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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Nov 29. 2023

6. 밀라노에선 정말 거지도 잘 생겼을까?

마음을 아끼지 않고 표현하기, Bellissimo!!


벨라 마법을 아세요?

아이들을 학교에 바래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길 한쪽에 테이블을 펼쳐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다. 어차피 이탈리아말을 못 알아먹는 나는 무심히 지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한 남자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헤이 벨라(Bella) ~”

그들의 앞을 휙~ 지나가려고 했었는데, ‘벨라’라는 말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벨라는 영어로는 pretty, 예쁘다는 의미의 이탈리아 어이다.  


나는 그들에게 이탈리아어를 못한다고 영어로 말했다. 그랬더니 벨라라고 말했던 남자가 나에게 영어로 막 설명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 남자의 말인즉은, 마약중독자 치료센터 설립과 유지를 위해 기부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탈리아에는 마약중독자가 정말 많은데 마약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여 많은 사람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기부를 해주면 한 생명을 마약으로부터 살릴 수 있다며 아주 뜨거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결혼 전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면서 길거리 모금 캠페인을 해봤었기에 이들의 간절함을 어느 정도 알긴 했지만, 도저히 정기후원을 할 자신은 없어서 가지고 있던 50유로를 기부금으로 내고 말았다. 그는 계속 나에게 “어디서 왔냐, 밀라노에 온 지 얼마나 되었냐, 유학을 왔느냐, 학생이냐….”하고 물어보았다. 나는 남편의 일로 왔으며 아이가 둘이나 있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가는 길이라고 아주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기부금을 내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농담으로 건넨 말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는 믿을 수가 없다며, 이렇게 어려 보이는데 아이가 있느냐고 되물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벨라 마법”에 걸려들고 말았다는 걸 깨달았다.


“벨라 마법”이란 이탈리아 남자들이 주로 거는 마법(또는 수작)으로 “너 정말 예쁘다, 너무 귀엽다. 진짜 사랑스럽다”를 남발하여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마법이다. 그들은 이런 말을 습관적으로 남발하며 여심을 뒤흔든다.

특히 한국 여성들은 이렇게 달콤한 말을 건네며 큰 눈망울을 꿈벅거리는 이탈리아 남자를 만나면 한눈에 반하고 마는데…. (내가 진짜 예뻐서 그런 게 아니라 예의상 습관적으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암튼 이런 벨라 마법에 걸려 50유로를 자발적으로 기부한 나에게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국제 호구 나셨네. “



이탈리아에선 정말 거지도 잘 생겼을까?

집에서 가까운 마트 앞에는 노숙인 한 명이 항상 돈을 구걸하고 있다. 남편은 잔돈을 모아두었다가 구걸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1유로씩 주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 앞을 지나가는 것조차 무서워 저 멀리 빙 돌아간다. 그들이 나를 위협하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마음이 쫄린다. 아마도 생긴 건 멀쩡하게 생겼는데 차림새는 노숙인이라서 그런 것 같다.


밀라노에서 가장 유명한 두오모 성당 근처에 가면 그런 노숙인을 여럿 볼 수 있다. 그들 곁엔 꼭 커다란 개가 있는데 노숙을 하며 돈을 구걸해서 어떻게 그 개를 키우는지 참 의하하다.

사람들 말로는 개를 데리고 있으면 사람들의 동정심을 더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로 그들은 복잡한 거리 한편에 안방처럼 자리를 잡고 앉아서 해맑은 얼굴로 개와 놀고 있다. 자발적 노숙인을 선택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넝마 사이로 삐져나오는 멀쩡한 이목구비는 우리가 생각하는 거지의 얼굴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그들이 풍기는 냄새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아무리 잘생겼다 하더라도 코를 틀어막게 하는 냄새 때문에 가까이하고 싶진 않다.


진짜 잘생김이란?

의외의 장소에서 정말 잘생긴 사람들을 만나곤 한다. 집 근처 단골 마트의 계산원 아저씨 한 명은 머리가 하얗게 센 중년으로 50대 후반쯤 되어 보인다. 나는 카트에 물건을 담아 계산대로 갈 때 꼭 그 아저씨가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 아저씨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인사하고, 정말 부드럽게 물건을 계산해 준다.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는 속도가 조금 느려도, 계산할 때 동전을 하나하나 꺼내느라 시간이 걸려도 아저씨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웃으면서 “쁘레고”라고 말한다.


비가 오던 날 우산을 챙기지 않고 마트에 간 적이 있다. 식료품과 함께 보기에 괜찮은 우산 2개를 카트에 담았다. 계산대에서 물건을 꺼내 계산을 하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날 보며 뭐라 뭐라 말을 하며 컴퓨터 화면을 가리킨다. 거기엔 15유로가 떡하니 찍혀 있었다. 가격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물건을 담은 나를 후회하며, 아니라고 빼달라고 손사래를 쳤다.

