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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14. 2023

 이탈리아 식당 말고 중국 식당

밀라노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은?

 밀라노 프랑스 학교엔 네 명의 한국 엄마가 있다.

우리는 프랑스 학교에서 한국 엄마를 만났다는 사실에 서로 놀랐고, 급속도로 친해졌으며, 한 달에 한번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밤마실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중 밀라노에 가장 오래 살았고, 남편이 이탈리아 사람인 수잔 언니가 주로 밀라노 맛집을 추천해 준다.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한 저녁은 아페리티보(Aperitivo)였다. 아페리티보는 저녁 식사를 하기 전 가볍게 주전부리를 먹는 것을 말한다.

이탈리아 일반 가정집의 저녁 시간은 8시 이후이다. 아페리티보는 점심과 저녁 사이의 허기를 잠시 달래주는 용도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우리의 첫 아페리티보는 주전부리 정도가 아니었다. 아페리티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갔더니 다양한 이탈리아 음식이 뷔페로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스프리츠 칵테일을 한잔씩 마시고, 와인 한 병을 더 마셨다. 접시에 빵과 살라미, 뿌로슈또, 치즈, 샐러드, 소시지를 양껏 담고 피자와 스파게티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기름진 음식을 이른 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먹은 그날, 온몸이 느끼해지는 것 같았다.

아페리티보


한 달 뒤에 우리가 간 곳은 평범한 이탈리아 식당이었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피자와 파스타, 샐러드를 먹었다.

그다음 달에도, 그 다음다음 달에도 우리는 계속 이탈리아 식당을 찾았다.

일반적인 이탈리아 식사



“우리 이번에는 마오 가는 거 어때?”

“오~ 좋아, 좋아~”

“요 며칠 시부모님이 오셔서 피자, 파스타만 먹었더니 맵고 짠 거 너무 먹고 싶어.”

“나도~ 마라탕에 마파두부 먹고 싶어.”

“마오 가서 매운 거 먹자!!”

“좋아!!”


넷 중에 중국과 홍콩에서 오래 살다 온 영이는 밀라노에 오자마자 중국식당부터 찾았다고 한다. 여러 중국식당을 다녀보더니 가장 맛있는 중국 식당을 발견한 것이었다. 식당 이름도 중국 스러운 “마오 (Mao)”

들리는 말에 의하면 어느 요리 경연대회에서 상을 탄 셰프라나….. 그래서인지 점심에도 저녁에도 좁은 식당 안에는 손님이 넘쳐난다.


우리는 생선 마라탕을 시키며 몰또 몰또 몰~도 삐깐때(엄청 엄청 맵게)를 외쳤다. 한국 사람의 매운맛과 이탈리아 사람의 매운맛은 다르기 때문에 몰또(molto, 엄청)를 두 번 이상 말하지 않으면 밍숭맹수한 맛의 음식이 나온다.

이것에 더해 마파두부를 시켰다. 이 또한 매운 두반장이 들어가기에 맵고 자극적인 걸 좋아하는 우리 입맛에 딱이다.

우리는 매운 중국 음식을 흡입했다. 피자와 파스타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자극적인 맛, 이마에 땀이 몽글몽글 나는 바로 그 매운맛. 혀끝부터 혀뿌리까지 느껴지는 저릿한 감각!!

거기에 드라이한 레드 와인까지 홀짝이니 금상첨화다.



밀라노에 살지만 내가 아는 이탈리아 음식은 피자와 파스타, 샐러드가 전부다. 이보다 좀 더 다양한 음식이 있겠지만, 이탈리아어에 까막눈인 우리는 식당에 가도 시킬 수 있는 음식이 많지 않다. 게다가 전식, 본식, 후식으로 나누어져 있는 메뉴판이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몇 번 새로운 음식을 시도해 보았지만, 처참하게 실패했다. 그 후로는 매번 같은 종류의 피자와 이미 먹어 본 파스타만 시킨다.

요즘은 이마저도 먹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이탈리아 식당이 저녁 7시에 문을 여는데 우리는 이미 오후 5시 30분부터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외식을 한번 하려고 마음먹었다가도 “그냥 집에 가서 밥에 김치 먹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덕분에 내 한식 요리솜씨는 날로 발전하고 있지만, 밀라노에 살면서 이탈리아 음식을 많이 먹지 않는다는 사실이 조금 아쉽다. 이탈리아 요리를 배워 한국에 가서 전통 이탈리안 식당을 한번 차려보려 했건만…..




배부르게 중국음식을 먹고 나온 우리는 바로 옆에 있는 젤라토 가게로 향했다. 뜨겁게 달궈진 입과 위장을 차갑고 달콤한 젤라토로 달래며,

“우리 오늘 완벽해!!”를 외쳤다.

한달에 한번, 완벽한 일탈


“우리 남편이 뭐 먹냐고 자꾸 문자 보낸다. 매운 거 먹지도 못하면서.”

“이런 건 한국 사람이랑 먹어야지.”

“맞아. 프랑스 사람도 이탈리아 사람도 이런 거 입에도 못 대지.”

“우리 이제부터 피자 먹으러 가지 말고, 여기 오자. 딱 우리 스타일인데? 여름 방학 하기 전에 한번 더 어때?”

“콜!!”

“좋아, 좋아!!”


낯선 타지에서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큰 축복인 것 같다. 게다가 매운 음식을 함께 먹고 다음을 약속할 수 있는 사이라니.

언젠간 우리도 밀라노를 떠나 각자의 길로 갈 테지만, 그때까지 매달 한 번은 주부들의 일탈을 감행하기로 했다.


나중에 밀라노를 떠난다면 피자나 파스타보다도 이 중국식당의 맵고 짠 음식이 가장 아쉬울 것 같다. 그리고 그곳에 함께 있었던 사람의 풍경도 참 많이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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