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가장 후회되는 일에 대하여

경미

by 선량

"이번 글감은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었는데요, 이번엔 경미 님께서 가장 먼저 원고를 제출해 주셨어요. 경미님, 글쓰기가 너무 힘드시다고 하셨었는데, 이번엔 괜찮으셨어요?"

"아이고 작가님, 마 이번에는요 꼭 글을 쓰겠다고 다짐을 여러 번 했다 아입니까. 제가 요즘 새벽 5시에 일어나고 있거든요? 그 있잖아요. 미라클 모닝 그거 하고 있어요. 새벽에 일어나다 보니까는요 아침이 너~무 길데요. 그래서 깨작 깨작 쓰다 보이 글이 완성되더라고요."

"정말 미라클 모닝 맞네요. 맞아."

선미의 말에 다들 웃음을 지었다.

그때 조용히 웃고 있던 준영이 손을 들었다.

"저.... 제가 잠시 할 말이 있는데요."

"네, 준영 님. 어떤 말씀 이실까요?"

"사실은 제가.... 지난주에... 브런치 작가... 신청을 했었어요.... 아, 물론.... 글방 모임에서 쓴 글을.... 다시 다듬어서.... 신청을 했고, 작가님께서.... 도와주셨어요..... 그런데.... 어, 어제.... 합격했다는 메일이.... 왔어요."

"어머, 정말 축하드려요.

"옴마야, 매우 멋지네요. 이제 작가님이네요, 작가님."

"준영 님 축하드려요. 나중에 노하우 좀 알려주세요."

"다들 감사해요... 아 그런데 저도... 작가님께서 도와주셔서... 할 수 있었어요... 작가님 나중에... 브런치 작가 되기, 뭐... 그런 거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제 브런치 닉네임은.... 날으는 돈가스 입니다."

"날으는 돈가스 작가님, 진짜 축하드려요. 나중에 글 쓰시고 꼭 공유해 주세요."

"날돈 작가님, 축하합니데이~~ 요즘 트렌드는 줄임말이지요, 너무 길믄 못쓴데이."

"역시, 경미님은 요즘 트렌드를 아신다니까~"


이번 글의 주제와 다르게 시작부터 다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선량 작가는 이 분위기를 계속 유지해야 할지, 아니면 찬물을 끼얹어야 할지 잠시 고민하다 말을 꺼냈다.

"이번 주제는 조금 무거웠지요. 바로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었는데요. 아마도 글 쓰는 게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후회라는 말 자체에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거든요. 부정적인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다운되기도 하고, 감정적으로 힘들어지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글도 꼭 써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희망찬 글, 사랑이 넘치는 글만 쓸 수는 없잖아요? 우리 삶에도 긍정적인 일만 있는 게 아니라 부정적인 일들도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자, 누가 먼저 낭독해 볼까요? 혹시, 경미 님. 원고 제출도 가장 먼저 하셨으니, 낭독도 먼저 해볼까요?

"아이고, 네네. 알겠습니다. 흠흠, 제 목소리가 조금 거슬려도 그러려니~~ 해주이소."


경미는 한번 더 흠흠, 목소리를 다듬더니 자신의 글을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다.



제목: 내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일, 수면교육

나는 아이를 어렵게 가졌고 어렵게 나았다. 이제 그만 아이 갖는 걸 포기하려던 찰나에 기적처럼 아기가 찾아왔다. 아이를 내 뱃속에 품고 있었던 10개월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어렵게 가진 아이이니만큼 잘 키워내고 싶었다. 그래서 태교책을 여러 권 사다 읽으며 책에서 알려주는 데로 태교를 했다. 하루 종일 클래식 음악을 듣고, 그림 동화책을 읽어주고, 날마다 아이에게 편지를 썼다. 내 아이는 분명 천사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힘들게 나에게 찾아와 주었으니, 아이는 천사여야만 했다.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우리 집에는 온갖 장난감과 교구, 책들이 가득 차 있었다.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은 내 인생 최대의 과제처럼 느껴졌고, 육아책에 나온 그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수면교육을 했다. 프랑스 아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와 분리되어 재우는데 그렇게 수면교육을 하는 것은 아이를 주체적으로 자라도록 하는 최초의 교육이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좋았다. 나는 아이를 주체적으로 키우고 싶었다.
아이를 재울 때마다 전쟁을 치러야 했다. 아이는 울고 울고 또 울다 지쳐 잠이 들었다. 나는 그런 아이가 안쓰러웠지만, 절대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수면교육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아이의 거짓 눈물에 속으면 안 되니까. 난 단호하게 아이를 안아주지 않았다. 그런데 정말로 수면교육에 성공했다. 야호!
잠이 오면 조금만 칭얼대고 알아서 자는 아이를 보며 나는 무척 흐뭇했다. 그리고 다른 엄마들에게 내 경험을 마구마구 말하고 다녔다. 아이가 울어도 절대 안아주지 말고 그냥 스스로 잠들 때까지 기다라고. 그러다 보면 아이도 포기하고 잠들게 될 거라고. 물론 이렇게 말해도 나처럼 실천하는 엄마들은 드물었다. 다들 마음이 물러터졌는지,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그냥 안아서 재우거나, 젖을 물려 재워야 마음이 편하다고들 했다. 마음이 물컹물컹 엄마들이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학습지를 시작했다. 집으로 몬테소리 선생님을 불렀다.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고, 한글을 빨리 떼기 위해 놀이 교실에 보냈다. 아이의 재능을 찾아주고 싶어서 피아노, 태권도, 바이올린, 바둑, 검도, 댄스, 중국어 학원에 보냈다. 내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었다....


