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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집, 좁은 방, 낮은 집

스물하나, 3평, 2층 뒷방

by 김온영


2층 다세대주택에는 2개의 문이 있다. 왼쪽 큰 문은 1층 주인집으로 바로 통하고, 오른쪽 작은 문은 2층 계단으로 통한다. 문을 열 때마다 끼익 소리가 나는 작은 쇠문을 열고 계단을 올라 뒤쪽으로 돌아가면 작은 방이 하나 있다. 이곳이 나의 첫 자취방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리고 말 공간, 자물쇠 하나가 달려 있어 문이 있음을 알게 된다.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 설렘으로 가득 찼다. 드디어 혼자 살 수 있게 되었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 자취라는 나의 로망을 이루었지만, 로망이 실현되었다는 들뜸은 오래가지 않았다.


입시 원서를 쓰며 나의 목표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보다 집을 떠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부모님의 싸움이 잦아지기 시작했고 집에 있는 시간이 불편해졌다. 나는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공부하느라 바쁘다는 핑계가 타당하게 받아들여지던 시기였다. 나는 되도록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을 가고 싶었다. 멀리 가면 부모님의 싸움 소리도, 불행도 따라오지 않을 것 같았다. 1순위는 서울로 가는 것이었지만 실패했고 집에서 2시간여 떨어진 곳에 입학했다.


98학번, 1997년 IMF의 직격탄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학번이었다. 아빠의 공장은 멈추었고 빚 독촉을 하는 사람들이 집에 자주 찾아왔다. 그럼에도 입학을 하고 1년을 다녔지만 먼저 대학을 입학한 언니까지 대학생 2명을 부모님이 뒷바라지하는 것은 무리였다. 나는 휴학을 했고 편의 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1년여의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전세보증금을 마련하는 것은 무리였고 부모님의 사정도 좋아지지 않았다. 나는 월세로 자취방을 구해야 했다. 매달 월세를 낸다는 것이 부모님께 얼마만큼 부담이 되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스물한 살의 나는 부모님의 걱정을 공유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아니, 부모님의 경제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다. 복덕방에서 보여준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우리가 구할 수 있는 공간은 학교에서 멀지 않은 2층 다세대주택의 방 한 칸, 딱 한 칸의 공간만 빌릴 수 있었다.


아빠의 사업이 잘나갔을 땐 방 세 개의 30평대 아파트에 살았다. 하지만 사업이 기울면서 집은 점점 작아졌고 초라해졌다. 아빠가 운영하는 공장 위에 임시 건물을 지어 지내기도 하고 이모네 아랫방을 임시 거처로 삼기도 했다. 집이 초라해지니 삶도 팍팍해졌다. 집 안에 웃음보다 냉랭한 기운이 가득 찼다. 그랬기에 대학 입학과 함께 집을 떠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에 나는 속으로 기뻐했다. 그때 나에겐 방 한 칸의 넓이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것만 중요했다.


2층 다세대주택의 일 층은 군대를 제대한 아들을 둔 주인 가족이 살았다. 본인 아들도 나와 같은 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이사 왔을 땐 복무 중이었던지 본 적 없던 아들이 언젠가부터 보이기 시작해서 제대를 했나보다 추측했다. 형광등이 고장 났을 때, 주인아주머니는 아들을 시켜 바꿔주도록 하셨고 난 머쓱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학교에서 그 아들을 마주칠 때면 그저 안면 있는 사람으로 알은체를 할 수도 있었지만 주인집 아들과 셋방 사람이라는 처지가 떠올라 씁쓸해하며 외면했다. 주인집 아들이 아니었다면 학교 선후배로 정리되었을 관계가 알 수 없는 수직 관계가 된 듯 불편했다.


방 두 개에 거실이 있는 2층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성 2~3명이 함께 살았다. 원래는 2층의 또 다른 방이었을 내 공간은 문에 못질을 해서 2층 거실로부터 폐쇄되었고 뒤쪽에 문을 달아 세대가 분리되었다. 분리된 공간이었지만 거실에서 TV를 보는 소리,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소리들이 전해져 마치 한 공간에 사는 것 같았다. 옆방 소음이 불편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오히려 밤엔 무서움을 덜 수 있어 좋았다.


자취방의 문을 열면 왼쪽엔 세숫대야 하나를 놓을 수 있는 공간에 수도가 있고 오른쪽엔 휴대용 버너 하나를 놓을 수 있는 공간이 시멘트로 발라져 있었다. 부엌이면서 신발장이고 욕실이자 현관이었다. 현관과 방은 미닫이문으로 구분되었다. 방과 현관을 합쳐 3평. 좁았다. 그래도 좋았다.


