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어디일까?

은영

by 선량

아침 7시.

은영은 노트북을 닫았다. 2주에 한번 새벽에 일어나 글방 모임에 참석한다. 한국은 저녁 9시지만, 캐나다의 시간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첫 몇 주 동안엔 매주 모임이 있어서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분주했지만, 지금은 2주에 한번 모이기 때문에 그나마 여유가 있다. 새벽 모임이 있는 날엔 딸 제이도 알아서 일어나 시리얼에 우유를 먹고 학교에 간다.


은영이 제이를 데리고 캐나다에 온 지도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제이가 5살 때 왔는데 벌써 미들 스쿨에 다니고 있으니, 시간이 정말 빠른 것 같다.

정우와 이혼 후 무작정 한국을 떠나고 싶었을 때 생각난 곳이 캐나다였다. 캐나다는 은영이 가장 행복했던 곳이었다. 어학연수를 했던 3년 동안 은영은 자유를 만끽하며 살았다. 서빙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여기저기 여행도 다녔고,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도 사귀고, 주말마다 파티에 초대받아 화려한 생활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의 성화에 한국으로 돌아가 누구나 다 알만한 대기업에 취업했다. 그 회사에서 은영보다 5년 차 선배인 정우를 만났다. 대리였던 정우는 신입사원인 은영을 살뜰히 챙겨주었고 은영은 그런 정우가 싫지 않았다. 둘은 사내커플로 1년을 만난 후 결혼했다.

남들이 보기엔 성공한 삶이나 다름없었다. 은영의 시댁은 재력이 풍부한 집안이었고, 은영과 정우가 결혼할 때 아파트와 차까지 모두 다 해주었다. 시댁에서는 은영에게 아이를 빨리 갖기를 원했다. 3대 독자인 정우를 똑 닮은 아들을 낳아달라고 했다. 은영은 요즘 세상에도 아들선호사상이 있다는 사실에 그저 놀랐다. 친정 분위기와는 너무 달랐다. 주말마다 시댁에 가야 했다. 은영은 주말마다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친정으로 갈 수도 없었다. 부모님은 은영이 좋은 집에 결혼한 것을 꽤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시댁에 무조건 잘하라는 말을 하곤 했다. 은영은 어디에 마음을 붙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1년 후 아기를 가졌지만, 아들을 낳지는 못했다. 은영이 제이를 낳았을 때 시댁에서는 딸이라며 안아보지도 않았다. 남편 정우는 은영과 시댁과의 사이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방패막이되지 못하는 남편을 향해 악다구니도 쳐보고, 하소연도 해봤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은영은 제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하기 위해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았는데, 결과가 이렇게 불행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은영은 매일밤 같은 생각을 했다.

'떠나고 싶다.'

은영이 정우에게 이혼하고 싶다고 말했을 때 정우는 그리 놀라는 것 같지도 않았다. 서로 합의이혼을 하고 친정으로 들어갔을 때 부모님은 은영이 부끄럽다고 했다. 왜 참지 못했느냐고, 네 성격이 문제라고 되려 은영을 몰아세웠다. 은영은 그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었다. 그때 밴쿠버에 살고 있던 친구 애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은영과 함께 어학연수를 떠났다가 캐나다에 아예 정착한 친구였다. 싱글맘으로 살기엔 여기가 더 좋을 거라고, 자기가 도와줄 테니 이곳으로 오라고 은영을 설득시켰다. 은영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손을 내밀어준 친구가 너무 고마워 제이를 데리고 캐나다행 비행기를 탔다.

은영이 한국을 떠난 지 6개월 안 되어 정우가 재혼을 했다는 소식을 건너 건너 들었다. 은영은 그 소식이 전혀 놀랍지 않았다. 정우와 그 가족들은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은영이 5살 된 제이를 데리고 밴쿠버로 다시 왔을 때 그곳엔 애리를 비롯한 예전 친구들이 몇 남아있었다. 그들은 은영이 싱글맘으로 그곳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 처음엔 학생비자로 와서 학교를 다니며 아이를 데이케어 센터에 맡기고 살았지만, 3년 후엔 로컬 디자인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은영은 대학과 전 직장에서 배운 웹디자인 실력을 마음껏 뽐내며 일할 수 있었다. 한국사람의 부지런함은 어딜 가나 특출 나서 조금만 열심히 해도 좋은 평가로 이어졌다. 로컬 디자인 회사에서 몇 년을 일한 뒤 글로벌 마케팅 기업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왔다. 은영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다는 유연성과 이제 미들스쿨에 들어가는 제이의 뒷바라지를 위해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 회사에서 일한 지 1년 만에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터졌고, 은영은 재택근무를 계속하며 디자이너와 엄마로서의 삶을 아슬아슬하게 살게 되었다.


