치아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곳이 가장  좋은 도시라고 생각한다.


현재 내 바로 옆에서 일하고 있는 키아라는 20대 후반의 꽤 예쁜 청년이다. 안경만 벗으면 할리우드 배우 앤 해서웨이를 닮았고, 성격도 좋아서 잘 웃는다. 심지어 화가 나는 상황에서도 그 큰 입을 벌리며 웃는다.

“나 저 사람들 죽이고 말 거야!!”

라고 말하며 활짝 웃는 키아라…..

밀라노에서 나고 자란 키아라는 단 한 번도 로마에 가보지 않았다고 한다. 베니스에도 피렌체에도 가보지 않았다나….

여행 가보고 싶지 않느냐는 말에 본인은 밀라노에서 가족들과 편안히 지내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했다.


모든 밀라노 사람들이 이런 것은 아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최우선을 생각한다.

이런 생각은 언어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라틴어에서 출발한 언어, 이탈리아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솔직히 이탈리아 떠나면 어디 써먹을 곳도 없는데  말이죠….)

영어를 못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이탈리아에 살면서 이탈리아어를 못하냐고 핀잔을 준다.


최근에는 그 분위기가 많이 변하고 있다. 영어를 잘하는 젊은 사람들이 꽤 많아지고 있고, 젊은 부모들 역시 아이들에게 영어 과외를 시키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앤 해서웨이를 닮은 키아라와 나도 영어로 소통한다.(서로 짧은 영어로 어찌나 잘 통하는지 모른다.)


키아라가 처음 이 회사에 입사했을 때는 법인장님이 말하는 영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8개월 일한 지금은 90퍼센트 알아듣는다고.

어디서 영어를 배웠느냐 물어보니, 고등학교에서 배운 영어라나…. 고등학교에서 배운 영어를 다시 꺼내어 써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부러웠다.



얼마 전 집 근처 단골 카페에 갔다.  그 카페의 주인은 중국사람이지만 이탈리아어를 꽤 잘하고 동네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다.

“이제는 이탈리아 말 좀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노~~ 아직 못해.”  (라고 영어로 말했다.)

“아직도 이탈리아어를 못해? 공부 안 했니?”(라는 것 같았다.)

나는 그냥 웃었다.

우리 아이들에게 젤라토를 듬뿍 담아주는 그녀, 나에게 스프리츠를 가득 담아주는 그녀와 좀 더 친해지고 싶은데 말이 안 통한다.



나는 다시 시*스쿨 사이트에 들어가 “초보 이탈리아어”강의를 만지작 거린다. 이번엔 제대로 들을 수 있을까?

그녀가 내려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수다를 떨 날을 상상했다.

하지만 어느덧 밀라노 2년 차의 눈치만 늘어서 이탈리아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살아지니,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밀라노의 봄 꽃을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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