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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n 22. 2023

1. 남의 집 남편이 부러울 때

시선을 나에게로 옮기는 방법

요즘 나는 꽤 바쁜 일상을 보낸다.

새벽 5시 즈음에 일어나 커피를 한잔 내려놓고 책을 읽거나 필사를 한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들 간식과 남편 간식 겸 점심,  내 점심 도시락까지 준비하고 나면 아침 7시가 된다. 아이들을 깨우고 출근 준비를 한다.


아침을 먹은 흔적을 대충 치우고 8시에 모두 함께 집을 나선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주고 나와 남편은 밀라노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 레냐노(Legnano)에 있는 회사로 향한다. 열심히 영수증을 붙이고, 출금 내역과 입금 내역을 확인한 후 ERP에 예산을 등록하고 전표를 등록한다. 생전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3개월을 했더니 나름 빠릿빠릿 해졌다.

오후 1시가 되면 집에서 싸 온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낸다. 다른 직원들과 옹기종기 앉아 각자의 도시락을 먹으며 영어와 한국어와 이탈리아어를 섞어 잡담을 나눈다.

오후 2시 30분에 일을 마무리하고,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버스 정류장으로 향한다. 버스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15분이 걸린다. 밀라노로 가는 시외버스는 2시 50분에 온다. 그 버스를 놓치면 30분 동안 버스가 없다.


늦지 않게 정류장에 도착해 밀라노행 버스를 탄다. 30분 정도 가다가 밀라노 외곽 지역에서 내린다. 그리고 학교까지 걸어간다. 빠른 걸음으로 20분이면 도착할 거리를 느릿느릿 여유를 부리며 걷는다. 뜨거워진 여름 햇살에 겨드랑이와 배꼽에 땀이 차지만, 3개월 차 다이어터에겐 그마저도 감사하다.


4시에 아이들이 하교를 하면 함께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다시 청소와 빨래와 설거지와 저녁 준비를 한다. 퇴근해서 온 남편과 아이들이 저녁을 먹으면 나는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밖으로 뛰쳐나간다. 3개월째 다이어트 중인 나는 3개월째 저녁을 먹지 않고 있다. 내가 먹지도 않을 저녁을 준비하는 것을 매일 억울해한다.

 1시간 동안 열심히 걷고 뛴 후 집으로 돌아와 간단히 씻고 노트북 앞에 앉는다. 나는 다시 출근모드가 되어 책 편집 일을 시작한다.



내가 전업주부로 있을 때는 그러려니 했지만, 함께 일을 하는 처지에도 남편이 집안일을 하지 않으니 화딱지가 난다. 저녁 먹은 설거지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싱크대에 넣어두고 나 몰라라 한다. 내가 먹지도 않은 그릇을 씻다 보면 다시 억울한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에게 설거지 좀 해달라고 말하면 식기세척기를 들먹인다. 직접 하지 말고 기계를 사용하라나....

“그릇들이 제 발로 식기 세척기로 들어가나? 식기 세척기에 넣더라도 헹궈서 넣어야 할 거 아니야~"

내 말에 그는 침묵으로 대응한다.


회사 일을 도와달라고 먼저 말한 건 남편이었다. 직원을 구하기 힘드니 쉬운 일만 좀 도와달라고 했다. 물론 적은 금액이지만 월급도 주겠다고 했다. 특히 내가 일을 하면 집안일도 함께 하겠다고 그가 직접 말했다.

그런데 역시나…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르다고 했던가…. 그는 여전히 도와주지 않는다.



집안일을 내가 전적으로 하는 것이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다른 집 남편의 말을 듣고 있으니, 갑자기 내가 너무 불행하게 느껴졌다.

아침밥은 직접 차려 먹는 남편, 설거지도 알아서 척척 해주는 남편, 아이들 양육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편, 게다가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그림에세이를 쓰는 남편이라니.


이렇게 우리 집 남편에 대해 험담을 하고 있으니, 개차반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우리 남편은 그 정도는 아닌데,라고 생각한 당신. 조금 전보다 더 행복해지셨길.)


집안일에 대한  배려를 기대했지만 그의 배려에 대한 시선은 언제나 나와 다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열심히 굶식을 하고 운동을 해도 좀체 빠지지 않는 내 뱃살을 보며 움켜 잡으며 한탄하는 내가 불쌍해 보였던 그는 “뱃살 패치”를 주문해 주었다.

배꼽에 패치를 붙이기만 해도 뱃살이 빠진다면서, 후기까지 꼼꼼히 읽고 주문을 했더랬다.

배송된 패치를 배꼽에 붙이며 그의 깊은 배려에 쓴웃음을 날렸다….



모든 불행의 씨앗은 비교에서 시작된다.

