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남성과 여성에 대하여 [호르몬 전쟁]

2장. 여자로 사는 삶

by 선량

자궁을 떼어냈다고 말하면 하나같이 같은 질문을 했다.

“그럼 호르몬약 먹어야 해?”

여성호르몬은 자궁이 아니라 난소에서 분비된다는 사실을 잘 모르고 하는 질문이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기안 84를 떠올렸다.

얼마 전 여성비하적 웹툰으로 대중의 뭇매를 맞던 사람이 인도의 문화를 비하하지 않고 성큼성큼 들어가 직접 경험하는 모습을 통해 대중의 환호를 받는 사람 말이다.



최근에 기안 84의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프로그램이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그 프로그램을 본 친구들은 “너 그런 곳에서 산 거야?” 라거나 “그런데서 어떻게 살았냐?” 라며 놀라워했다. 부분적인 면만 보고 하는 말이었다.

겐지스강 물을 먹는 기안84

”걔내들이 그런 곳만 찾아다니는 거지, 내가 살던 동네는 좋은 동네였다고. 사람들이 영어도 잘하고, 스마트했다고!! “

이런 말을 아무리 해도 재미를 위해 편집된 프로그램의 위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인도에서 살 때 인도에 대한 글을 브런치에 종종 쓰곤 했다. 가끔 그 글에 이상한 댓글이 달리곤 했는데, 바로 “인도에서는 여자들이 위험하다”라는 내용의 댓글이었다. 한참 인도에서 집단성폭행 관련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오던 때였다. 인도에 직접 살아보지 않고 인터넷 기사로만 인도를 접한 사람들은 편견을 갖기 마련이다. 그곳에 살았던 나는 단 한 번도 여자로서 위협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내가 안전한 시간에 안전한 장소로만 다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해가 지면 집 밖을 나가지 않았고, 낯선 곳에 갈 때는 친구와 함께 갔으며, 사람들이 많은 마트나 쇼핑몰, 관광지만 다녔다. 대중교통도 잘 이용하지 않았고 필요할 땐 우버택시를 타거나 남편이 직접 운전을 했다.

샤넬 가방을 든 사모님과 길에서 넝마를 줍고 있는 아이가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그 빈부의 격차적인 풍경이 너무나 흔해서 다들 아무렇지 않게 삶을 살아갔다.





요즘 한국에서는 안전한 시간과 안전한 장소의 경계가 사라진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뜨는 폭행사건, 묻지 마 살인 사건, 데이트폭력사건의 피해자의 대부분이 여성이다 보니, 여성으로서 우리나라에 사는 것이 점점 더 두렵게 느껴진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는 핸드폰을 꼭 쥐고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그 누구의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눈을 내리깐다. 사람이 드문 곳은 가지 않으며, 동네 숲 속 둘레길을 갈 때는 언니와 꼭 동행을 한다.


이런 불안을 남편에게 말하니, 너무 과도한 생각이 아니냐는 투로 말했다.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것이 불편하다고 했다.

남편의 반응도 이해가 된다. 기안 84의 인도여행은 극히 일부의 모습인데, 마치 인도 전체가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사건 피해자가 여성이고, 가해자는 아는 남성이거나 모르는 남성이기에 이런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내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슈퍼우먼이 되거나 남자로 다시 태어나야 할 것만 같다.

슈퍼우먼이 되려면 어찌해야 할까



나는 이 모든 발단이 바로, 호르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호르몬 전쟁, BTS


올해 내 큰아이와 조카는 초등학교 6학년이다. 아이스럽기만 하더 아이들이 점차 여성과 남성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다른 여자 아이들에 비해 발육이 느리긴 하지만, 가슴이 살짝 나온 조카는 브래지어를 입기 시작했다. 그런 사촌을 향해 내 아들아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너도 브래지어 입어? “

“당연히 입지. 얼마나 덥고 불편하지 모르겠다.”

조카는 아직 생리를 시작하진 않았지만, 곧 초경이 시작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생리를 하면 얼마나 불편하고 배가 아픈지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아들아이가 또 한마디를 했다.


“야, 남자는 군대를 가잖아.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나는 이 아이들의 대화를 들으며 한 가지 모순을 발견했다.

