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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May 15. 2023

2. 명품가방 말고 에코백

직접 만든 에코백을 당당하게 매고 다니기

한참 자고 있을 때 카톡이 울렸다. 한국과 밀라노의 시차로 낮과 밤이 다르기에 매일 있는 일이다. 그래서 자기 전에는 핸드폰 알람을 무음으로 바꿔 놓는데 그날은 깜빡하고 바꾸지 않았던 모양이다. 새벽 3시에 일어나 핸드폰을 들고 메시지를 확인했다.  

“언니 잘 지내요?”

“응, 잘 지내고 있어. 넌 어때?”

“저도 잘 지내요. 한국 언제 안 오세요?”

“이번 여름에 갈 계획이야.”

“아, 그럼 혹시 저 가방 하나 알아봐 줄 수 있어요?”

이네 생소한 가방 사진이 전송되었다.

“밀라노에서 싸게 살 수 있다던데….”


나는 핸드폰 알람을 무음으로 바꾼 후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옆방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숨소리와 바로 옆에서 들리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텅 빈 새벽을 가득 채웠다. 모든 소리가 잠든 틈을 타 자기들 세상인 양 시끄럽게 떠드는 새들의 소리가 들렸다. 새벽 3시에 잠에서 깬 사람에게 필요한 음악은 분명 자장가여야 하건만, 이건 그냥 소음에 불과했다. 특히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가장 거슬렸다. 나는 조심히 몸을 돌려 엄지와 검지를 들고 그의 콧구멍을 지그시 눌렀다.

“드르렁 푸~”하던 소리가 “픕픕 컥” 하는 소리로 바뀌었을 때 가만히 손가락을 떼었다.

하지만 시끄러운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귀에 들리는 소음 보다도 마음에 울리는 소음이 더 문제였다.

잠이 완전히 달아나 버렸다.




내가 밀라노에 간다고 했을 때 몇몇 사람들이 나에게 “명품 구매대행” 일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한국에서는 비싸게 팔리는 명품 가방을 밀라노 현지에서 싼 값에 구입해서 구매자에게 보내주는 일인데 고객과 신뢰가 생기기만 하면 돈을 잘 벌 수 있다고 했다. 여행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었을 때 선택한 일이 구매대행 일이라고 한다. 그중에는 성악을 전공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밀라노로 유학을 왔다가 다양한 이유로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밀라노에 남은 사람들이다.

돈을 잘 벌 수 있다는데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 듯 보였다. 나는 한국에 있는 언니와 동업할 계획까지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에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명품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아는 명품은 고작 루이비*, 샤*이 전부였고, 진품과 모조품의 차이조차 전혀 알지 못했다. 명품 가방을 사본 적이 한 번도 없으며, 매장에 들어가 본 적도 없다. 40 평생 내가 산 가방 중에 가장 비싼 것은 19만 원짜리 가방이었다. 그것도 몇 날 며칠 고민하다 겨우겨우 산 가방이었다.

명품과는 거리가 너무 먼 삶을 산 내가 명품 구매대행을 할 수 있을까?


밀라노에 산지 2년 차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명품 매장에 들어가 보지 못했다. 명품 매장 앞을 지나갈 때면 이상하게 누가 쳐다보는 것도 아닌데 마음이 쫄린다. 현지에서 싸게 살 수 있을 때 하나 장만해 두라는 지인들의 말에도 나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 거린다. 그 가격이 나에겐 결코 싸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명품 구매대행을 결코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밀라노에 오기 전에는 밀라네제(밀라노 사람들)는 모두 명품 가방을 들고, 명품 옷을 입는 줄 알았다. 밀라노살이 2년 차가 된 지금은 그게 나의 커다란 오해였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들은 각자 취향대로 개성 있게 옷을 입는다. 우리나라처럼 유행이라는 게 따로 없는 듯하다.

배꼽이 다 보이는 티셔츠를 입고도 당당하게 걸어 다니고, 한여름에는 끈나시 하나, 등이 훤히 다 보이는 비키니 같은 옷을 입고 다니기도 한다. 속옷만 입고 공원에 누워 몸을 노릇노릇하게 굽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미 더워진 여름 날씨에도 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그러려니…. 하며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지나간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나 또한 무심한 듯 지나가며 신기한 듯 사진을 찍는다.



최근에 나는 내가 직접 그린 그림을 프린팅 한 에코백을 꺼냈다. 공간이 넉넉한 가방에 책과 노트, 작은 필통, 우산까지 넣고 카페로 향했다. 여유가 넘치는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에코백에서 책을 꺼냈다.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가방을 메고 어떤 모습을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이곳, 밀라노에서 나는 나의 마음을 가장 신경 쓰고, 나의 내면을 가장 돌보며 지낸다. 명품 가방은 여전히 하나도 없지만, 나에겐 자기애가 생겼다. 그건 바로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명품보다 빛나는 넉넉한 마음 가짐이다.



나는 뒤집어 놓은 핸드폰을 들고 후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명품 브랜드를 잘 몰라. 사실은 명품 매장 근처에도 안 가봤어.”


밀라노에 살면 당연히 명품과 가까울 거라는 편견에 돌을 던지니, 해방감이 들었다.

나는 명품 가방 대신 내가 직접 만든 에코백을 당당히 들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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