내 남편이 다른 집 남편과 비교되는 순간, 내 일상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고 내가 왜 저 인간이랑 결혼을 해서 이러고 사나… 신세 한탄으로 시작해 불행의 늪으로 빠져든다.

그 모든 선택의 결과가 이모양일지라도  선택의 순간엔 진심이었다는 걸, 망각하게 된다.

이 남자를 선택한 것도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을 감행한 것도 행복에 한걸음 가까워지기 위해서인데 어째서 함께 살면 살수록 불행 쪽으로 치우치는 기분이 드는 걸까?



나는 남의 집 남편이 부러울 때마다 우리 집 남편의 원형탈모를 떠올린다.



그의 원형탈모는 3달 전에 시작되었다. 처음엔 50원짜리 동전 크기로 시작된 탈모가 점점 넓어지더니 500원짜리 동전 크기보다 조금 더 넓어졌다. 그냥 방치했다간 정수리 부분이 홀라당 민머리가 될 기세다.

원형탈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스트레스!! “


내가 집안일로 화를 삭일 때 그는 실적과 매출, 회장님과 이사님, 업체와 고객들 사이에서 화를 삭이고 있었던 모양이다.

갑자기 그가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인생은 한 번뿐이고, 너의 인생도 끝나가고 있다. 그런데도 너는 네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너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마치 너의 행복이 달려 있다는 듯이 다른 사람들의 정신 속에서 행복을 찾고 있구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전장에서 생사를 오가며 쓴 황제의 일기, 명상록은  

행복에 대한 시선을 “타인”이 아닌 “나”에게 고정시키라고 말한다.

내 마음을 먼저 살피고, 나를 먼저 존중하여 행복을 그 안에서 찾으라고 한다.

남의 집에 살고 있는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헤아리기 전에, 내 옆에서 코 골며 자고 있는 이 사람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에 대한 이해는 타인과의 비교를 뛰어넘을지도 모르니….


마르쿠스 황제의 말을 교훈 삼아 그를 관찰했다.

탈모 치료를 위해 병원도 가고, 이런저런 약도 사서 바르고, 두피에 좋다는 스프레이, 샴푸, 두피 지압기까지 두루 사는 그를 보며  아끼지 않고 자신을 위해 투자하는 “자기애”의 한 사람이 여기 있었다.


아, 이 사람의 애정표현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그제야 내 뱃살을 위해 뱃살 패치를 주문한 그의 한 없이 넓은 사랑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탈모로 고민하는 그에게 나의 애정과 위로를 담아 말했다.

“우리 학교 아빠들은 대부분 민머리야. 자기 정도면 머리숱 엄청 많은 거지. 원형탈모쯤이야 뭐, 괜찮아. 민머리 돼도 사랑해 줄게…. “


역시 비교는 행복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어제는 방법을 조금 바꿔보았다. 남편을 다른 집 남자와 비교하는 것 대신 내 마음을 비교해 보는 방법이다. 상대방의 행동에 집중하는 대신 내 마음의 변화에 집중해 보았다. 그리고 지금 나의 상태를 남편에게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내 마음이 굉장히 안 좋아서 부정적인 생각이 막 밀려온다. 조심했으면 좋겠어."


발코니에 여유롭게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너튜브를 보고 있던 그가 주섬주섬 일어나더니 갑자기 다리미 판을 펼쳤다. 쌓여있던 (본인) 셔츠를 다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내 셔츠도 몇 개 끼어 있었다.

"남편이 다려주는 셔츠를 다 입어보고, 감개가 무량하네."


그의 행동에 집중된 시선을 내 마음으로 바꾸니, 집안 분위기기 한결 부드러워진 것 같다.


그의 “자기애”에 대한 노력 덕분에 탈모가 있었던 자리에 보송하게 솜털 같은 머리털이 나더니 지금은 제법 길어졌다.


 이미 시작된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타인에게 향한 시선을 나에게로 바꾼다면,

우리 집 남편의 원형탈모처럼 천천히 문제의 구멍이 조금씩 메꿔질지도 모르겠다.





[남의 집 남편이 부러울 때 이렇게 해보세요.]

1. 우리 집 남편보다 더 게차반인 남의 집 남편에 대한 글을 읽으며, '내 남편은 그 정도는 아닌데....' 하며 그 정도의 위로받기 
2. 남편에게 찾아온 신체적 변화를 꼼꼼히 훑어보며 가정을 위해 몸 바쳐 희생한 결과라고 나를 이해시키기 
3.  "너 때문"이라는 말 대신 "내 마음이~"라는 말을 넣어 사용하기 
4. 내 남편의 수만 가지 단점 중에 장점을 하나 발견했다면, 함께 살 이유가 아직 남았다고 생각하기 
5. 내가 다른 집 남편이 부러운 것처럼, 다른 집 아내는 내 집의 남편을 부러워하고 있을 거라고 역지사지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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