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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Dec 13. 2023

8. 젊은이들의 꿈

마음껏 꿈꿔볼 용기

남편 회사에서 회계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카이라는 사회 초년생이다. 대학에서 경영학과를 전공한 뒤 바로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고 삼촌의 일을 도와주고 있었다고 한다. 아는 사람의 소개로 남편 회사에 “청년  인턴쉽“ 으로 입사했다.

이탈리아의 “청년 인턴쉽 프로그램(Tirocinio)은 대학생이나 대학을 갖 졸업한 사회초년생이 소액의 금액을 받고 공공기관이나 기업에서 다양한 업무를 경험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회사 직원이 아닌 인턴쉽이기 때문에 출퇴근 시간과 급여는 회사와 당사자가  합의하여 결정한다.



카이라는 회사 일도 처음이거니와 첫 회사가 생경한 한국 회사이다 보니 몇 달 동안 어리버리한 상태로 일을 했다고 한다. 영어도 잘하지 못해 회사 상사인 남편과 의사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남편은 카이라와의 계약기간이 끝나면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카이라는 일반적인 20대 여성과는 조금 다른 캐릭터이다. 큰 눈에 오똑한 코, 웃을 때 한껏 벌어지는 큰 입은 영화배우 앤 해서웨이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카이라는 꾸미지 않는다. 화장도 하지 않고, 젊은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옷도 입지 않는다. 언제나 청바지에 티셔츠, 운동화 차림이다. 더욱이 먹는 것에 진심이어서 몸매를 위해 다이어트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조금만 꾸미면 영화배우처럼 예쁠 것 같다고 여러 번 말했지만, 카이라는 그저 허허허 웃을 뿐이었다. 27살이지만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주말엔 삼촌의 일을 여전히 돕고,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과 외식을 하는 것이 카이라의 평화로운 삶이다.

가장 신기했던 것은 커피는 물론이거니와 술도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탈리아 사람이라면 으레 에스프레소를 즐기고, 와인을 음료수처럼 마시는 줄 알았는데….

나는 카이라를 보며 “이탈리아 사람은 분명 이럴 것이다’는 고정관념을 버릴 수 있었다.



내가 카이라를 처음 만난 건 올해 3월이었다.

다른 직원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새로운 직원을 뽑지 못했다. 카이라와의 계약을 끝내려 했는데 오히려 카이라의 업무가 많아져버린 것이다. 나는 “새 직원을 뽑을 때까지만 도와 달라”는 남편의 요청으로 일주일에 두세 번 회사에 나가 영수증을 붙이는 일이나 수입-지출 내역을 정리하는 일, 회계 프로그램에서 전표처리 하는 일 등을 카이라에게서 배워 일을 하기 시작했다. 카이라의 어설픈 영어와 나의 어설픈 콩글리쉬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찰떡처럼 통했다.



몇 달 후 새로운 직원이 드디어 뽑혔다.  

카이라와 같은 나이인 제시는 전형적인 20대 이탈리아 청년 같은 사람이었다. 제시 역시 아는 사람의 소개로 청년 인턴쉽 프로그램으로 입사했다.

그녀는 한국을 너무 좋아하는 청년이었다. 작년엔 서울 경희대학교로 6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부모님은  지방에서 살고, 제시는 밀라노에서 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영어를 꽤 잘하는 편이었고, 한국어도 조금 할 수 있었다.

코에 피어싱을 했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은 이곳에서 너무 흔한 일이기에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하지만 다른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근태 문제였다. 몸이 아프다며 회사에 나오지 않은 날이 종종 생겼는데, 마지막엔 일주일이 넘게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한국이 좋아서 한국 회사에 들어왔는데, 주로 하는 일은 영수증을 붙이고, 돈 계산을 하는 일이었으니 하기 싫을 만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함께 파트너로 일하는 카이라만 더 힘들게 돼버렸다.

결국 나는 다시 회사로 불려 나갔고, 지금까지 새 직원은 뽑지 못하고 있다…. (요즘 글쓰기 모임을 못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오랜만에 만난 카이라는 많이 변해있었다. 그전에 보이던 어리버리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회계업무뿐만 아니라 계약 관련 일, 사무실 프린터기와 인터넷까지. 사무실에 카이라가 없으면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카이라의 영어실력 또한 놀랍도록 발전해 있었다. 남편이 묻는 말에 “What?”이라고 대답하던 카이라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의 입에서는 “Yes, Okay, Of course.”라는 말이 나왔다. 심지어 상사의 오더 실수를 잡아내기까지 하는 것이 아닌가?

카이라를 이렇게 변화시킨 건 도대체 뭘까?

이런 카이라의 성장을 목도한 회사는 카이라를 정식 계약직 직원으로 채용했다.




