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때는 간호사, 지금은 환자

part 1. 나의 친애하는 자궁에게

by 선량

“최선량 님, 혈압, 체온 한번 잴게요. 관장약 드셨죠? 물 많이 드셔야 잔변이 모두 나와요. 대변 몇 번 보셨는지 나중에 말씀해 주시고요. 혹시나 변이 잘 안 나온다면 관장을 해야 할 수도 있어요. 오늘 자정부터는 금식이세요. 물도 드시면 안 됩니다. 목걸이, 반지, 귀걸이 다 빼셨죠? 내일 아침에는 수술복으로 갈아입으셔야 하는데요, 위아래 속옷 모두 탈의해 주세요. 머리는 하나로 묶어주세요. 혹시 불편한 점 있으시면 말씀해 주세요.”


아직 앳돼 보이는 간호사가 속사포처럼 말했다. 나는 그녀의 문장이 끝날 때마다 처음 들어본 말인 것처럼 “네, 네.”하며 대답했다.

보호자가 필요 없는 간호통합병동이었지만, 혹시나 해서 남편을 지정보호자로 등록했다. 지정보호자에게는 분홍색 팔찌가 채워졌는데, 입원기간 내내 이 팔찌가 있어야 병동 입실이 가능했다. 각 병동마다 굳게 닫힌 문을 열기 위해서는 팔찌에 붙어있는 바코드를 스캔해야 하는 최신식 시스템이 꽤 낯설게 느껴졌다.

그동안 우리가 해외에서 해외로 이사하며 여러 나라에 적응하는 동안 한국은 몰라보게 변해있었다. 그건 병원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에 사시는 정아 작가님을 서울역에서 만나 근처 카페에 갔을 때 카페 밖에 있는 키오스크를 발견하지 못하고, 주문도 하지 못한 채 허둥대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주문을 받는 곳을 다시 찾아갔다. 해외 사는 우리 둘이 합쳐 한국인 한 사람의 몫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자각하며 허탈하게 웃었다. 큰아이의 예방접종을 위해 소아과에 방문했을 때도 접수를 받는 건 사람이 아니라 키오스크였고, 1년 넘게 손대지 못해 라푼젤이 되어가는(얼굴 빼고)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 미용실에 찾아갔을 때도 온라인으로 예약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고작 마스크 하나로 비대면 세상을 살았던 우리가 갑자기 기계를 통한 비대면 세상에 뚝 떨어진 느낌이었다.



5인실 병동이었지만 프라이버시를 위해 각자 커튼을 쳐놓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이유로 입원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옆에서 들리는 끙끙 앓는 소리와 간호사의 처치 소리, 보호자의 “괜찮아?”하는 소리를 통해 이제 막 (어떤) 수술을 하고 왔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비대면 세상은 이 작은 병실에도 고스란히 존재했다.


남편을 아이들에게 보낸 후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병원에 오기 전 큰아이가 수족구에 걸려 열이 많이 났었는데 아이가 힘들어하는 것은 아닌지, 둘째 아이에게 옮긴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침대에 바로 누워 아무도 날 찾지 않는 자유를 누리고 있었지만, 내 사고는 아이들에게로, 곧 위암 수술을 하실 아빠에게로, 그리고 15년 전의 나에게로 향했다.



“000 님. 정신이 좀 드세요? 지금 수술 마치고 병동으로 오셨어요. 혈압이랑 체온 좀 젤게요. 오늘은 이렇게 누워 계셔야 하고요, 왼쪽 오른쪽으로 몸을 좀 돌리셔야 해요. 소변줄이 꽂혀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요. 무통주사가 있으니 많이 아프시진 않을 거예요. 그래도 너무 아프시면 여기 버튼을 한번 눌러주세요. 근데 너무 많이 누르시면 머리가 아프거나 구토가 나올 수 있어요. 심호흡하셔야 몸속에 가스가 나와서 내일 덜 힘드실 거예요. 오늘은 계속 금식하셔야 해요. 물도 드시지 마세요.”


