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무명작가로 살아남기 위해서
2년 전부터 새벽 5시에 일어나고 있다. 미라클모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새벽의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와, 그 분위기를 가르고 찬란하게 떠오르는 햇살과, 그 햇살로 화려하게 물든 아침 하늘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새벽엔 강아지처럼 날 졸졸 따라다니는 아이들이 없기에 자유롭게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다.
어째서 우리 집 아이들은 안방 침대를 그렇게 좋아하는 것일까? 각자의 방과 침대가 어엿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안방 침대로 올라와 밍기적 거린다.
이 아이들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새벽 시간이다.
아이들은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일하는' 나를 부러워한다. 집에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논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자존심이 상해서 아이들에게 쏘아붙인다.
"엄마가 집에서 얼마나 바쁜지 알아? 새벽부터 일어나서 자기 전까지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
이 말 끝에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엄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줄줄이 읊기 시작한다. 그리곤 엄마는 노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 있다고, 다시 한번 확언한다.
월요일은 새벽부터 할 일이 더 많다. 일요일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두었기에 더욱 그랬다.
어김없이 새벽 5시에 일어나 노트북을 켰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세 달 가까이 슬로우리딩 했는데, 마지막으로 에세이를 편집해야 했다. 멤버들의 글을 들여다보며 열심히 편집을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감자 껍질을 벗기고 적당히 잘라 삶기 시작했다. 감자가 다 익자 팬에 버터를 녹인 후 감자를 넣고 적당히 구웠다. 설탕을 적당히 뿌려 버터감자를 후다닥 만들었다. 삶은 달걀과 버터감자를 테이블에 올려 두고 아이들을 깨웠다.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에세이 편집을 계속했다. 내 근처에서 아이들이 분주하게 학교 가방을 챙기고, 옷을 입고, 아침을 먹었다.
아침 8시.
가족들이 모두 집을 나갔다. 나는 주말 동안 가족들이 벗어재낀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었다. 뒤를 돌아보니, 욕실이 엉망이다. 변기를 청소하고, 욕실 바닥을 닦고 나니 거실 바닥의 먼지가 보인다. 청소기를 들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먼지를 털어냈다.
이제 그만 집중하며 에세이 편집을 해야 하는데, 더러워진 식탁의자가 눈에 띄었다. 오늘따라 햇볕도 쨍쨍하다. 나는 식탁 의자를 모두 베란다로 가져가 물을 뿌리고 세재를 풀어 박박 문질렀다. 그러고 나니, 빨래를 다 했다며 세탁기가 노래를 부른다. 나는 빨래를 모두 꺼내어 따듯한 햇살 아래 널었다. 드디어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았다.
….. 배가 고프다....
밥을 후다닥 먹고, 슬로우리딩 에세이 편집을 마무리한 후 멤버들에게 전달했다. 그리곤 밤중에 온 일대일 코칭 원고를 열었다. 책 출간을 위한 원고를 꼼꼼히 읽으며 피드백을 남긴다.
주로 많이 하는 피드백은 "주제"에 관한 것이다. 주제가 모호하던지, 주제가 뭔지 모르겠다던지, 주제에 맞는 소제목을 써달라던지...
이렇게 주제에 대한 피드백을 남기며 내 주제를 생각한다.
'내 주제에 이런 피드백을 남겨도 되는 것일까?'
내가 알고 있는 글쓰기 방법을 바탕으로 피드백을 한다. 문장을 다듬는 방법, 간결하게 쓰는 방법, 조금 더 독자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 등등
글을 잘 쓰는 방법론은 쉬운 편이다. 전공을 하지 않아도 여러 글쓰기 책에 나와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론을 알아도 공감 가는 좋은 글을 쓰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이론과 실제는 언제나 다르기 때문이다.
월요일엔 글월밤 글쓰기 모임도 있다.
매주 월요일 저녁 9시부터 11시까지(밀라노 시간으론 오후 1시부터 오후 3시까지), 줌에서 만나 글을 쓰고 나눈다. 그 시간엔 타인의 글을 만지는 대신 내 글을 쓰는 데 집중한다. 덕분에 일주일에 한 편 이상의 글을 쓸 수 있다.
글월밤 모임이 끝나면 나는 다시 주부가 된다. 아이들의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로 달려간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오면 오후 5시. 이제 저녁 준비를 하고, 집안 정리를 하고, 책을 읽고, 님편과 산책을 하고 나면,
잘 시간이다….
하루동안 주부와 작가, 편집자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든다.
그중에서도 주부의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하래한다. 사실은 가장 하기 싫고 뒤로 미뤄두고 싶은 일이지만, 먹고사는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을 해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작가로서의 일이다. 내 글을 쓰고, 내 글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글에 대해 나누는 일이 가장 좋다. 마음 같아선 하루종일 글만 쓰며 살고 싶다. 글감이 있든, 없든, 쓰고자 하는 마음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기만 하다.
가장 힘이 드는 일은 편집자의 일이다. 편집 일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이고, 전문 편집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심지어 공저에세이 편집을 1년째 하고 있다.
일은 힘들지만 계속하는 이유는 가장 보람된 일이기 때문이다.
나로 인해 글쓰기에서 책 쓰기로 나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 퇴고를 처음 해보면서 자신의 글이 점점 좋아지는 걸 직접 경험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작가의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 내가 있음을 느낀다. 이 일은 가장 힘들지만, 가장 뿌듯한 일이다.
일의 중함을 따질 순 없지만 내 하루 일과를 세 부분으로 쪼개었을 때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주부의 일이다. 나의 본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언제나 내 글을 쓰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글감을 모으고 있으니, 부캐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가장 자신 없지만 열심히 하고 있는 편집자의 일을 부부캐라고 부르겠다.
(부부부캐는 일러스트레이션이다)
무명작가로 살아남기 위해서 본캐도, 부캐도, 부부캐도 상황과 상대방에 따라 언제든지 포지션을 바꿔가며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비록 전문가는 아닐지라도 한가지 일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것.
이것은 프로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덕복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