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위가 없는 아빠와 자궁이 없는 딸

part 2. 여자로 사는 삶

by 선량

내가 산부인과 진료를 보기 이틀 전, 엄마가 갑자기 응급실에 가셨다. 오른쪽 배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고 하셨다. 맹장염인 것 같다고 했다. 그날은 이래 없는 폭우로 전국이 물난리가 났던 때였다. 아빠는 폭우에도 불구하고 아파하는 엄마가 걱정되어

1시간 거리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직접 운전해서 엄마를 데리고 가셨다.


위암 판정을 받고 수술 날짜를 기다리고 있던 아빠에게 보호자 역할을 맡길 수는 없었다. 다섯 자식들 중에 시골에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큰언니의 연락을 받은 후 바로 ktx를 예매했고, 아이들을 셋째 언니에게 맡긴 후 배낭 하나를 메고 엄마에게로 향했다.

기차는 폭우 때문에 약해진 지반으로 서행을 거듭했다. 3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인데 5시간이 넘게

걸렸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하니, 아빠가 보호자 팔찌를 끼고 응급실 입구에 서 계셨다. 나는 아빠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엄마의 보호자가 되었다.


다행히도 엄마는 맹장염이 아니라 요로결석이었다. 맹장염이 아니어서 다행이었지만, 요로결석 통증이 어마무시해서 마약성 진통제 주사를 맞아야 통증을 잡을 수 있다.

엄마는 진통제를 맞고, 수액을 맞은 후에야 통증이 가라앉았고, 한숨 자고 일어나니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엄마는 자신이 자식들에게 짐이 된 것에 대해 미안해하셨다. 뭐 하러 여기까지 왔냐며 역성을 냈지만, 표정은 밝아보였다.

나는 그런 엄마를 나무라며 말했다.

“엄마, 당연히 자식들에게 연락해야지. 그리고 당연히 내려와야지. 내가 올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다음에 또 아프면 참지 말고 꼭 연락해요. 그게 자식이지. “

다행히도 엄마는 다음날 바로 퇴원을 하셨고 나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내가 자궁적출수술을 받고 퇴원하던 날, 아빠는 위암 수술을 위해 서울대병원에 입원하셨다. 아빠의 팔순잔치는 무기한 연기가 되었고, 아빠가 수술하기 전에 가족사진을 찍으려고 했던 계획 역시 내 수술일정과 겹치는 바람에 취소하고 말았다.


가족 중에 누군가가 왜 이렇게 힘든 일들이 줄줄 생기는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아팠을 때 내가 보호자가 될 수 있어서 감사했고, 적절한 시기에 수술을 받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리고 아빠가 위암 수술을 할 때 내가 한국에 있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

무엇보다도 이 위기의 시간에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아빠의 위암 전이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아서 위 윗부분을 남길 수 있어서, 췌장의 꼬리 부분만 잘라낼 수 있어서, 개복술을 하지 않고 복강경으로 수술을 마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언니들이 돌아가며 아빠의 보호자가 되었을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도움 못돼서 미안해.”

라고 내가 말했을 때 언니들은 오히려 네 몸이나 잘 챙기라고, 너도 환자라고 나를 다독여주었다. 나는 마음이 한없이 넓은 언니들이 있다는 것이 참 감사했다.


아빠는 위 수술을 마친 후 힘겨운 나날을 보내셨다. 수술 후에도 며칠 동안 금식을 하셨고, 아픈 몸을 이끌고 걷기 운동을 해야 했다. 아빠가 스스로 몸을 가누고 미음을 드시기 시작했을 때 드디어 엄마가 아빠의 보호자가 되셨다. 엄마는 보호자 침대에서 지내는 것이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은 편하다고 하셨다.


드디어 아빠와의 면회가 가능해진 날, 아빠를 만나러 서울대병원에 갔다.

아빠는 많이 야위였지만, 암환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옆에 있어서 더 좋은지 표정도 좋아 보이셨다.


“아빠, 몸 좀 괜찮으세요?”

“나야 일 없다. 니가 걱정이지. 몸 좀 어떠냐? 수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디 어찌 비행기 타고 간다냐. “

“아이고 아빠 걱정이나 하세요. 나는 암도 아니구먼.”

“그래도 그런 수술을 하고 몸 회복 잘해야지. 호르몬 약 먹어야 하는 거 아니여?”

“아직은 안 먹어도 된데요. 내 걱정 마시고 아빠 걱정이나 하세요. 이제 항암치료 하려면 체력 잘 유지해야죠. “

“나야 느그 엄마도 있고, 아프믄 병원가믄 된다지만 니는 외국에서 어쩌냐….”


위암 환자인 아빠는 본인 걱정보다도 딸 걱정을 더 하셨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위를 떼어낸 남편 걱정 보다도 자궁을 떼어낸 딸을 더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런 아빠의 손을 꼭 잡았고, 엄마는 그런 내 등을 토닥이며 쓰다듬었다.

엄마의 백 마디 말보다도 내 등에 닿는 엄마의 손길이 너무 사무쳤다. 눈물이 중력을 거슬러 다시 눈물샘으로 들어가도록 두 눈을 부라렸다.


그날 저녁, 엄마가 메시지를 보냈다.

“선량아 아빠가 니 통장으로 용돈을 좀 보내셨다.”

“아이고, 나 돈 있는데? 아빠 병원비 하셔야지.”

“병원비 걱정은 말어.”

“네. 감사해요. 잘 쓸게요.”



내 나이가 사십이 넘고 오십이 넘어도 나는 여전히 그분들의 딸이라는 것을,

부모는 죽을 때까지도 자식 걱정만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부모와 자식은 미안하고, 미안해 하는 사이라는 걸 알기에

나는 팔십이 된 아빠가 준 용돈을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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