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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Nov 08. 2023

3. 사소한 것에 의미를 두는 마음

sacchetto or sacchetti?

Sacchetto(사께또)

얼마전 밀라노에 새로 오신 분께 남편이 꼭 알아야할 한마디를 알려주었다. 그건 바로, “Sacchetto!(사께또)” 가방이라는 뜻의 단어였다. 일반적인 가방은 Borsa(보르사)라고 말하지만, 마트에서 물건을 담을 때 필요한 비닐 가방을 sacchetto(사께또)라고 말한다.

남편이 사께또라는 말을 강조해서 알려준 이유는 바로, 우리가 밀라노에 처음 왔을 때 경험한 일 때문이었다.


밀라노에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마트를 찾는 일이었다. 밀라노의 물은 석회질이 심해 수돗물을 그냥 마시면 절대 안된다고 했다. 숙소에는 간단한 식기와 가스레인지, 전자레인지, 요리도구 등이 구비되어 있었지만, 물은 없었다. 우리는 구글맵으로 가장 가까운 마트를 검색해 걸어갔다. 다행히도 멀지 않은 곳에 큰 대형 마트가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홈플러스나 이마트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네 사람은 그 커다란 마트로 저벅 저벅 들어갔다. 하지만 온통 이탈리아어로만 써진 그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집어 들어야 할지, 갈 길을 잃었다. 야채를 파는 곳에는 비닐봉지와 비닐장갑, 저울이 있었다. 나는 눈치껏 비닐장갑을 끼고, 비닐봉지를 하나 꺼내 필요한 야채를 적당히 담았다. 그 다음엔? 저울에도 영어는 없었다. 한참을 망설이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유심히 관찰했다. 야채 아래 붙어있는 푯말의 숫자를 확인한 후 저울에 그 숫자를 입력하고 봉지에 담긴 야채를 저울에 올려놓은 다음 완료버튼을 누르면, 바코드가 나온다. 그 바코드를 야채가 담긴 비닐봉지에 붙인다….

이렇게 말하니 참 쉬워 보이지만, 이탈리아어를 전혀 못하는 상태에서 눈치껏 하려니 등에서 식은 땀이 주루룩 흘렀다.

그 다음엔 요리에 필요한 조미료를 사야했다. 소금과 후추는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설탕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찾고 있는데 뒤에서 아들아이가 날 불렀다.

“엄마, 설탕이 뭔지 알겠어. 저기 제로콜라가 있는데 거기에 senza zucchero라고 나왔어. Zucchero가 설탕인가봐.”

“그럼 설탕이 주체로인가?”

나는 지나가는 점원을 붙들고 “주체로? 주체로?” 하고 말했다. 점원은 그런 우리를 보며 빙긋 웃더니 설탕이 있는 곳으로 바래다주었다. 설탕은 조미료 코너가 아니라 커피 코너 한 켠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것 저것 필요한 것을 카트에 담으니, 한가득이다. 이젠 꼭 필요한 물을 사러 갔다. 생수 종류가 정말 다양했다. 어떤 물을 사야 할지 몰라 그냥 포장이 예뻐 보이는 물로 골랐다. 뭔가 화려한 포장이 물맛도 맛있을 것 같았다.

이것 저것 가득 담긴 카트를 밀고 계산대로 향했다. 우리 차례가 되어 계산대 위에 물건을 하나하나 올렸다. 점원이 날 보며 무슨 말을 했다.

“미안해요. 이탈리아말을 못해요. 영어로 말해줄래요?”

하지만 점원은 내 말을 못 알아먹었는지 계속 뭐라뭐라 말을 한다. 나는 멍하니, 그녀만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는 날 보며 빠르게 입을 놀린다. 그때 우리 뒤에 있던 손님이 날 향해 영어로 말했다.

“봉지 필요하냐고 물어보는 거에요.”

“아, 네네. 필요해요. 정말 고마워요.”

우리는 뒷 사람의 도움으로 봉지에 물건을 담아 집으로 들고올 수 있었다.


나는 점원이 했던 그 말을 잊지 않으려고 계속 되뇌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구글 번역기로 검색을 해보았다.

그 단어는 바로, 사께또“saccheto”, 가방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실수도 하나 알게 되었다. 설탕을 찾기 위해 우리가 말했던 그 말 zucchero. 이건 주체로가 아니라 ‘주케로’였다.

우리의 실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생수라고 사온 물이 알고보니, aqua frizzante, 즉, 스파클링 워터였던 것이다!!! 나는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는 이 물로 커핏물을 끓이고, 쌀을 씻어 냄비밥을 했다….


며칠 전 이탈리아어 수업 시간에 내가 자꾸 실수하는 한가지를 선생님이 짚어주었다. 그건 바로, ‘관형사’를 빼먹는다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어는 관형사가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것에 따라 동사와 형용사의 형태가 바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관형사가 나에겐 너무 어렵다. 여성형과 남성형에 따라 다르고, 단수와 복수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어의 “a, an”에 해당하는 말이 다르고 “the”에 해당하는 말이 또 다르다.

마트에서 가방 1개 주라고 할 때는 “운 사께또(un sacchetto)”를 쓰지만, 2개를 주라고 할 때는 “두에 사께띠(due sacchetti)”라고 해야하는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신경쓰며 말해야 하는 것인지 당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거시기”하나로 다 통하는 전라도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이런 섬세함이 너무 어렵다….




