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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24. 2023

4. 교통법규 말고 눈치

밀라노에서 운전할 때 꼭 필요한 것은? 아무튼 밀라노

“아, 저 또라이 새*”

운전을 하던 남편의 입에서 험한 말이 나왔다.

“그러게, 저 또라이. 내가 손 좀 흔들어 줄까?”

나는 신호도 없이 갑자기 차선을 바꿔 우리 차 앞으로 끼어든 차를 향해 손을 들어 흔들었다.

(이탈리아어에는 말 이외의 것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손동작이다. 말을 할 때 손을 함께 사용해야만 완벽한 이탈리아어를 구사한다고 볼 수 있다.)


옛날 같았으면, 아이들 앞에서 험한 말을 입에 올렸다며 한 마디 쏘아붙였을 텐데. 운전에 대한 매너가 부족한 밀라네제 사이에서 방어운전을 하는 남편에게 더 이상 핀잔 어린 말을 하지 못한다. 그야말로 ‘무매너’로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거니와 한국과는 전혀 다른 도로사정, 예를 들어 도로 가운데를 트램이 유유히 지나간다거나  원형 교차로가 많아서 빙글빙글 돌다가 제 갈 길을 잘 찾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곳은 비보호 우회전이 가능한 곳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곳은 신호등이 있어서 우회전을 하기 전에 초록불을 꼭 확인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도로마다 지정 속도가 있지만 대부분 그 속도를 무시하며 달린다.


가장 신기한 것은 음주운전 체크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식탁엔 와인이 빠지지 않는다. 회사에서 점심 식사를 하면서도 가볍게 와인을 한잔 하기도 한다. 그리곤 유유히 운전을 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방어운전을 주로 하고 있지만, 사고가 날 뻔한 경우도 몇 번 있었다.

직진 신호로 바뀌어 출발을 했는데, 그걸 알지 못한 반대차선 운전자가 좌회전을 하는 바람에 크게 사고가 날 뻔했다. 평소엔 햇빛 아래서 광합성하는 식물 같은 남편이 운전할 때는 동물적 감각이 살아있는 짐승이 된다. 이번에도 핸들을 오른쪽으로 재빨리 꺾어 돌진해 오는 차를 피할 수 있었다. 차를 세우고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창문을 내렸다. 문제의 차 뒤에 있던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시끄럽게 손으로 욕하는 모습이 보였다. 함께 손을 흔들어주며 우리는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났다.


가장 위험한 상황은 바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오토바이이다.

밀라노 도로에는 오토바이가 정말 많다. 문제는 오토바이 이용자들이 교통신호를 잘 지키지 않는다는 점이다. 차와 차 사이에 틈만 있으면 비집고 들어가거나, 오른쪽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와 차선을 변경하면 그야말로 운전자는 멘붕이 된다. 아무리 방어 운전을 하고 교통법규를 잘 지켜도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남편을 긴장하게 만든다. 밀라노에서 운전을 하려면 눈치껏 잘 피하고, 눈치껏 잘 달려야 한다. 그러니, 밀라노 시내를 운전하는 남편 옆에서 나는 한 마리 순한 양이 되거나, 그의 기분에 맞춰 추임새를 넣어주는 고수가 되는 것이다.



몇 달 전 남편이 직접 운전을 해서 오스트리아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사이엔 특별한 경계선도, 국경도 없었다. 하지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모든 차들이 규범 속도를 지키며 달리고 있었고 무리하게 끼어드는 차도 없었다. 게다가 오토바이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여긴 정말 운전할 맛이 나는데? 도로가 너무 정갈하잖아~”

남편이 감탄하며 말했다.


3박 4일의 여행을 마치고 오스트리아에서 다시 밀라노로 돌아오는 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탈리아에 진입하자마자 차들은 속도를 내거나 차선을 이리저리 바꾸며 끼어들기 시작했다. 이네 고속도로를 자유롭게 달리는 오토바이들을 만났다. 잠시 휴게소에 들어서니 진한 에스프레소 향이 났다. 나는 아주 아주 친숙한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말했다.


“운 카페 노르말레, 뻬르빠보레~ (에스프레소 한잔 부탁해요~)”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다.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무질서한 도로를 보니 경직되었던 마음이 사르르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밀라노에 산지 2년 만에 무질서 속의 질서에  익숙해져 버린 모양이다.


이탈리아 교통법규에 대한 유튜부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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