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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Dec 06. 2023

7. 이탈리아 육아, 존중일까? 방임일까?

삶을 지탱하는 힘, 자존감 perfetto


한창 프랑스육아가 유행일 때가 있었다.

프랑스 아이들은 식당에 가서도 전신, 본식, 후식으로 이어지는 긴 저녁시간 동안 보채지 않고 얌전히 기다릴 줄 알고,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찬사를 보내며 프랑스 아이처럼 키워야 한다고들 말했다. 특히 아이들이 태어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을 때부터 잠자리 분리를 하여 부부의 밤시간을 존중하는 것이나 아이가 밤중에 깨어 울어도 안아주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통잠을 자게 만드는 “수면교육”은 밤중수유로 지친 초보 엄마들에게 한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수면교육을 시키겠다고 얼마나 많은 밤을 함께 울었던지….

결국 나는 프랑스 사람이 아니라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아이가 울 때마다 기꺼이 가슴을 풀어헤치고 찌찌를 내어주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지역적으로 멀지 않은 유럽 국가이지만 문화나 생각은 많이 다른 것 같다. 그것은 아이들을 대하는 부모의 모습에서부터 확연히 차이가 난다.

프랑스혁명을 통해 사회적 계층구조를  철폐시키고 남녀평등까지 이룬 프랑스 사람들의 평등 사상과 남성 중심의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에 보수적인 가톨릭 문화까지 더해진  이탈리아의 남아선호사상은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중세 이탈리아는 도시국가 간의 끊임없는 전쟁으로 남성이 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 나폴리, 시칠리아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도시들은 원래 도시가 아닌 각각의 독립국가였다. 끊이지 않는 전쟁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참전할 수 있는 남자였을 것이고, 대를 이을 남자였을 것이다.


이러한 이탈리아의 남아선호사상은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에도 뿌리 깊게 박혀있다. 프랑스어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어에는 ‘성’이 있는데 단어의 끝이 -o로 끝나면 남성명사, a로 끝나면 여성 명사이다. 그런데 이탈리아어로 하늘은 ‘Cielo’, 땅은 ‘terra’이다. 보석, 금, 은 등  값이 나가는 것들은 모두 -o로 끝나고, 물, 열매, 집 등 흔한 것은 a로 끝난다. 여자인 나는 이게 은근히 기분이 나쁘지만, 옛날에 만들어진 한 나라의 언어를 가지고 뭐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아직 성별을 모르는 태아의 태명을 남성형으로 부르는 이들이 아직도 많은 걸 보니,  여전히 남아있는 이탈리아의 남아선호사상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얼마 전 "오은영 박사님도 극찬한 아빠표 육아법"이라는 영상을 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이탈리아 남자'로 유명한 알베르토가 아이의 말에 공감해 주고,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대부분의 한국 엄마들은 "알베르토의 아내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나 보다"라고 부러워했다.

나 역시도 그 영상을 보며 '저런 아빠가 세상에 존재하다니....' 하는 생각과 함께, '저건 이탈리아 남자라서가 아니라 '알베르토'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탈리아에 2년을 살면서 경험한 이탈리아의 아빠들은 절대 알베르토 같지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 부부는 딸아이에게 "절대 이탈리아 남자는 만나지 마!"라고 할 정도이다.

그 이유는 바로, 이탈리아 사람들의 육아스타일 때문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꽤 관대한 편이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NO KIds Zone"은 상상할 수 조차 없다. 이른 아침에 카페에 가면 아이들 손을 잡고 카페를 찾는 부모님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대중교통 역시 만 14세 이하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아이들에게 관대해서 공공장소에서 웃고, 떠들고, 장난을 치고, 울어도 아무도 재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식당이나 마트에서 진상을 부리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모든 가정이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이탈리아 가정에서는 아이들을 관대하게 키우는 것 같다. 특히 아들일 경우엔 그 관대함이 도를 넘어선 경우가 있는데, 뭐든지 허용해 주고, 받아주고, 이해해 주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 Perfetto"라는 말을 정말 많이 하는데, 영어로는 perfect, 우리말로 하면 "완벽해!"라는 의미이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언제나 찬사를 보내는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아들과 엄마"의 관계는 거의 연인사이에 가까울 정도인데, 마흔이 훌쩍 넘은 아들의 속옷까지 챙겨주는 시어머니들이 정말 많다고 한다.


