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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Jul 03. 2023

2. 집이 있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

집에 대한 개념을 생각하기

“흑**이 모집공고 봤어? “

“완전 로또 수준인데?”

“우리는 한번 해보려고. 안 되면 말고.”

“우리 드디어 모델하우스 오픈했다.”

“발코니 확장이 저렴하네.”

“호* 타입 A 넣었어. “

“경쟁률 장난 아니네.”

“선량아, 넌 청약점수 몇 점이야??”

“응?? 그게… 뭐야. 몰라. 청약통장은 있는데…”

“너도 검단 해보지… 아 너 주소가 시골이지…“

“검담 줍줍 잔여분 나왔어. 너 해봐. “

“그게…. 뭐야???”




전라도 시골에서 나고 자란 우리 다섯 남매는 학창 시절을 광주에서 보냈다. 어쩌다 보니 큰언니가 서울로 상경해 살기 시작했고, 지금은 언니 세명과 남동생 모두 서울, 인천에 살고 있다.

서울에 연고지가 없는 시골 출신의 사람이 서울에 집을 살 수 있는 방법은 “청약”뿐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뭔지도 모른 채 농협에 다니는 큰 형부의 실적을 위해 종합청약통장을 만들었다. 그게 벌써 15년 전이다. 나는 그걸 “집”을 위해 가지고 있다기보다 “이자가 많은 적금”의 의미로 유지 중이다.


언니들과 남동생이 줄줄이 청약에 당첨된 건 최근의 일이다.  

큰언니는 20년 동안 전세에서 전세로 전전긍긍하다가 강북 어느 아파트에 당첨되어 진짜 집이 생겼다. 비록 절반 이상이 은행 지분이지만, 오르는 집값을 보며 흐뭇해한다고…..

둘째 언니, 셋째 언니, 남동생도 줄줄이 인천 어느 지역에 당첨되었다.  요즘은 날마다 아파트 이야기로 카톡창이 시끄럽다.


“집 값이 그리 비싼데 어떻게 사?”

“은행이 사는 거지.  일단 계약금만 마련하고.”

“이자는 어떻게 하고?”

“열심히 벌어서 이자 갚는 거지. 요즘 돈 있어서 집 사는 사람 어디 있어.”

“집값이 오르면 나중에 팔고 시골로 가야지.”

“그게…. 집이야???”


11년 동안 해외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월세에서 월세로 이사를 했다. 해외엔 전세의 개념이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집값 지원이 되는 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월세로 버려지는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열심히 남편의 월급을 모았지만, 집을 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애초부터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사전청약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남편은 그런 통장조차 없다.

한국에 살지 않더라도 부지런한 사람들은 집을 마련해 두고 전세를 둔다는데 우리는 그런 부지런함조차 없었다.

너무나 막연해서 집에 대해 관심조차 두지 않고 살다가, 언젠간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살고 있는 밀라노의 집, 이 집의 주인은 한국사람이다. 우연히 이 집을 보게 되었고 너무 마음에 들어 바로 월세계약을 했다.

이탈리아는 외국인도 집을 살 수 있다. 단, 신원이 보장되어야 하고 은행 대출을 받기 위해 매달 적정금액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



얼마 전, 밀라노에 산지 20년이 돼 가는 내 또래의 한인가족 집에 방문했다. 집은 밀라노 외곽에 있었지만, 한국처럼 아파트 단지가 잘 조성되어 있었다. 공원과 놀이터, 가까운 곳에 마트와 카페, 학교가 있으니 이 정도면 한국 프리미엄 아파트 격이다.

그들은 코로나가 한참 기승을 부리던 2년 전에 이 집을 샀다고 한다. 매달 나가는 월세가 너무 아까워 사버렸다고. 당연히 대부분의 지분은 은행 것이라고 한다.


“집도 너무 좋고 동네도 정말 좋네요. 우린 언제 집을 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진심이었다.

그들은 이탈리아 말도 능숙하게 잘하고, 이탈리아의 세금, 서비스 등 여러 분야를 잘 알고 있었다.

부러웠다. 한 나라에서 오랫동안 살며 그 나라의 문화에  깊숙이 스며드는 그들의 참 부러웠다.


“하우스 푸어라고 들어보셨죠? 저희가 그래요. 월세가 아까워서 집을 샀는데 따박 따박 나가는 대출 이자 때문에 뭘 못해요. 여행도 못 간 지 오래되었어요. “


“에이, 그래도 자가 집이 있잖아요. 그것도 밀라노에.”

“30년 뒤에 제 집이 되겠죠. ㅎㅎㅎㅎ  저희도 집값 지원되면 집 안 샀어요. “


이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도 진심인 것 같았다.

그들은 집값 지원이 되는 회사에 다니며 월세를 나는 우리의 형편을 부러워하고 있을까?




