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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Nov 30. 2023

인생의 커다란 시험을 만날 때

글 쓰는 월요일 밤

이주 전, 둘째 딸아이에게 위기가 닥쳤다. 가능하다면 꼭 피해 가고 싶은 일이 아이에게 생긴 것이다. 하지만 피할 수가 없었다. 그건 어려운 역사 시험도 아니고, 프랑스어 문법 시험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럭비시합'이었다.


초등 마지막 학년에 다니고 있는 아이에게는  일주일에 두 번 스포츠 시간이 있다. 한 번은 실내 체육관에서 주로 하는 스포츠를, 또 한 번은 실외에서 주로 하는 스포츠를 한다. 스포츠 종목은 그때마다 다르다. 학기 초에는 목에서 피 맛이 날 정도로 마라톤을 하더니, 두 달 전부터는 럭비를 하기 시작했다.


럭비는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그 후 12세기경에  영국에서 다시 유행을 했다고 한다. 그 뒤 미국 대륙으로 들어가면서 지금의 과격한 미식축구의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럭비를 미식축구, 즉 American football이라고 부르며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이다. 그 경기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그 스포츠가 얼마나 과격한지 알 수 있다. 유럽에서도 럭비는 꽤 인기 있는 종목인데 특히 프랑스 사람들이 럭비를 좋아한다고 한다. 유럽 내에서도 프랑스 팀이 상위권을 차지하기 때문인 것 같다.



평소에도 경쟁을 싫어하는 아이는 학교에서 럭비를 배운 후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스포츠가 되었다. 럭비를 하는 날만 되면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고, 학교에 가기 싫은 마음을 이겨내느라 온몸으로 짜증을 냈다. 던진 공을 받는 것도, 딱딱한 공이 몸에 맞는 것도, 공을 들고 달려야 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아이가 가장 힘들어했던 것은 바로 남자아이들의 "야유"였다.


"그것도 못하냐?"

"여자애들 때문에 우리가 졌잖아!"

"너 진짜 못한다."


생전 처음 접해본 스포츠이기에 잘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같은 반 남자아이들은 상대팀을 이기고 싶은 마음 때문에 심한 말을 내뱉곤 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의 아유와 윽박지르는 말은 내 아이의 마음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럭비공을 놓치는 횟수가 많아졌던 것이다.


럭비 시간의 마지막은 같은 학년의 모든 반이 학교 근처 큰 체육관에 가서 다 함께 럭비 경기를 하는 것이었다. 그날을 앞두고 아이는 그전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아이를 달래주기 위해 '선생님께 솔직하게 말해 보는 건 어때?'하고 조언했다. 아이는 내 말을 듣고 정말로 담임 선생님에게 '럭비가 너무 하기 싫다'라고 말했고, 선생님은 '다음 날 영화관에 가니까 딱 하루만 참아라.'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선생님이 학부모들에게 럭비 관련 메일을 보냈다.

'이기고 지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소풍을 다녀올 생각입니다'


나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보내 준 메일을 보여주었다. 잘할 필요도 없고, 잘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고, 하기 싫은 그 일을 피하지 않고 대면하는 것만으로도 장하다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남자아이들이 또 야유를 보내면 어떻게 해?"


아이는 자기가 럭비를 못한다는 것보다도 다른 아이들이 놀리는 상황이 싫었던 모양이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소은아, 세상엔 그런 사람들이 많아.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런데 그건 네가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야. 함부로 말하는 그 아이들이 잘못된 거야. 배려하지 않고 함부로 아무 말이나 하는 그런 어리석은 아이들 때문에 상처받을 필요 없어. 네 마음이 중요한 거야.


사람의 마음엔 모두들 '어린아이'가 있어. 엄마의 마음에도 있고, 아빠의 마음에도 있어. 너의 마음에도 있고 너를 놀리는 아이들에게도 어린아이가 있어. 그런데 마음속 어린아이는 진짜 네 나이와는 다른 모습이야. 어른이 되고 할머니가 되어도 마음속 어린아이는 여전히 자라지 못하고 그냥 아이의 모습 그대로인 사람들이 있어.

엄마도 그랬었거든. 근데 내 안의 아이에게 좋은 말을 해주고, 인정해 주고, 괜찮다고 말해줬더니 지금은 꽤 많이 자라서 거의 엄마 나이만큼 된 것 같아. 마음속 아이를 자라게 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야. 지금 걱정되는 마음 때문에 네 안의 아이가 두렵도록 놔두지 마. 네가 사람들의 말에 신경 쓰고, 걱정하면 할수록 네 안의 아이는 자랄 수가 없어.

대신 괜찮다고 말해줘. 사람들에겐 누구에게나 피하고 싶은 순간이 있어. 큰 시험도 있고, 시련도 있지. 그럴 때 네 마음속에 있는 아이가 잘 자라 있다면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는 거야."


아이는 내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더니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내 안의 아이는 지금 한... 다섯 살? 정도 된 것 같아. 내가 좀 더 크면 아이도 자라겠지?"

"그럼, 당연하지."


아이는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고, 걱정은 되지만 덤덤한 마음으로 다음날 학교에 갔다.



럭비 시합이 끝난 후 만난 아이의 표정은 의외로 밝았다. 잘 못했지만, 놀리는 아이는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상대팀 아이를 아주 살짝 밀었는데, 그 아이가 오버액션으로 크게 넘어지며 울어버리는 바람에 경기가 중단되기도 했다나....  내 아이의 팀이 상대팀을 8대 5로 이기긴 했지만, 선생님이 보낸 메일 내용처럼 이긴 팀도, 진 팀도 없었다. 상장도, 트로피도 없는 아주 프랑스학교 다운 경기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 나는 아이에게 한번 더 진지하게 말했다.


"소은아, 오늘을 잘 기억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면서 분명히 아이들이 놀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어땠어?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지? 미래에 대해 다들 걱정할 순 있지만, 그 걱정이 실제가 되는 일은 드물어. 그냥 덤덤히 잘 지나가면 되는 거야. 그 시험이 널 무너뜨리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어.


분명히 다음에 또 비슷한 일이 있을 거야. 그때가 되면 오늘의 경험을 잊지 말고 꺼내봤으면 좋겠어. 그게 바로 다른 힘든 시험을 이겨 낼 힘이 될 거야."



이제 겨우 10년을 산 아이에게 학교에서의 어려움은 태산처럼 느껴질 것이다. 이 작은 사회에서 배운 시험과, 그 시험을 이겨낸 경험으로 더 넓은 세상에서 아이가 유영하며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삶에 작고 큰 시험을 만났을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그 시험을 지나온 경험일 것이다. 이런 다양한  경험을 통해 아이의 마음속에 있는 어린아이가 무럭무럭 자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주부터는 중학교 첫 학년인 큰아이에게 수영 수업이 있다. 수영을 못하면 다음 학년으로 진급하지 못한다나.... 그동안 수영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수영을 못하는 아이에게 불이 떨어졌다. 수영 시간을 피해보고자 학교에 메일을 보내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수영은 아이들이 꼭 배워야 하는 중요한 것이라는 답변만 받았다.


과연 우리 집 큰아이는 이 시험을 잘 이겨낼 수 있을까?

이 어려움을 극복하며 아이는 무엇을 배우게 될지 정말 기대된다.



글월밤은 월요일 저녁 9시(한국시간)에 온라인으로 만나 각자의 글을 쓰는 모임입니다.

각자의 글을 쓰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며 쓰는 사람들이기에 분명 다정한 글쓰기 시간입니다.


한 달에 한 번 공통주제로 브런치 공동매거진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11월 공통주제는 '시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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