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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집, 좁은 방, 낮은 집

스물셋, 1.5평 307호

by 김온영

스물셋, 1.5평 307호 혼자 살던 자취방에 도둑이 든 후,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새로운 공간을 구해야 했다. 또 다른 자취방으로의 이사도 고려했지만 자취방이라는 공간을 떠올리면 누군가 나의 방을 염탐하듯 보고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 생각을 떨쳐 버릴 만큼 난 대범하지 못했다. 자취방을 제외하니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월세, 학교와 멀지 않은 곳,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 이러 한 조건을 만족시키는 곳이 고시원이었다.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숙식하며 공부하는 공간이지만 학교 앞이어서 인지 나 같은 대학생들이 더 많았다. 고시원이라는 선택지에 주저했던 건, 다닥다닥 붙어있는 좁은 공간 때문이었다. 답답했다. 음악을 틀 수도 없었고 방 안에서 전화를 받을 수 도 없었다. 숨소리마저 옆방에 들릴 듯 고요해 모든 행동을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대안이 없었다. 입지는 좋았고 안전해 보였다. 버스 정류장 앞이라 유동 인구가 많았고 편의 시 설도 가까웠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고시원 입구에 서 사감이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3층은 여성 전용 공간, 4층은 남성 전용 공간, 간이 건물로 만든 옥상 은 공용 식당 겸 휴게실, 3층에 2개의 화장실과 2개의 샤워 실이 있었다. 나는 서서 샤워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격하며 고시원생이 되었다.

고시원은 2가지 옵션으로 나뉘었다. 벽을 따라 ㄷ자 위치에 는 창이 있는 방, 사람 한 명 지나갈 만한 폭의 복도를 사이에 두고 가운데 ㅁ자 공간은 창문이 없는 방이었다. 금액은 2만 원 차이었다. 2만 원이 한 달 동안 방 안에 햇빛이 들어오느냐 마느냐를 결정했다. 지금은 치킨 한 마리 값밖에 되지 않는 금액이지만 아침 학식이 1,000원 정도였던 때니 한 달 동안 아침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나는 창문이 없는 방을 선택했다. 햇빛보다 금액이 중요했다. 자취방에도 창문이 있었지만 창문을 열었던 적이 없었다. 창 문을 열면 옆방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내 방을 훤히 볼 수 있는 구조였기에 필요하면 창문 대신 문을 열고 지냈다. 그 문을 통해 누군가 안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알았다면 문도 열지 않았을 테지만.

고시원은 자취방보다 좁았다. 하지만 효율적인 가구 배치 덕분인지 자취방보다 많은 가구가 있음에도 좁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자취방에 없던 침대와 옷장, 책상이 생겼다. 의 자는 없었지만 필요 없었다. 침대가 의자를 대신해서 책상에서 공부하려면 침대에 걸터앉아야 했다. 침대에 누우면 종아리부터는 책상 밑으로 들어갔다. 유난히 뒤척이며 잠을 자는 나에게 책상 아래 놓인 다리는 영 불편했다. 머리를 최 대한 침대 끝까지 올려도, 반대로 다리를 침대 반대편까지 내려도 정강이에서 허벅지 사이가 책상에 걸렸다. 그렇다고 머리를 책상 밑으로 둘 순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자다가 뒤 척일 때마다 정강이를 책상에 부딪혔고 정강이에 멍이 자주 생겼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시원의 어둠과 적막에는 적응을 했지만 나의 잠버릇은 고쳐지지 않았고 멍도 오랜 시간 함께 했다.

고시원은 고요했고 어두웠다. 문을 닫고 전등을 켜지 않으면 완전한 암흑이었다. 그런 면에서 불빛이 있으면 잠을 잘 못 자는 내게 고시원은 최적이었다. 침대에 누워 눈을 뜨고 있어도 눈을 감은 듯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다가 깨서 시계를 봐도 오전인지 오후인지 헷갈렸다. 어떤 날은 오전 11시를 오후 11시로 착각해 자다가 수업을 빠지기도 했고 아침이 온 줄 모르고 있다가 수업에 늦기도 했다. 햇빛이 들어오는 방에 살았으면 달랐을까? 나의 게으름은 2만 원 때 문이라고 핑계를 댔다. 밤낮을 알 수 없는 공간에 파묻혀 지 내며 시간감각을 상실했다.

시간감각과 시각이 둔감해진 대신 청각은 예민해졌다. 잠을 청하려 누우면 옆방에서 옷장을 여닫는 소리, 책장을 넘기 는 소리, 샤프를 딸각딸각 누르는 소리들이 들렸다. 천장에 서 웅웅 거리며 바람을 내뿜는 환풍기 소리도 더해졌다. 처 음엔 신경이 쓰여 잠을 못 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 정도로 고시원 생활에 적응했다.

공간에는 적응을 했지만 생활이 엉망이 되고 고시원 폐인이 되어가는 내 모습에 자책하며 창문이 있는 방으로 옮겼다. 낮에 불을 켜지 않아도 되는 방, 아침이 되었음을 시계를 보 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고시원 방문을 열면 창과 문으로 맞바람이 불어 환기도 가능했다. 2만 원으로 누릴 수 있는 호사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햇빛과 함께 소음이 따라왔다. 버스 정류장이 가까워 좋았던 입지가 버스 소음이라는 단점을 동반했다. 새벽부터 자정까지 하루 종일 버 스가 멈추고 떠났다. 버스가 끼익 소리와 함께 멈추면 피식 소리와 함께 버스 문이 열렸다. 이어 돈통에 동전 떨어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이어졌다. 평소라면 흘려버렸을 소리가 예민한 청각 때문에 참을 수 없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2만 원에 햇빛을 산 거지 소음을 산 게 아니었다고 외치지만 어림없는 불만이다. 나는 창이 없는 방이 비길 기 다렸다가 그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대학 4년 중, 2년 넘게 고시원에서 살았던 이유는 고시원 공간이 주는 안정감 때문이었다. 좁지만 안전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쓸쓸했다. 전등을 켜지 않고 방 안에 누워있을 때면 ‘관 속에 누워 있으면 이런 느낌일까?’ 상상을 하기도 했다. 때론 몸이 한없이 땅으로 꺼지는 악몽을 꾸다 허겁지겁 몸을 일으켜 세우며 안도하기도 했다. 어떤 날엔 시끄러워 도망치고 싶었던 바깥 소음에 오히려 귀를 기울이며 사람들의 대화를 훔쳐 듣기도 했다. 친구끼리 약속 장소를 정하는 말소리, 엄마에게 힘든 하루를 하소연하는 전화 통화,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의 대화를 들으며 친구들과 가 족들을 떠올리다 울컥 눈물이 나기도 했다. 그곳에서 나는 안정감과 외로움 사이를 불안하게 줄타기했고 졸업하며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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