옷 몇 벌, 이불 한 채, 수건이 전부인 짐을 옮기고 살림살이를 사러 갔다. 비누, 세숫대야, 슬리퍼를 사고 휴대용 버너랑 냄비 하나, 과도도 샀다. 사소한 물건 하나 사는 데도 고민을 수십 번 하며 자취 생활에 들떴었다. 캠퍼스 생활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선배들과의 술 한 잔, 과외 수업, 밤샘 공부로 피곤해도 자취방에 오면 온전하게 쉴 수 있었다. 기숙사에 살 때처럼 늦은 귀가를 눈치 주는 선배도 없었고 방이 지저분하다며 청소하라는 잔소리를 하는 엄마도 없었다. ‘방 한 칸’이라는 단어가 궁상보다 낭만으로 느껴지던 스물한 살이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저녁 8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휴대용 가스버너 옆에 있던 과일 칼과 방 안 빨랫줄에 걸려 있던 팬티 한 장이 사라졌다. 짐이라고는 손가락으로 셀 정도니 사라진 물건의 빈자리는 바로 눈에 띄었다. 자취방이니 비싼 것은 없었을 테지만 사라진 물건 두 개가 하필 칼과 속옷, 공포스러웠다.

주위를 둘러봤다. 내가 사는 주택과 마주 보고 있는 뒷집이 보였다. 비슷한 구조의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이었다. 내가 사는 주택의 문을 여는 소리보다 뒷집 현관문 닫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뒷집 2층의 창문이 갑자기 닫혔다. 옆집 화장실 전등이 켜지고 사람의 모습이 잠깐 보였다 사라졌다. 누군가가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이 몰아쳤다.


“방에 누가 들어왔던 거 같아요.”

일 층으로 내려가 주인아주머니께 말했다.

스물한 살의 나는 집주인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나의 두려움을 함께 공감해 주며 해결책을 찾아줄 집주인을 기대했다. 하지만, 주인아주머니의 대답은

“열쇠를 바꿔줄게.”였다.


열쇠를 바꾼다?

열쇠를 바꾸면 나는 안전해지나?

내가 들어온 순간에 그 사람을 마주쳤다면?

혹시라도 나를 마주칠까 봐 과도를 손에 쥐고 있다가 가지고 갔나? 속옷을 가져간 건 단순 절도보다 변태 짓을 하려고 했던 걸까?


오래전부터 나의 자취방을 노리고 있었을까? 언제부터였을까?

이사를 오고 설렘을 느꼈던 첫날부터였을까?

청소를 위해서 하나밖에 없는 문을 활짝 열어뒀을 때였을까? 더운 여름 세숫대야에 의지해 샤워를 할 때,

누군가 물소리를 듣고 있었을까?

그때, 그의 눈빛이 번쩍였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자물쇠를 바꿔도 나는 그곳에 있을 수 없었다.


나는 왜 아무런 위험도 대비하지 않았을까?

자물쇠 하나가 성곽처럼 내 공간을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걸까? 세상모르고 로망 타령을 하며 신났었던 스물한 살의 심장이 쪼그라들었다.


일단 학교 안 도서관으로 갔다. 24시간 운영되는 도서관에서 며칠을 지내며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렸다. 자취방에 살면서 마주쳤던 이들을 떠올려봤다. 옆방엔 종종 사람들이 놀러 왔다 가곤 했다. 남자들의 목소리도 가끔 들렸다. 늦은 밤, 나에게 안정감을 주던 목소리의 그들이 내 방을 궁금해했을까? 주말 오전에 청소하려 문을 열어두면 가끔 뒷집 1층에 사는 아저씨가 보였다. 흰 메리야스만 입고 청소를 하고 나무에 물을 주던 아저씨의 인상이 어땠지? 학교에서 내가 사는 곳을 누가 알고 있지? 비 오는 날 우산을 씌워 바래다주었던 착한 남자 후배, 그럴 이유가 없잖아? 제대한 지 얼마 안 된 주인집 아들?

이런 일을 벌일 것 같은 사람들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다. 머릿속에서 나는 그들을 불러내어 취조를 했지만 현실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자물쇠를 바꾸는 것 말고는 아무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범인은 잡지 못했다. 아니 잡지 않았다. 스물한 살의 나는 자취방에서 도망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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