아저씨는 계산을 하다 말고 일어나더니 나보고 따라오라며 손짓을 했다. 아저씨는 우산 코너로 가서 하나하나 살펴보더니 하나에 4유로짜리 우산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베네? “

“”씨, 그라찌에 밀레!! “


나는 연신 고맙다고 말하며 계산을 마쳤다. 내 뒤로 줄 서 있던 사람들은 그러려니…. 하는 표정으로 인내심 있게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의 태도에서 잘생김을 보았다.


이탈리아에서  정말 예쁘고 잘생긴 사람에게 하는 말

이탈리아애서 정말 예쁜 사람에게 하는 말은 따로 있다. 형용사에 최상급을 나타내는 이씨마 또는 이씨모를 붙이면 최상급이 된다.

즉, 정말 예쁜 여자에게는 Bellissima, 정말 잘생긴 남자에게는 Bellissimo라고 말한다.


이 최상급은 다른 형용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음식이 정말 맛있을 때는 “좋다”는 Buono에 issimo가  붙어서 “Buonissimo라고 말하고, 너무 좋다고 말할 때는 좋다는 말의 Bene에 최상급이 붙어서 Benissimo라고 말한다. 엄청나게 매운 음식이 먹고 싶을 때는 매운 이라는 형용사 Piccante에 issimo가 붙어서 Piccantissimo라고 말하면 된다.

(이탈리아 남자가 나에게 벨라라고 하는지, 벨리씨마라고 하는지 잘 들어보길 바란다.)



마음을 표현할 때 쓰는 말, “엄청, 진짜, 많이”

우리는 말을 할 때 최상급보다는 “수”나 “양”을 나타내는 부사를 더 많이 사용한다. 슬픔을 말할  때는 “엄청 슬펐다”라고, 좋음을 말할 때는 “진짜 좋았다”라고 말한다. 최고로 좋다거나 가장 슬펐다는 표현은 왠지 가식처럼 느껴지기도 하다. 이것은 겸손과 절제을 미덕으로 삼는 우리의 오랜  관습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절제나 겸손은  비단 언어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최상급으로 표현하거나 행동을 과하게 하면 관종취급을 받거나 나댄다는 평가를 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어떤지 제대로 드려다보지 못하고,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채  겸손하게만 살다보면 중년이 되었을 때 삶의 허무함을 느낄 수 있다.

모든 것을 적당히, 남들 하는 것 만큼만 하는 삶은 안정적일 수는 있어도 충만함을 느끼긴 힘들다.



“난 한 번도 채워진 적이 없어.
개새끼, 개새끼...
내가 만났던 놈들은 다 개새끼.
그러니까 날 추앙해요.
가득 채워지게.“
<나의 해방일지 중>

상대방을 가득 채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그건 바로 상대방을 추앙하는 것이다. 그 추앙은 “말”에서 시작된다.

바로, 상대를 가장 높여주는 것, 최상급으로 높이

올려주는 것이다.




이탈리아 말의 최상급 표현을 배웠을 때 나는 이 표현을 말해보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했다. “많이, 엄청 “ 에 해당하는 “molto몰또” 대신에 “가장 좋다”는 말이 한 단어로 표현된다는 게 신기했다.


사실 ‘가장’이라는 말은 아이들이 사용하는 유아적 언어라고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엄마가 해준 밥을 먹고 아이들은 “엄마 밥이 가장 맛있다”라고 말하지만 어른들은 “엄청 맛있다”라고 말한다. 세상에는 맛있는 게 널리고 널렸으니 이게 가장 맛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라고 말하지만, 남편들은 “내 아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치가 아닐까….



내 아들의 이상형은 예쁜 여자

아들은 자기 이상형인 “예쁜 여자“라고 말했다. 그런데 자기 반엔 예쁜 애들이 없어서 속상하다나.

그런 아들에게 얼굴보다 마음이 예쁜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잔소리를 했다. 그런 날 향해,

“엄마, 엄마는 얼굴 안 봐? 엄마도 잘생긴 남자가 좋잖아.”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거기에 더해,

“아빠도 예쁜 여자 좋아하니까 엄마랑 결혼했지.”

라고 말하더니 싱글싱글 웃기까지 한다.

소심해서 사람들 앞에선 말도 잘 안 하는 녀석이 언제 이렇게 넉살이 좋아졌는지….


아들아이의 말을 들으며 이탈리아 사람들이 부사를 사용하는 대신 최상급을 사용해서 말하는 이유는 바로, ‘나’ 중심이 아니라 ‘상대방’ 중심의 말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아이의 농담 같은 그 말에 기분이 꽤 좋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나도 최상급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모두 마친 후 맛있었느냐고 물어보는 가게 직원에게 “Buonissimo!”라고 말하고 엄지손가락을 세운다.

옷가게에 가서 예쁜 옷을 사면서도  “Benissimo!”라고 말한다.


그리고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마트 계산원 아저씨에게도 말하고 싶다.

“ Tu sei Bellissimo! (당신은 최고로 잘생겼어요.)”



나는 오늘도 이탈리아어를 한마디 내뱉으면서

나의 마음을 조금 더 잘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

적당히 남들 하는 것 만큼이 아니라 내 마음이 느끼는 데로,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방법으로, 상대를 추앙하며 최상급으로 올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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