최근에 이탈리아에서 20년 넘게 사신 어느 중년 남자분의 고백 같은 독백을 들었다. 내년이면 대학에 가야 하는 아들이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놀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알아서 하겠죠….”하고 말하며 웃는 그의 표정에 씁쓸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한국 아이들이지만 이탈리아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한국적 정서와 이탈리아의 문화가 겹겹이 맞물려 있다.

고국을 떠나 먼 이탈리아 땅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먹고살기 위해 애쓴 부모님들의 “라떼는 말이야”는 아이들에게 전혀 통하지 않는다. 열심히 사신 부모님의 인생은 인정하지만, 그 열심을 나에게까지 강요하진 말라고 말한다. 이탈리아에선 ‘열심히 살아봤자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나라의 흙수저, 금수저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도 사회초년생이 받을 수 있는 월급이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경력이 쌓여도 월급이 잘 오르지 않는다.

정규직이 되면 상황은 조금 달라진다. 정규직 되면 그 직원이 거짓말을 하고 회사에 안 나와도 자를 수가 없다. 육아맘이라면 아이가 아플 때도 법적으로 쉴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정규직 법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게 이 나라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정규직이 되고, 관리자가 되면 감당해야 하는 업무와 책임이 따르는 우리나라와 달리 자신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은 법적으로  마음껏 누리되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다. 일은 계약직에게 모두 시키고, 자신은 법적 휴가를 가버리는 식이다.

이 때문에 기업에서는 오히려 정규직을 거의 뽑지 않고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계약직을 뽑는 게 이 나라의 현실이다. 3년 이상 계약직으로 일하면 정규직 전환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전에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또는 ‘에이전트’라는 구실 좋은 시스템을 활용하는데 한마디로 개인이 프리랜서 사업자가 되어 회사-직원 간의 계약이 아니라 회사-회사의 계약을 체결해 직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혜택과 문제점을 애초에 차단한다.


이탈리아는 세금이 높기로 유명하다. 수입의 40프로 정도가 세금이고, 물건 하나 살 때마다 22 퍼센트의 세금이 붙는다. 청년들의 낮은 급여에 높은 세금까지 떼가니, 실수령액은 더 적을 수밖에 없다. 물론 이 세금 덕분에 노후에 연금을 받으며 편히 사는 사람들이 있지만, 현재 젊은이들은 이 연금 혜택을 받기 힘들 거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해 이탈리아의 젊은이들은 현실에 안주하며 사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운영하는 가게를 물려받아 대를 이어 일할 수 있다면 그나마 낫다. 대부분은 계약직에서 계약직으로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며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간다. 이런 청년들의 모습은 곧 결혼과 출산율 저하를 불러일으킨다. 결혼 대신 동거를 하는 커플이 더 많고, 함께 살아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결국 인구감소는 당연한 수순이다.

실제로 이탈리아 전역엔 이민자들이 정말 많다. 청소를 비롯해 식당 웨이터, 커피숍 바리스타, 옷가게 점원 등 대부분이 이민자들이다. 이들이 없으면 이탈리아의 경제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현재 이탈리아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가까운 미래모습 같다. 대한민국의 출산율이 0.6 퍼센트라고 하니, 인구 감소의 문제는 진작에 시작되었다. 이제 곧 우리나라 곳곳에 이민자들이 들어와 궂은일을 담당하지 않을까?

아무리 출산장려정책을 펼치고, 자녀수당을 준다고 해도 청년들에 대한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혼율이나 출산율은 절대 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청년 문제는 이탈리아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우리의 청년들은 누구보다도 학창 시절을 치열하게 보낸다. 초등학생 때부터 수능을 위해 공부한다. 수능만 보고 원하는 대학에 갈 수만 있다면 행복할 것 같지만, 정작 대학에 가면 취업을 걱정해야 한다. 대학까지 나왔는데 아무 직장에나 들어갈 수 없으니, 다들 연봉은 높고 대우가 좋은 기업에 들어가려 애를 쓴다.

그렇게 취업에 성공하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바쁜 업무와 힘든 인간관계로 다시 고비를 맞고 우울증이나 공황장애를 앓는다.


 이탈리아의 청년들은 열심히 하지 않아서 문제인 반면,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너무 열심히 살아서 문제인 것이다....



젊은이들이 꿈꾸지 못한 사회가 과연 건강할까?


요즘 MZ 세대들의 꿈은 "건물주"라고 한다. 그건 20대인 우리 조카들도 마찬가지다. 돈을 벌어서 건물을 산 다음 월세를 받으며 편안히 사는 게 꿈이라고들 말한다.

나는 조카들에게 "그건 꿈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일 뿐"이라고 말해주었다. 수능을 잘 봐서 좋은 대학에 가려는 목표, 좋은 직장에 취업하려는 목표. 그 목표를 이루고 나면 편안할 것 같지만, 결코 끝이 될 수 없는 목표이다.

꿈이란 의사, 선생님, 공무원, 건물주 등의 명사가 아니라 "외과 의사가 되어 수술을 가장 잘하고 싶다" 또는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 등의 동사형이다.