글을 차분하게 읽어 나가던 경미의 목소리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작은 화면 속의 경미는 입을 꾹 다물고 두 눈을 끔뻑거렸다. 이내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증말 죄송합니다. 제가 안 울려고 했는데.... 옛날이야기만 하믄 이렇게 눈물이 나 싼다니까요. 흠흠. 잠시만요. 저 코 한번 풀고 다시 읽을게요."

경미는 코를 팽 풀더니 다시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이는 공부를 잘했다. 초등학교, 중학교 때도 공부를 잘했다. 그대로 쭈욱 간다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갑자기 멈춰버렸다. 정말 모든 걸 놔버렸다. 아이는 학교도 놓고 싶어 했지만, 그것만은 제발 안된다고 사정사정했다.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냐고 말했을 때 나는 머리꼭지가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냐고 아이에게 따졌다. 너가 원하는 것은 다 해줬고, 좋은 거 사줬고, 좋은 학원에 보내줬고, 정말 하늘에 별도 따줄 만큼 다 해줬는데 말이다. 그런데 아이가 나에게 말했다. 그건 내가 원한 게 아니라 엄마가 원한 거 아니었느냐고 했다. 지가 원한 건 그런 게 아니라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그냥 아무 말 없이 안아주는 거라나. 나는 더 화가 나서 소리쳤다. 그러다 대학도 못 갈 거라고. 그러면 넌 실패자가 될 거라고. 아이는 한숨을 쉬더니 방으로 들어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뭐가 문제인지 몰라 다시 책을 찾았다. 사춘기 남자아이 다루는 법부터 아들 셋을 서울대에 보낸 엄마의 책까지 두루 읽어보았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 아이는 책 속에 없었다. 책 속의 아이는 모두 다른 집 아들들이었다. 내 아들은 우리 집 작은 방에 틀어박혀 앉아 있었다.
나는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보관하고 있었던 수면교육 책을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모두 여기서부터 시작된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아들이 원한 것은 수면교육이 아니라 힘들어 울면 달려가 안아주는 엄마였다. 나는 내 아이가 모든 걸 놔버렸을 때 겨우 깨달았다.
어린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책 속엔 내 아이와 비슷한 아이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아이는 없어요.
그러니 책 말고 지금 내 아이의 표정을 읽으세요.
그러면 정답이 보일 거예요.
저는 아이의 표정을 읽지 못하고 책 속에서 답을 찾으려고 했던 제 과거를 후회합니다.


경미의 낭독이 끝나자 긴 침묵이 이어졌다. 여운이 너무 길게 남아 다들 입을 때지 못했다.

"아이고마, 내 글이 너무 좀 무거웠지요? 그냥 내 경험을 한번 말하고 싶어서.... 실은 아이 말만 할라치면 지도 막 감정이 복받쳐서 자꾸 울게 되더라꼬요. 암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경미의 말이 끝나자 화면 속의 멤버들의 다들 박수를 크게 쳤다.

"아드님은 지금 어떻게 됐어요?"

"맞아요, 저도 그게 가장 궁금해요."

"그 뒤에 이야기해 주세요. 네?"


"아... 그기... 참... 아가 고 1 때 저리 돼가지고 학교를 관둬버렸다 아입니까. 내 진짜 그때만 생각하믄 속이 문드러진다니까요. 그러더니 고등학교 검정고시 공부를 하대요. 그때는 마 지가 뭐 하라는 말 일절 안 했지요. 또 뭐 하라고 하믄 모자지간 끝날 것 같았거든요. 아 그러더니 알아서 대학 가대요. 지금은 뭐 군대 갔습니다. 군대 가더니 쪼매 엄마한테 미안했는지 그래도 잘하더라고요. 애들 어렸을 때 너무 애달복달 안 해도 된다고 누가 옆에서 말만 해줬어도 그렇게 막 방황하진 않았을낀데 말입니다."

"경미님 글 덕분에 저도 제 아이를 돌아보게 되네요. 진짜 좋은 글 잘 들었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데이. 글을 쓰다 울고 나니까는 마음이 뻥 뚫리네요. 와. 이래서 글을 쓴가 보네요."

경미의 말에 다들 공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어떻게 글을 써야 한다는 가이드가 필요 없겠다고 선량은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글쓰기에 대한 신뢰가 각자의 글의 방향을 이끌어주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선미는 좀 더 일찍 sns를 시작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를, 은영은 첫 번재 결혼에 대한 후회를, 준영은 주위 사람들을 잘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사해는 휴직기간 동안 집안에만 웅크리고 있었던 것에 대한 후회를 낭독했다.

다들 자기비하에 가까운 내용이었지만, 서로 글을 나누다 보니 후회는 어느새 새로운 희망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어요. "희망이란 것에는 항상 대단한 힘이 있다. 로자 아줌마나 하밀 할아버지 같은 노인들에게조차도 그것은 큰 힘이 된다. 미칠 노릇이다." 진짜 미칠 노릇 아닌가요?"

선미의 말에 다들 크게 웃음을 지었다.


"아, 그럼 다음 주제는 희망으로 해볼까요?"

"네, 알겠습니다!!"



이전 13화13) 새벽 5시에 일어나면 정말 기적이 일어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