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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Nov 22. 2023

5. 억수로 그라찌에!! 거시기하세요!!

아끼지 않고 고마움을 표현하기! Grazie mille!!


억수로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는 마법 같은 말이 세 가지 있다. 바로 “미안해요, 감사해요, 사랑해요.”이다. 이 세 가지 말을 상황에 맞게 잘 사용하면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특히 가족에게 말했을 때 그 효과는 더

크다.


밀라노에 살다 보면 이 세 가지 말 중에 한 가지 말을 정말 많이 들을 수 있다.

바로, ‘Grazie, 그라찌에’이다.

(우리 남편은 자꾸  “그라제”라고 하지만,

그라제 아니고 “그라찌에!!”)

우리말로 ‘감사해요’라는 뜻이다.

그라제 아니고 그라찌에


지나가다 문만 잡아 줘도, 살짝 양보만 해줘도, 이 말을 한다. 가끔은 사소한 일 하나에도 그라찌에를 남발하니, 진짜 고마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하나의 습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정말 고마울 때 이탈리아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다. 바로 ‘Grazie mille, 그라찌에 밀레’이다. 영어로 치자면, ‘Thank you so much’ 정도로 말할 수 있는데 정말, 엄청 감사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나는 좀 더 적절한 표현을 쓰고 싶다. Mille가 숫자로 ‘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Grazie mille’라고 하면 ‘천 만큼이나 감사합니다’라는 의미인데 이에 딱 맞는 표현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억수로 감사합니다”이다.

‘억수로’는 굉장히, 엄청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하지만 엄청 많다는 일반적인 의미로 자주 사용되는 부사이기도 하다.



거시기하세요

“Grazie, 그라찌에”라고 말하면 꼭 따라오는 말이 있다. 바로 ‘prego, 쁘레고’이다.

Prego쁘레고는 상황과 상대에 따라 뜻이 천차만별 달라진다. 구글번역기로 번역하면 “제발”이라고 나오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제발’이라는 말로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쁘레고를 들을 때마다 ‘거시기’가 떠오른다. 상황과 상대에 따라 척척 들어맞는 ‘거시기’ 말이다.

거시기는 사투리 아니고 표준어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쁘레고는 ‘그라찌에’하고 고마워할 때 ‘천만에’라는 의미로 쓰는 쁘레고이다. ‘you’re welcome’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하지만 마트에서 물건을 계산하려고 줄을 서 있는데 계산원이 당신을 보면서 ‘쁘레고’라고 말했다면? 그건 바로 ‘당신 차례입니다’라는 의미이다.

당신 차례가 됐는지 모르고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뒷사람이 당신을 보며 “쁘레고, 쁘레고” 한다면? 그건 “빨리 가라”는 의미이다.

바 Bar에서 카푸치노를 시킨 후 바리스타가 “쁘레고” 하고 외친다면, “카푸치노가 나왔다”는 의미이다. 버스에서 실수로 모르는 사람의 발을 밞았을 때 “미안해요”라고 말했는데 “쁘레고”라고 말했다면, 그건 “괜찮아요”라는 의미이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맛보고 싶을 때 “이거 먹어도 돼요?”라고 물어보았을 때  “쁘레고” 하면, “먹어도 된다 ‘는 의미이다.

버스를 탔는데 날 보면서 빈자석을 가리키며 “쁘레고” 한다면, “여기 자리 있으니 앉으라”는 의미이다.


쁘레고만 잘 말하고 알아먹는다면, 당신은 밀라노에서 충분히 잘 살 수 있습니다!!!



고마움을 표현하는 방법

연말이 되면 그동안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한다. 한국에서는 김영란법 때문에 더 이상 하지 않겠지만, 밀라노에서는 여전히 선생님들께 감사의 표시로 연말 선물을 한다. 학부모 대표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상품권을 사서 주기도 하고, 발마사지 쿠폰 또는 마트 쿠폰을 주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나는 한국에서 가져온 마스크팩을 정성스레 포장해서 선물하곤 했다.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마스크팩이지만, 유럽에서 꽤 인기 있는 아이템이다.

이번 연말에도 선생님들께 선물하려고 마스크팩을 종류별로 준비해 왔다. 첫째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체육 과목의 남자 선생님이라 조금 고민이 되지만….


선물은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지난여름에 선량한 글방에서 함께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들을 위해  선물을 바리바리 싸간 이유도 바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식사초대”를 하는 것이다.

사실 내 공간으로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은 번거롭기도 하고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다.

한국에는 다양한 식당이 많아서 고마운 사람에게 한 끼 저녁을 사주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할 수 있지만, 밀라노는 그렇지 않다. 특히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를 하면 이런저런 부가세가 붙을 뿐만 아니라 전식, 본식, 후식, 와인까지 마시면 지갑과 함께 영혼도 탈탈 털릴 수 있다. 그래서 종종 고마운 분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고민하며 메뉴를 정하고, 정성스레 요리를 하고, 손님맞이용 집청소와 화장실 청소까지 하면 비록 음식이 맛이 없더라도 이미 내 마음은 상대방에게 충분히 표현되었으리라.



잊지 못할 식사 초대

3년 간의 인도 생활을 정리하고 밀라노로 가기 위해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날. 우리는 특별한 식사초대를 받았다. 바로 인도에 사신지 30년 가까이 되신 목사님 댁에서의 식사자리였다.