은영은 최근에 책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었다. 주로 하는 일은 웹디자인이지만, 학생 때 배워둔 인디자인을 이용해 북커버를 만들어주고 부수입을 벌곤 했다. 부수입이라고 해봐야 적은 금액이었지만, 은영은 사람들에게 북커버를 만들어 주는 일이 즐거웠다. 본인이 직접 쓴 글을 엮어 책으로 만들어 내는 일은 누구나 꿈꾸는 일이지만, 아무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특히 자신은 캐나다에 있지만 북커버 고객은 다들 한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옛날에는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책표지만 만들어주다 보니 이제는 자신이 쓴 책의 표지도 직접 만들어보고 싶어졌다. 아이는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병행하고 있었고, 은영은 재택근무로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웠다. 마침 그때 선량한 글방 글쓰기 모임 모집 공고를 보고 바로 신청을 했다. 자기처럼 해외에 산다는 작가의 삶도 궁금했고, 글 쓰는 법을 배워서 직접 책을 만들어볼 요량이었다.


사실 은영은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도망치듯 떠나 온 나라였지만, 타지에서 오래 살다 보니 역시 내 나라가 가장 좋다는 걸 느꼈다. 특히 몸이 아플 때 매번 친구들에게 의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이번 코로나를 겪으며 은영은 이곳에 계속 살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제이가 코로나에 걸려 고열에 시달릴 때 은영은 지옥에 있는 것 같았다. 찾아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고, 받아주는 의사도 없었다. 코로나 이후 동양인에 대한 시선도 예전 같지 않았다.

만약에 제이나 자신이 큰 병에 걸린다면? 그 많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을지, 치료는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나라의 정책은 선진국이고, 싱글맘이 살기엔 참 좋은 나라지만 의료적인 부분에서는 확실히 허술했다. 점점 나이가 들 텐데, 그러면 점점 더 몸이 고장 날 텐데, 이곳에 계속 살아도 될까....


은영은 요즘 자신이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한국도, 캐나다도 내 집은 아닌 것 같았다.



"희망, 희망이라...."

은영은 이번 글감이 퍽 난감했다. 이혼을 하고 캐나다에서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지운 지 오래였다. 해보고 싶은 일은 단지 호기심일 뿐, 그 일을 통해 뭔가 이루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희망과는 썩 어울리지 않았다. 헛된 희망을 품을수록 실망도 크다는 걸 은영은 몸으로 배웠다. 언젠가부터 그런 긍정적인 어휘에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종종 은영에게 냉소적이라는 말을 했다.

글방에서 글을 낭독했을 때도 사람들은 애써 좋은 말로 포장하려 애썼지만, 은영은 "차갑다, 감정이 메말랐다"는 투로 들렸다.

"이번 글은 꽤나 어려운데...."

은영은 주방으로 들어가 커핏물을 올렸다.




"여러분들, 혹시.... 함께 글을 써서 독립출간을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요?"

작가님이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은영은 독립출간이라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이 꼭 해보고 싶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님, 그건 어떻게 하는 거예요?"

"요즘은 독립출간 할 수 있는 플랫폼을 이용해서 책을 직접 만들 수 있어요. 물론 퀄리티는 조금 떨어지지만, 그래도 ISBN 받고 정식으로 유통이 되거든요.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도 할 수 있고요. 저는 여러분의 글쓰기가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독자를 위한 글쓰기로 나아가길 바라요. 글쓰기와 책 쓰기는 많이 다르지만, 지금처럼 글을 써서 퇴고한 다음 책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물론 부담되신다면 소장용으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순간 은영은 새로운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았다.

희망이라는 것에는 항상 대단한 힘이 있다는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았다. 정말 미칠 노릇이다.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작가님, 저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북커버 할 수 있어요...."

은영은 메시지를 보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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