사소함 또는 섬세함

이런 섬세함은 이탈리아 일상 전반에 걸쳐 흐른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앞서 가던 사람이 뒤에 오는 사람을 위해 잠시 문을 잡고 기다려준다. 문을 잡아준 사람에게 “Grazie, 고마워요.” 라고 말하면, “Prego, 천만에요.”라고 화답한다. 처음에는 이런 친절함이 많이 어색했는데, 지금은 우리도 그라찌에와 쁘레고를 남발하며 점점 더 섬세해지고 있다.

건널목에 사람이 있으면 차를 멈추고, 먼저 건너가게 해준다. 가끔은 차가 먼저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자꾸 멈춰서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덕분에 무단횡단의 기술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유모차를 태울 수 있는 버스 난간이 한없이 낮고, 버스 중앙에 유모차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그래서 버스를 탈 때마다 한 두개의 유모차가 꼭 있다. 나는 사람들 눈치보지 않고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탈 수 있는 이 나라의 엄마들이 참 부러웠다.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의 버스 탑승을 위해 버스 기사가 차를 멈춰 세우고 휠체어 전용 경사로를 설치한다. 버스 승객들은 그 모습을 아주 자연스럽게 바라보며 기다린다.

내가 밀라노에서 가장 좋아하는 섬세함은 바로, 100미터마다 설치되어 있는 쓰레기통이다. 지난 여름 한국에서 휴가를 보냈을 때 딸아이가 좋아하던 탕후루를 사먹은 후 종이컵과 긴 나무 꼬지를 버릴 곳이 없어 한참을 들고 다녔다. 결국엔 버릴 곳을 찾지 못하고 집에까지 들고 갔다.


이런 섬세함은 내가 약자의 위치에 있을 때 좀 더 잘 느낄 수 있다.

1년 전 봄, 둘째 딸아이가 컵라면을 먹다가 가슴에 넓게 화상을 입었다. 숙소에서 지내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다. 이탈리아어도 전혀 모르던 때였고, 겨우겨우 지하철만 타고 다니던 때였다.

아이의 가슴에 커다란 수포가 생겼다 터지는 걸 보며 나는 거의 패닉에 빠졌다. 그날, 숙소 1층에서 지내던 매니저가 올라와 아이를 안고 숙소 앞 병원으로 뛰어갔다. 하필 그 병원은 노인전문 병원이었다. 겨우겨우 아이스 팩을 가슴에 올려준 후 다른 병원을 소개시켜 주었다. 일을 하다 달려온 남편 차를 타고 아동전문병원으로 향했다. 그 병원에서 아이는 1인실로 들어가 응급처치를 받고, 주사를 맞고, 코로나 검사까지 했다.

수중에 유로가 얼마 없었던 나는 한국 신용카드를 들고 갔다. 보험도 없는 상태에서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았으니,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응급처치를 하고, 나중에 외래로 다시 나오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접수실로 가서 진료비를 어떻게 내야 하느냐고 물었다.

“You don’t need to pay. It’s free.”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이 모든 게 무료라니…. (그 후 아이의 화상치료를 하느라 꽤나 고생했다.)


내가 경험한 것 외에도 약자에 대한 섬세함이 존재한다. 아이들이 아플 때 쓸 수 있는 법적휴가가 존재한다든지, 14살 이하의 아이들은 교통비가 무료라던지, 갑자기 아파 응급실에 갔을 경우, 진료비가 무료라던지, 이탈리아에 여행 온 외국인도 응급실 진료비가 무료라던지. 하는 것들이다.

 이탈리아는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복지가 잘 되어있는 편은 아니라지만 이런 사소한 것이 나는 많이 부러웠다.


지난 여름, 잠시 한국에서 지냈을 때 나는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공포를 종종 느꼈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지하철역에 서 있을 때도, 버스를 탈 때도, 언니 집 근처 둘레길을 걸을 때도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리곤 이내 눈을 내리 깔았다. 무관심이 최고의 자기방어라고 생각하며 그 누구하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쇼핑몰에서 갑자기 칼부림을 당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폭행을 당하고, 지하철 역에서, 그냥 길에서, 심지어 자기 짚 앞에서도 사고를 당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내가 될 수도, 내 가족이 될 수도 있었다.

밀라노에서 살 때는 내가 여자이기 때문에 약자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곳에서의 약자는 아이들, 노인들, 아픈 사람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나는 내가 여성으로서 약자가 된 것 같았다. 묻지마 사건의 피해자가 대부분 여성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무섭게 변해버린 한국사회의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 묻고 싶지만, 이 모든 것이 무관심에서 오는 결과라는 걸 알기에 씁쓸함을 느꼈다. 나 역시 적당한 무관심이 좋기 때문이다….




사소한 관심

요즘은 마트에 갈 때 꼭 바퀴 달린 끌끌이를 끌고 가거나 장바구니 몇 개를 챙겨간다.

“Sacchetto? 봉투 필요해?”

라고 묻는 점원에게,

“No, Grazie! 아니요. 감사합니다.” 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그리고 마트를 나서면서 한마디를 더 한다.

“Buona Giornata! 좋은 날 보내세요.”

마트 앞에 앉아 있는 집시에게 1유로를 주고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골목길에서 어떤 남자가 묻는다.

“들어줄까?”

나는 밝게 웃으며 말한다.

“No, Grazie! 아니요. 고마워요.”

아파트 앞에 다달았을 때 현관문이 닫히지 않게 잡아주고 있는 사람이 있다.

“Oh, Grazie mille. 정말 고마워요.”

“Niente,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저 뒤에서 오고 있는 사람을 위해 나 역시 현관문을 잡고 잠시 서 있다.

기다리고, 기다려주는 관계. 사실 아무런 사이도 아닌 관계.

단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소한 관심이 또 다른 배려와 친절을 이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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