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3. 자궁이 없는 삶
얼마 전 자궁적출수술에 관해 검색을 해보다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읽었다.
아내가 자궁적출수술을 했는데 남편이 지인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아내가 빈궁마마가 되었다"라고 하며 웃음 이모티콘을 보낸 모양이다. 그 메시지를 본 아내는 남편에게 너무 화가 났다고 한다. 수술을 하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아내에 대한 배려도 없이 자궁이 없는 자신을 비하하며 빈궁마마라고 말한 남편에게 너무 서운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아내의 반응이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다. 남편 입장에선 충분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빈궁(貧宮) 마마:
자궁이 비었다는 뜻으로 자궁적출 수술을 한 사람을 우스개 소리로 일컫는 말
나는 이 어휘를 20여 년 전 신규간호사로 산부인과 병동에서 일할 때 처음 들었다.
데이, 이브닝, 나이트 근무시간에는 빼먹지 말고 꼭 해야 할 루틴이 있었다. 출근 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물품카운팅. 병동 물품이 하나라도 보이지 않으면 병동을 샅샅이 뒤져 찾아내야 했다.
듀티 라운딩을 돈 후에는 활력징후(혈압, 맥박, 체온, 호흡)를 측정하고 차트에 기록했다. 정맥주사를 놓고, 먹는 약을 주고, 중간중간 입원환자를 받고, 퇴원 환자의 자리를 정리하는 등의 일도 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컴플레인을 해결하고, 의사의 오더를 받고, 수술 환자를 보내고 받다 보면 시간은 금세 흘러 식사시간이 되었다. 서로 교대로 식당에 가서 밥을 먹긴 했지만, 5분 만에 밥을 해치운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밥을 먹지 못하고 일할 때가 많았다.
바쁘게 일하다 병실에 들어가면 환자들이 모여서 수다를 떠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산부인과 병동이었기에 다들 자궁수술을 한 사람들이었고 같은 여자로서의 동질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서로 모르던 사람들이 어느새 언니 동생 하는 사이가 되기도 했다.
“우린 다들 빈궁마마여~ 그러니 언니 동상 사이지 뭐여."
나는 그때 스스로를 빈궁마마라고 부르며, 어쩌면 우울할 수도 있는 시간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병동 환자들이 참 멋지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게 바로 삶의 해학이 아닐까?
해학이란 사회적 현상이나 현실을 우스꽝스럽게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주어진 사실을 곧이곧대로 드러내지 않고 과장하거나 왜곡하거나 비꼬아 표현함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해학이 있는 삶을 살고 싶었다.
해외생활을 하며 외로움에 사무칠 때, 이 외로움을 재료 삼아 자주 글쓰기 주제로 올려놓곤 했다. 그렇게 외로울 때가 바로 글을 써야 할 때라고 외치면 외로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웃음이 잔뜩 났다.
예민한 아이를 독박육아로 키울 때 나는 아이의 모든 것을 육아일기에 기록했다. 나중에 아이가 커서 사춘기가 되면 그 육아일기를 증거물로 던져줄 요량이었다.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너를 키웠는지, 네가 얼마나 울고 보채며 엄마만 찾았는지 낱낱이 기록하며, 미래의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상상하며 쓴웃음을 지어다.
갑작스럽게 자궁적출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 당혹스럽긴 했지만, 속으론 쾌재를 불렀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감이 탄생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의사 선생님의 입에서 "수술"이라는 말이 떨어진 그 순간부터 모든 상황을 기억하려 애썼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이 변태 같은 글에 대한 집념은 나를 실제 상황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서게 만들었고, 제삼자가 되어 상황을 묵도할 수 있었다.
이만하면 내 삶에 해학이 넘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나는 자궁적출수술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병동 환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웃고 떠드는 모습만 기억하고, 수술을 막 끝낸 환자들이 일어나지도 못하고 아파하던 모습을 잊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특히 아랫배를 절개하는 개복술을 한 것도 아니었고, 배꼽만 절개하는 원버튼 복강경수술을 했기에 겉으로 보이는 수술흉터도 없다. 배꼽을 꿰매어놓은 상처에 밴드 하나를 붙여놓고 물이 들어가지 않게 조심하다가 일주일 뒤엔 그 밴드마저도 제거했다. 녹는 실을 사용했기에 스티치아웃(실을 제거하는 것)을 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외형적 상태와 다르게 몹시 피곤하고 힘들었다. 자꾸 졸려서 머리만 대면 자야 했다. 앉았다 일어서면 어지러워서 머리가 핑~ 돌기도 했다. 배꼽에 난 수술 상처가 간지럽고 따끔거렸다. 원래 자궁이 있었던 자리가 묵직하게 느껴지고, 소변을 볼 때마다 뭔가 불편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자꾸만 기억이 안 나고 깜빡거렸다. (사실 이건 수술 때문인지, 나이가 들어서 건망증이 심해져서인지 분별이 쉽진 않다….)
삶의 해학을 찾아 웃고 떠들고 싶었지만, 마음과는 다르게 몸이 힘들었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고 해도 전신마취를 한 수술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이었다. 그래서 나를 배려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몸이 아픈 나를 내버려 두고 회사 일을 하고 있는 남편이, 힘들게 걷는 나를 부축해주지 않는 남편이 얄밉고 서운했다. 나에게 괜찮냐고, 고생했다고 말해주지 않는 그의 무거운 입이 그토록 서운했다. 자꾸 까먹고 기억을 못 하는 나를 향해 머리를 좌우로 흔드는 그의 태도에 자꾸 화가 났다.
그제야 나는 인터넷에서 읽은 아내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몸이 아프고 힘들 때 받는 상처는 깊고 오래간다.
하지만 그때 배려를 받는 다면 더 더 오랫동안 고마운 마음과 애정을 갖게 될 것이다.
내가 페이스북에 쓴 "자궁적출수술"에 관한 글을 작은 형부가 읽은 모양이다. (사실, 형부와 내가 페이스북 친구인 줄도 몰랐습니다....) 형부는 그 글을 작은 언니에게 보여주었고, 언니는 가족 단톡방에 그 글을 올려버렸다.
"선량이 글이 정말 감동이야. 작가라 그런가, 글이 너무 좋네."
나를 모르는 독자들에겐 온갖 글을 다 쓰지만, 가족들 앞에선 글을 내보이기가 많이 부끄럽고 민망하다. 민망함을 감추어 보려 다시 해학을 꺼내 들었다.
"아이고, 나 빈궁마마 됐잖아. 자궁도 없고, 나팔관도 없어."
"고생했다, 내 동생. 난 쓸개가 없어. 몇 년 전에 떼어냈잖아."
"나는 유방 한쪽이 없어."
"뭐, 다들 장기 하나쯤 없는 거 아니야?"
"우리 중에 큰언니가 제일 멀쩡하네."
"야, 나는 폐경기라 힘들어."
"하하하하하~"
자궁수술을 한 지 3주가 지난 지금, 이제야 나 스스로를 "빈궁마마"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몸이 회복된 만큼 마음도 함께 회복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