건물주가 아니라 "마음이 넓은 건물주가 되어 세입자들이 마음 놓고 사업을 할 수 있게 돕고 싶다"는 꿈을 꾸어야 하는 건 아닐까?


나 역시 청년 시절엔 특별한 꿈이 없었다. 취업이 잘 되는 간호학과에 갔는데, 가서 보니 적성에 잘 맞았다. 간호학과에 갔으니 당연히 종합병원에 취업해 간호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간호대학에 다니는 내내 고등학생처럼 공부를 했고, 졸업도 하기 전에 취업에 성공했다. 병원에서 일할 때도 힘들긴 했지만 보람을 느끼며 재밌게 일했다.

하지만 5년 차가 되었을 때 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환자와 보호자, 의사들에 휩싸인 간호사라는 자리는 너무 좁았고, 몇 년이 지나도 이 병원을 벗어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렇게 서른이 되면 나의 20대를 너무나도 후회할 것 같았다.


무작정 병원을 그만두고 네팔로 떠났다. 네팔에서 나는 한국에 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은 너무나도 넓다는 것도 깨달았다.

딱 한 번의 도전은 내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한국사회에서 말하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버릴 수 있었다.




며칠 후면 조카가 이탈리아 여행을 온다. 그 조카는 어렸을 적부터 공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결국 특성화고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취업과 대입을 놓고 고민할 때 대부분의 가족들은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내놓았다. 남들 다 갈 때 대학에 가고 남들 다 갈 때 군대에 가고,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는 것이 대한민국에서 사는 길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대학은 원할 때 가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취업을 먼저 해서 사회생활을 먼저 경험해 보는 것은 결코 실패가 아니며, 남들이 다 간다고 해서 가는 대학은 별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조카는 대학 대신 산업체 취업을 선택했고, 힘들긴 하지만 차곡차곡 돈을 벌고 모으기 시작했다.


조카는 대학생이 된 친구들이 부럽다고 말했다. 방학 때 해외로 여행 가는 친구들이 너무 부럽다는 것이었다.

나는 조카에게 "이모가 있는 이탈리아로 여행을 오라"고 말했다. 부러워만 하지 말고 그냥 오면 된다고, 해외여행을 한번 하고 나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그러니 꼭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조카는 결국 남은 휴가를 12월에 몰아서 쓰기로 하고 여행경비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께 여행 갈 친구도 모았다. 공부를 그렇게 싫어하던 조카는 첫 해외여행을 앞두고 영어공부도 하기 시작했다.

"해외여행"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하나, 둘 준비해 가는 조카를 보며 남들이 다 하는 시간에, 다 가는 방향으로 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조카는 분명 이번 여행을 통해 또 다른 꿈을 꿀 것이다.





"그 소식 들었어요? 루까가 회사 그만두고 유학 간대요."

"네? 어디로요?"

"불가리아로 간데요. 거기 치과대학에 입학하기로 했대요."

"어머, 정말요? 정말 잘 되었네요."


루까는 우리 회사 1층, 파트너 회사에서 일하는 스무 살 청년이다. 고향은 시칠리아인데 부모님 곁을 떠나 밀라노에 상경해 혼자 살고 있다. 회사에서 가장 어린 루까는 그 회사의 잡다한 업무를 도맡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급여는 많지 않았다.

루까는 이탈리아에서 보기 드문 성실한 청년이었다. 영어도 스스로 공부해 프리토킹이 가능한 정도이고, 일도 꽤 잘하는 편이었다.


치과 기공소에서 잡다한 업무를 하던 루까는 '내가 여기서 계속 일하면 이런 비슷한 일만 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리곤 치과의사가 되어 다시 돌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불가리아라는 생경한 도시에서 6년을 공부해야 하지만, 새로운 꿈을 꾸는 루까의 얼굴은 희망에 가득 찬 표정이었다.




꿈은 타인이 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낄 때 꿈을 꿀 수 있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마음껏 경험하고, 마음껏 꿈을 꿀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른인 우리가 먼저, 청년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려놔야 할 것이다.


그게 이탈리아든, 한국이든.

암울한 현실과 타협하는 대신,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거위의 꿈


난 난 꿈이 있었죠

버려지고 찢겨 남루하여도

내 가슴 깊숙이 보물과 같이 간직했던 꿈

혹 때론 누군가가 뜻 모를 비웃음

내 등뒤에 흘릴때도 난 참아야 했죠

참을 수 있었죠 그 날을 위해

늘 걱정하듯 말하죠 헛된 꿈은 독이라고

세상은 끝이 정해진 책처럼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라고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나를 지켜봐요

저 차갑게 서 있는 운명이란 벽앞에

당당히 마주칠 수 있어요

언젠가 난 그 벽을 넘고서

저 하늘을 높이 날을 수 있어요

이 무거운 세상도 나를 묶을 순 없죠

내 삶의 끝에서

나 웃을 그 날을 함께해요.



거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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