이제 막 자궁 수술을 마치고 회복실을 거쳐. 병동으로 돌아온 환자를 맞이했다. 작은 수첩에 환자의 혈압과 맥박, 체온을 적고 환자가 달고 온 수액의 양과 이름을 적었다. 환자 상태를 확인한 후 병동 스테이션으로 돌아와 차팅(charting)을 했다.

내가 일했던 서 2 병동은 산부인과 병동이었다. 부인과 질환의 환자들과 분만 후 산모들, 산과 관련 환자들이 입원해 있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분만 케이스는 많지 않았다. 그래서 맨 끝 다인병실에는 재활의학과 장기 환자들이 입원해 있었고, 1인실이나 2인실에는 소아과 병동에 자리가 없어 대기해야 하는 소아과 환아가 입원하기도 했고, 1인실을 원하는 이비인후과 환자가 입원하기도 했다.


산부인과 병동에는 주로 부인과 질환의 환자들이 수술을 위해 입원했다. 개복을 통한 자궁 적출술, 복강경 자궁 적출술, 질을 통한 자궁 적출술, 자궁근종제거술 등 대부분 여성생식기와 관련된 케이스였다.


수술 전날 환자가 입원을 하면 수술부위 피부준비(shaving)를 하고, 관장을 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복강경 수술을 할 때 배꼽을 깨끗이 씻는 것이었다. 배꼽을 통해 복강경을 삽입하기 때문이었다. 피부 준비와 관장이 끝나면 수술 전 설명을 하고, 가장 두꺼운 수술용 바늘로 라인확보(정맥주사)를 한 후 링거를 연결했다.

이 일은 이브닝 듀티의 막내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으며, 수술 전에 꼭 해야 하는 루틴이었다.


나는 이 루틴에 한 가지 일을 더했다. 그건 바로 수술을 앞둔 환자들에게 작은 카드를 써주면서 기도를 해주는 일이었다. 병원이 기독교 병원이기도 했고, 함께 일하던 간호사들 모두 크리스천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환자의 종교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수술을 앞둔 환자와 보호자의 마음은 모두 간절하니까. 그게 근종만 떼어내는 아주 간단한 수술일지라도, 수술실이라는 낯선 공간에 홀로 누워있다 나오는 경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산부인과 환자들이 지긋지긋해질 때 즈음 병원을 그만두었다.

모든 여자들이 자궁질환 예비군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리 마음을 다해 일해도 돌아오는 건 환자, 보호자의 컴플레인뿐이고, 아프다는 아우성뿐이었을 때 내 일에 대한 회의감을 느꼈다. 거기에 더해 한 듀티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이 점점 나를 짓눌렀다.

나는 산부인과 병동을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났다.


“최선양 님, 정신이 좀 드세요? 자리로 이동할게요. 이 병실로 왔어요. 좀 어떠세요? 많이 아프시죠? 여기 무통주사 있어요. 너무 많이 아프시면 버튼을 눌러주세요. 너무 많이 나오면 어지럽거나 구토가 나올 수 있어요. 심호흡 잘하셔야 몸속에 있는 가스가 나올 수 있어요. 숨 깊게 쉬고 내쉬세요. 소변줄 꽂아져 있고요, 지금은 물도 드시면 안 되지만 이따 저녁 8시부터 물 드실 수 있어요. 많이 불편하시거나 아래로 출혈이 느껴지시면 간호사 불러주세요.”



전진마취가 덜 깼는지 정신이 몽롱했다. 팔다리의 감각이 느껴지긴 했지만, 나른함이 온몸을 감쌌다. 내 다리 사이로 소변줄이 느껴졌다. 아랫배를 만져보니 배가 홀쭉해져 있었다. 어느새 내 자궁이 내 몸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배꼽 부위에서 둔탁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간신히 손을 뻗어 무통주사 버튼을 눌렀다. 드르륵 거리며 무통주사가 내 몸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착한 환자답게 열심히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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