(한국의 시월드를 피해 이탈리아로 올 생각이라면, 한번 더 생각해 보시라. 이탈리아의 시월드에는  '헬'이 하나 더 붙을 수도 있으니....)



이런 아이들에 대한 존중과 관대함은 이들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그래서인지 이탈리아 사람들의 자존심은 하늘을 찌른다.

친구 사이에서 만나거나 가볍게 지나가다 만난 사이에서는 인사도 잘하고, 사과도 잘 하지만, 계약관계로 만났거나 사업상 만난 관계일 경우엔 절대 먼저 사과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든 자신의 말의 근거를 제시하고, 자신의 의견이 관철될 때까지회의를 하고 하고 또 하다가 결론도 맺지 못한 채 되돌이표 회의만 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운전을 하다 보면 더 빈번히 경험할 수 있다. 다른 운전자가 잘못한 경우에는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맘마미아!" 하지만, 본인이 잘못했을 때는 절대 상대방을 쳐다보지 않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그리곤 쌩~ 하니 가버린다…..


가정에서 대화를 많이 하고 자란 이탈리아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구두시험"을 본다. 이런 대화법은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어져온 "수사학"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수사학이란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그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한 언어기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이후 발달하기 시작하여 중세에는 문법·논리학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학과가 되었다.


이렇게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말"로 존중받고, 말로 관계를 맺고, 말로 문제를 해결해 온 사람들의 말은 과히 화려할 수밖에 없다.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챠오"하고 인사로 시작해, 한 시간이 넘도록 대화를 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문화때문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밀라노에 있는 프랑스 학교에 다닌다. 아이의 반에는 프랑스 아이들이 반, 이탈리아 아이들이 반, 그 외에 아시아, 아랍 등의 아이들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이 바로, 이탈리아 아이들이다. 딸아이의 말에 의하면, 수업시간에도 말을 멈추지 않고 떠들어서 매번 선생님께 혼나는 아이들이 이탈리아 아이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아이들은 매우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한다. 스스럼없이 발표를 하고, 주저하지 않고 질문을 하는 아이들이기도 하다.



이런 관대함은 사회적 허용에까지 이어지는 것 같다. 청소년들 중에 흡연을 하는 아이들이 굉장히 많다. 하긴, 아이들과 손을 잡고 가면서도 흡연을 자연스럽게 하는 부모들이 많으니, 이들에게 담배는 커피 같은 기호식품 중의 하나인 것 같다. 하지만 대마초까지 허용하는 건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종종 길을 가다가 또는 공원을 산책하다가 대마초 냄새를 맡는다. 그 냄새가 대마초 냄새라는 걸 알게 된 건 로마 여행을 갔을 때 야경투어를 하는 중에 가이드가 알려주어서이다. 담배 냄새와는 다른, 뭔가 시큼하면서도 텁텁한 냄새가 바로, 대마초를 피운 냄새라고 한다.


한 번은 버스를 탔는데, 바로 앞에 앉아있던 고등학생 즈음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얇은 종이에 뭔가를 열심히 싸고 있었다. 그걸 돌돌 말아서 기다란 대롱을 꽂으니 영락없는 담배였다.

알고 보니, 그게 바로 대마초였던 것이다....

버스에서 버젓이 대마초를 만들어 가방에 넣는 그 남학생을 보며

와.... 정말 이 나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아이의 부모는 알까??


이건 존중일까? 방임일까?





프랑스 남자와 결혼한 친구 한 명은 "딸은 절대 프랑스 남자랑 결혼시키지 마"라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게 키우는 프랑스 사람들에겐 평등은 있지만, 배려는 부족하기 때문이라나. 한마디로 우리나라에 있는 "정"이 없어서 남편에게 서운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프랑스 육아와 이탈리아 육아를 적절히 섞어야 함을 느꼈다.

적당히 독립적이고 평등하게, 적당히 존중하고 허용하며 아이들을 키워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식 육아가 가장 적당한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육아법을 맹목적으로 따르기 전에 내 아이의 기질을 이해하고, 내 아이와 충분히 대화하고, 내 아이를 끝까지 믿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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