목사님과 사모님은 칠순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인도 현지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실 뿐만 아니라 교민들을 위해서도 정성을 아끼지 않으셨다. 우리가 뉴델리에 잘 정착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셨고, 코로나에 걸려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교민을 위해 날마다 음식을 해서 가져다주시기도 했다. 그 두 분을 보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곤 했다.


목사님 댁에 가서 우리는 정말 거나하게 대접을 받았다. 뉴델리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양갈비부터 너무나 맛있는 김치까지. 이제 그곳을 떠나면 언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우리 가족을 위해 정성 들여 준비해 주셨던 한 끼 덕분에 우리는 조금 더 용기를 내어 새로운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우리는 인도를 떠났지만, 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해 매달 정기 후원을 하고 있다. 우리의 작은 손길이 도움이 필요한 인도 사람들에게 잘 사용될 것이라 믿는다.


얼마 전 남편에게 목사님께서 연락을 주셨다고 한다. 목사님께서 이석증으로 고생을 하셨는데 우리 남편이 떠올랐다는 것이다. 뉴델리에서 지낸 지 1년이 조금 지났을 무렵, 남편이 이석증으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세상이 빙빙 도는 바람에 누워있다가 구토를 하고,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겨우겨우 휘청거리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이석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인도를 떠난 지 2년이 지났는데도 그 일을 여전히 기억하고 계시다니….

그런 소소한 것까지 기억하며 마음을 써주신 목사님과 사모님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감사의 마음은 혼자서 가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으며 점점 커지는 마음인 것 같다.



고마움을 주고받는 사이

“집사님~ 다음 주 금요일 저녁에 시간 되세요? 저희 집에서 저녁식사 함께 해요~”

오랫동안 벼르고 벼르던 메시지를 보냈다. 언제 한번 꼭 집에서 식사대접을 하고 싶었는데, 좀체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내 마음을 전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날을 잡았다.


집사님을 처음 안 곳은 인스타그램이었다. 뉴델리를 떠나 밀라노로 가기로 결정했을 때 밀라노에 사는 한인들을 검색해 보았고, 그중 몇몇을 팔로우했던 것 같다. 밀라노에 대해서 아는 바가 전혀 없었지만 그렇다고 또 밀라노에 대해 열심히 공부할 의지도 없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으로 그들의 일상을 엿보면서 대~~ 충, 아주 대~~~~ 충 밀라노를 알아가려는 심사였다.


그라찌에와 쁘레고도 모른 채 밀라노에 와서 밀라노에 있는 한인교회를 검색해 보았다. 그중에 가장 우리와 잘 맞을 것 같은 교회를 선택해 일요일 지하철과 트램을 타고 예배를 드리러 갔다.

난생처음 타본 트램이 신기하고도 로맨틱해서 사진을 막 찍었더랬다. 그리고 그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혹시, 밀라노 0000 교회 가신 거예요? 거기 우리 교회예요~”

“어머, 정말요??”

우리는 그렇게 밀라노 교회에서 인친현친의 인연을 맺었다.


밀라노에 온 지 두 달 즈음되었을 때 남편의 비자가 생각보다 너무 늦어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인스타그램 디엠으로 메시지가 하나 왔다.

“저 잠깐 시내 나왔다가 생각나서 숙소 근처로 왔어요. 커피 한잔 할까요?”

“네~ 바로 나갈게요.”

나는 부랴부랴 가방을 들고 카페에 가서 그녀를 만났다. 함께 카푸치노를 마시며 우리가 처한 상황을 넋두리 하듯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이 그 일을 잘 알 거라며 연락처를 주었고, 나는 그 연락처를 남편에게 다시 전달했다. 그리고 우리의 비자발급 서류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우리는 무비자 체류 기간이 끝나기 직전 짐을 꾸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만약 우리의 서류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몰랐다면 우리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른 채 무비자로 밀라노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랬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밀라노에 계속 살 수 있었을까?

정말 필요한 순간에 짠~하고 나타나 우리의 삶을 오른 방향으로 이끌어준 그녀와 그녀의 남편이 너무너무 고마웠다.


이때 이 말을 쓰면 되는 것이다.

Grazie mille!!!”




감사의 마음은 서로 주고받는 것

몇 달 전 그녀의 전자책이 출간되었다. 제목은 “이탈리아에서 마신 커피는 모두 몇 잔일까?”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밀라노에 30년을 살면서 마신 커피 이야기이다.

처음엔 결혼 후 딱 5년만 유학하고 돌아갈 결심으로 밀라노에 왔다고 한다. 그녀는 패션 디자인으로, 그녀의 남편은 성악 전공으로 온 것이었는데 남들처럼 부모의 뒷바라지로 온 것이 아니라 결혼 후 며칠 뒤 딱 1년만 지낼 수 있는 돈만 가지고 왔다고 한다…..


밀라노에 산지 30년이 다 된 그녀는 글을 꼭 한번 써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통 자신이 없었다고.

그때 내가 짠~ 나타난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품고 있는 이야기를 내어 쓸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녀는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글로 토해내듯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전자책이 완성되어 온라인 서점에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녀는 나를 “스승님”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매번 고맙다고 말한다.

이럴 때 이 말을 쓰면 된다.

“Prego!!”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D230702350?LINK=NVE



다음 주에 그녀를 위해 어떠 음식을 준비할지 벌써부터 고민이다. 먼저 천장에 살고 있는 거미와 거미줄부터 처리해야 할 것 같다.


서로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고,

서로 감사해하고, 감사를 받는 것.

서로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조금 더 따뜻한 우리를 만들어가는 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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