브래지어를 하거나 생리를 하는 것은 당연히 불편하다. 그 불편함을 말하는 것이 결코 “남성은 그런 걸 하지 않아서 좋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여성으로서의 불편함을 공감해 주면 되는 일이다.

“정말, 불편하겠다. 참 힘들겠다.”

이 말 한마디면 되는데, 왜 꼭 군대 이야기로 연결되는 것일까?

알다가도 모르겠다.



아이들이 여성과 남성으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바로, “성 호르몬”이다.

성호르몬은 남성과 여성의 생식소에서 생식기의 성장, 발달을 촉진하여 3차 성징의 발현이나 생식행동을 일으키는 호르몬을 말한다.

남성 호르몬을 총칭하여 안드로겐(Androgen)이라 하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호르몬이 바로 테스토스테론(Testosterone)이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정소(精巢)에서 분비되며 음경의 증대, 콧수염의 발생, 변성 등 2차 성징의 발현을 촉진한다. 또한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의 성적 욕구와 행동을 자극하며, 폭력이나 공격성과 관련된다고 알려져 있다. 근육단백질의 합성을 증가시키고 특히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 근육의 크기와 강도를 증진시키는 작용을 한다.


여성의 난소에서 생성되는 대표적인 여성호르몬은 황체호르몬인 프로게스테론(progesterone)과 여포호르몬인 에스트로겐(estrogen)이다.

여성호르몬은 난소의 성숙 난포에서 생성되어 여성의 2차 성징 발현을 촉진시키고, 수정란을 자궁벽에 착상시키기 위해 내막을 비후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여성호르몬의 작용으로 자궁벽이 허물어지고 두터워지는 주기적인 변화가 발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월경이다.

2차 성징으로 난관, 자궁, 질, 외부생식기의 크기가 증가하고 유방이 발달하며, 겨드랑이모와 음모가 자란다. 또한 가슴과 엉덩이 부분에 피하지방이 축적되고, 골반이 넓어진다.

에스트로겐은 임신을 유지하고 유즙을 생산하기 위해 유방을 자극하며, 프로게스테론은 임신기간 동안 자궁 근육을 두텁게 유지시켜 배아의 착상이 유지되도록 한다.

즉 여성호르몬은 여성이 임신을 하고, 태아를 유지하고, 아기를 낳고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과 남성에게 분비되는 호르몬은 엄연히 다르다. 그러니 신체적 특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 신체적 특성리 다르니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출산과 양육에 최적화된 에스트로겐 호르몬을 분비하는 여성이, 공격성과 근육단백질에 최적화된 테스토스테론을 분비하는 남성을, 힘으로 이길 수는 없다.

이것은 남성이나 여성, 둘 중 하나가 잘났거나 못났다는 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이다.

서로 다른 호르몬을 분비하는 남성과 여성이 만나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며 살라는 의미가 아닐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것.

한 가정에서 부모가 가르쳐야 할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데이트폭력을 당한 어느 여성의 기사를 읽으며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부모까지 합세하여 사랑이었고, 합의하에 이루어진 일이었다고 하는 걸 보니, 그 부모에 그 자식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순간, 아직 어린 내 딸이 눈에 들어왔다.

몇 년 후면 여성호르몬이 분비되어 2차 성징이 시작될 것이고, 초경을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험란한 여성으로서의 일생을 시작할 것이다.

이 험한 세상을 아이가 잘 견디며 살아주기를….

저 아이는 부디 배려하고 배려받는 세상에서 살길,

사랑이라는 가면에 속지 말고, 진실한 사랑을 하길,

간절히 바랐다.



언론에 보도된 나쁜 남성들보다 우리의 가까이에서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사는 배려 넘치는 남성들이 많다는 걸 안다. 뉴스는 언제나 자극적이고, 하나의 사건을 크게 부풀리는 오류를 만든다. 몇몇의 나쁜 기사로 모든 남성을 잠재적 범죄자로 보는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순 없다.

그럼에도 내 아들에게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올바른 가치관을 잘 가르치고 싶다.


호르몬을 뛰어넘어 절제하고 조화를 이루도록 가르칠 곳은 역시 가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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