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생애 첫 수학여행은 성공적!

밀라노 프랑스학교 이야기

by 선량

코로나로 몇 년 동안 닫혀있었던 수학여행이 올해 다시 재개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초등 1학년 때부터 수학여행을 간다고 하는데 밀라노 프랑스학교는 초등 4학년(CM1) 때 첫 수학여행을 간다. 초등 5학년(CM2)인 큰아이는 2년간의 코로나 여파로 수학여행 한번 가보지 못한 채 9월이면 중학생이 된다. 아쉽지 않으냐고 아이에게 물어보았지만, 전혀 개의치 않아 보인다. 하긴, 워낙에 잠자리가 바뀌면 잘 자지 못하고, 차멀미가 심한 아이니까. 요즘도 매일밤 자기보다 먼저 자지 말고 꼭 깨어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통에 졸린 눈을 끔뻑 거리며 아이의 숨소리가 거칠어지길 기다리니까….

잠자리에 예민한 아이가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던 건 신의 한 수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첫 수학여행을 위해 학년 초부터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에 많은 논의가 오갔다. 기대하는 부모도 있었지만, 걱정하는 부모도 있었다. 그중에 단 한 번도 아이와 떨어져 본 적이 없는 레바논 출신 엄마, 마즈달라는 눈물을 글썽거리기까지 했다. 심한 내전과 전쟁을 온몸으로 겪으며 탈출한 그녀는 트리우마가 생겼다고 한다. 자신이 컨트롤 할 수 없는 곳에 아이들이 있는 걸 몹시 불안해하는 증상이다.

과연 마즈달라의 딸, 발렌티나는 수학여행을 잘 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녀와 다르게 수학여행을 반기는 부모였다. 첫째와 다르게 독립심이 강하고, 친구집에서도 잘 자는 둘째이기에 걱정은커녕 기대가 더 되었다.

그건 둘째도 마찬가지였다. 수학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빨리 가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였다.


수학여행 장소는 밀라노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토리노라는 도시이다. 이곳은 영화 박물관과 미술관이 유명해서 이탈리아 초등학생들이 꼭 방문하는 도시라고 한다.


아이의 수학여행을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적당한 캐리어를 고르는 일이었다. 한국과 밀라노를 오가며 짐짝처럼 들고 다닌 캐리어가 여러 개 있었지만, 왠지 아이의 수학여행엔 어울리지 않았다.


밀라노에서는 매우 쉽게 케리어를 살 수 있다. 길거리에서 파는 곳도 많고, 작은 가게에서도 케리어를 판다. 물론 두오모 근처 시내에서 고가의 명품 케리어를 팔기도 한다. 여행자가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주말이나 쉬는 날이면 훌훌 여행을 떠나는 이곳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우리는 평소에 자주 가는 집 근처 마트에서 아이가 원하는 색상의 케리어를 골라 집으로 끌고 왔다. 아이는 그 케리어에 대한민국 태극기와 절친의 베이비시터가 만들어준 네임 스티커를 떡하니 붙여두었다.

어딜가나 코리아부심


수학여행 일주일 전,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챙겨야 할 물품 리스트가 (프랑스어로) 이메일로 도착했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하나하나 찾아봐야 하기에 며칠 동안 무시하고 있었는데, 딸아이가 리스트를 보여달라고 했다. 나는 올타꾸나! 리스트를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프랑스어에 까막눈인 나는 어쩌다 보니 방관 육아를 하고 있는데 이론 엄마 덕분에 아이는 자기 주도적인 초등학생이 되었다.

아이는 리스트를 하나하나 짚어보며 스스로 짐을 챙겼고, 나는 그런 아이를 멀찍이서 바라만 보았다.

내가 한 거라고는 디지털카메라의 충전기를 충전시켜 준 것뿐….

스스로 여행짐을 싸는 아이를 보며 언제 이렇게 컸는지, 감회가 새로웠다. 하긴, 생후 90일 때부터 짐을 싸고 푸는 삶을 살았으니, 겨우 2박 3일의 짐은 아이에게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기대하던 수학여행을 하루 앞두고 아이는 갑자기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한 방을 써야 하는 친구와 감정적인 문제가 생겼고, 처음으로 집을 떠나 멀리 여행을 가는 것이 걱정된다고 했다. 혹시나 무슨 사고가 나는 것은 아닌지, 갑자기 몸이 아프면 어떡할지, 오만가지 염려를 하기 시작했다.


“소은아,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 때문에 생애 첫 수학여행을 망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네가 걱정한 일이 한 번이라도 일어난 적 있었어? 엄마도 수학여행을 가봐서 아는데, 수학여행 가면 친구들과 더 친해지고 더 재밌게 놀기도 해. 다른 방에 가서 놀기도 하고 평소에 안 친했던 친구와 친해지기도 해.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기대를 해봐~“


그날 밤, 아이가 잠든 후 나는 아이에게 카드를 써서 캐리어에 몰래 넣어두었다. 아이의 첫 여행이 부디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너의 첫 여행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길, 그래서 네 인생의 모든 여행이 첫 여행 처럼 즐겁길…
잘 다녀와~~

아이들이 수학여행을 떠난 날 저녁부터 학교에서 아침, 저녁으로 이메일이 왔다. 토리노에 잘 도착했다고, 아이들이 잘 자고 아침을 먹었다고, 뮤지엄에 다녀오고 소풍을 했다는 소소한 소식을 매일 전해주었다. 나는 아이에 대한 걱정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그 메일을 받으니 더욱 안심이 되었다.




2박 3일 동안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들의 표정은 꽤 밝았다.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차사고가 나서 한 시간 정도 지체되긴 했지만, 버스 안에서도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며 잘 지냈다고 한다.

아이를 눈물로 겨우겨우 보냈던 마즈달라 역시 그녀의 딸, 발렌티나를 보자마자 꼭 껴안으며 염려를 내려놓는 모습을 보였다.


아이들은 2박 3일 동안 잘 먹고, 잘 놀고, 잘 잤다고 한다. 집에선 잘 씻지도 않았던 아이들이 매일 아침 샤워를 했다나…..

선생님의 말에 의하면 늦도록 잠을 안 자고 떠든 아이들이 있었다고 한다.(내 딸이 그중 한 명인 듯….)


“거봐~ 미리 걱정해 봤자 아무 소용없지? 재밌을 거라고 엄마가 말했잖아. 다음부턴 미리 걱정하지 말고, 기대하자~”

친구들과도 재밌게 놀았고, 잘 몰랐던 다른 반 친구들과도 친해졌다는 아이에게 한마디를 날렸다.



아이의 첫 여행은 성공적이었다.

부디, 이 첫 여행의 기억이 오래도록 남아 아이 생애 수 없이 많을 다양한 여행을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모든 여행이 성공적일 수는 없겠지만,

본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은 아름답고,

마음은 여유로우며

음식은 맛있는 법이니까.

이 진리를 아이가 스스로 깨달아가기를,

엄마는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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