이탈리아는 건축에 진심인 나라다.

아주 작은 마을에도 멋진 성당이 있고, 성당 건물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벽돌 하나하나가 예술품이다. 외향뿐만 아니라 집의 내부도 마찬가지인데, 우리나라처럼 정형화된 집 구조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집구조를 만든다고 한다. 그래서 같은 아파트라도 내부 구조는 각기 다르다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10년 이내의 집은 새집이라고 부른다. 하긴, 시내의 건물은 50년 이상 되었고 여전히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발코니 하나, 대들보 하나에도 예술을 새겨 넣는 사람들이니 오죽할까 싶다.

오래된 약국을 개조하여 만든 식당



그런데 최근에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사정이 많이 다른 모양이다. 건축에 동원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랍계통의 이민자들이기 때문이다. 층간소음이 뭔지 모르고 살던 사람들이 이제는 옆집 사람의 소리가 다 들리는 곳에 살게 되었다고.

심지어 콘센트 하나, 에어컨 하나 제대로 설치가 안된 아파트들이 요즘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집이란 무엇일까?

나에게 집이란 그저 가족들이 편히 지낼 수 있은 공간적 의미인데, 집이 자산이고 재테크인 요즘 세상에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너무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 되는 것 같다.  

 열심히 직장을 다녀 돈을 벌고, 매달 적금을 넣어 목돈을 만들어도 집 하나 살 수 없다는 현실이, 아니 전셋집 하나 얻기 힘들다는 현실이 너무 슬프다.


요즘 내가 목격하는 주거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도가 지나쳐도 한참을 지나쳐 있다. 주거라는 존재가 우리의 삶의 문제에서 벗어나 부동산의 처지로 전락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이제는 재산 증식의 차원을 넘어 로또 같은 투전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중략)….
하이데거의 말을 빌리면 우리의 ‘존재함’이란 ‘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주거 자체가 우리 자신이라는 말인데 우리 자신을 매매나 요행의 가치로 취급하고 있으니 지속되지 못하는 우리의 삶에 문화가 생겨날 리 없고 건강한 공동체가 형성될 리 만무하다. 그래서 누리 사회는 점점 더 소모적이고 투쟁적이 되어가는 것일 게다.
<건축, 사유의 기호. 57p, 승효상, 돌베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건축가의 문장이 꽤 반갑다.


집에 대한 개념이 주거가 아니라 자산이 된 원인은 무엇일까?

건축업자들의 잘못일까, 부동산업자의 잘못일까? 그것도 아니면 나라 정책의 문제일까?

좁은 땅덩어리에서도 하나가 되지 못하고 좌우로 나뉘고, 위아래로 나뉘어 아웅다웅 싸우기만 하는 우리 어른들의 잘못은 아닐는지.


이런 생각을 말하면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어른 취급을 당한다.

남들은 다 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우직한 것이 아니라 바보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정말, 내 집이 있으면 행복할까?

자산이 많으면 걱정이 없을까?

그렇다면 집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왜 여전히 불행하고 힘들다고 말할까?


분명한 것은,

물질이 다인 세상에 살면 살수록 우울은 더욱 넓어지고 공허함은 더욱 깊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이데거가 말한 대로 “우리의 존재함에 대한 증거”는 아닐까.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을 만들어버린 우리 어른들의 잘못일 것이다.

그중에 나도 포함된다.

대학을 나와 열심히 일해도 존재를 위한 집 하나 장만하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무기력하게 삶을 살아가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몹시 미안하다.




집을 가진 자들이 부러울 때

나는 우리가 진정 원하는 집을 상상한다.

마당이 있고, 나무가 있고, 꽃이 있는 집.

이웃이 놀러 오면 차 한잔 내어줄 수 있는 집.

집을 팔아 자산을 불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와 의미를 보여줄 수 있는 집.

이 땅에 사는 동안 잠시 거주하며,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집.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은 걸 보니, 난 아직도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 어른인가 보다.


과연 이런 집에 살 수 있을까?

이런 집을 구하려면 일단 돈을 벌어야 하겠다….


작은 소도시, legnano에 있는 직은 성당



[집이 있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 이렇게 해보세요.]
1. 집은 없지만, 빚도 없는 재정현실에 안도하기 
2. 남들이 사는 집 말고, 내가 진짜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해 보기 
3. 내 존재를 좁은 집안에 한정 짓지 말고, 넓은 세계로 시선을 돌리기 
4. 내 자녀에게 물려줄 집은 없지만, 풍성한 경험과 풍족한 사랑을 물려줄 수 있음에 감사하기 
5. 인구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으니, 언젠가는 사람보다 집이 더 많아서 아무 데나 살고 싶은 집에 살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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