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학을 전공했다. 어려서부터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여 입시도 논술 전형으로 준비했다. 전공으로 철학을 선택한 이유도 당대 최고의 석학들에 대하여 읽고 쓰는 것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의 대학 생활은 흥미와 흥분의 연속이었다. 고대철학, 근대철학, 현대철학과 같이 시대별로 구분된 강의부터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비트겐슈타인 등 학자별 강의를 비롯해 윤리학, 논리학, 형이상학 등의 분과별 철학을 수강할 때마다 가슴이 웅장해지곤 했다. 유일하게 가입했던 동아리 또한 윤동주 시인이 만든 인문학 동아리였다.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선배들의 흔적이 스며든 동아리방과 도서관에서 새벽까지 읽고 쓰는 것은 영광스럽기까지 했다.
나는 스무 살부터 학원가에서 일했다. 그 이유도 읽고 쓰는 걸 직업으로 하는 셈이기 때문이었다. 사람을 좋아했던 나에게 학원 일은 마치 좋아하는 걸 했는데 돈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랜 시간 공부했던 논술이나 영어를 가르치는 일은 무척이나 쉬운 일인 동시에 즐겁기까지 했으니 말 그대로 천직이었다. 대다수의 동년배가 노동하며 힘들게 일하던 나이대에 나는 더울 땐 시원하게, 추울 땐 따뜻하게, 심지어 나름의 존경과 인기마저 누리며 일했다. 좋아하는 걸 하며 돈도 받았으니 일하는 재미와 보람 모두 엄청났다. 매일 수많은 지문을 읽고 풀이한 덕분에 방대한 배경 지식까지 쌓을 수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보다 내가 더 똑똑해져 갔다.
세월이 흐르며 자연스레 경력과 실력이 쌓였고 일하던 학원에서는 대체 불가한 자원이 되자 근무 시간은 오히려 줄었는데 급여는 올라가는 역설적인 상황을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고임금 저 노동 전문직이 되니 더 많은 자금과 시간 여유가 생겼고 덕분에 20대부터 하고 싶은 건 어지간히 다 하고 살았다. 20대에 자비로 제네시스 쿠페를 몰았으며 신촌 정문 바로 앞에 자취방을 구하여 학교와 신촌 일대를 내 집 앞마당처럼 누볐다. 학교 근처에 살다 보니 통학 시간과 교통비를 아낄 수 있었고 훌륭한 분위기의 도서관과 신촌 일대의 여러 서점에서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말 그대로 문화 활동과 취미 생활을 돈 걱정 없이 할 수 있었다.
30대가 되어서도 남들보다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20대 때부터 선순환을 이뤄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돈에 여유가 생기니 주거와 이동의 문제를 해결할 선택폭이 넓어졌고 이러한 이점을 활용하니 더 많은 시간과 돈을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하고 싶은 걸 더욱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다. 사실 읽고 쓰는 걸 처음부터 좋아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어른들이 독서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하니 이걸 잘하게 되면 어떤 형태로든 득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여 책을 좋아하고자 노력했던 것에 가깝다. 결론적으로 순전히 좋아하는 걸 했다기보단 잘하면 좋을 법한 것을 좋아하게 된다면 좋을 테니 일부로 좋아하게 만든 셈이다. 달리 말해, 성공하고 싶다면 그 성공에 유익한 것을 찾고 그것을 좋아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나는 인생이 게임과 같다고 생각한다. MMORPG와 전혀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현생 인류가 하고 있는 게임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룰은 간단하다. 죽지 않고 잘 벌고 잘 쓰는 행위를 반복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서바이벌 게임이니 때로는 연대하고 때로는 외면하며 알아서 잘 살아남아야 한다. 심지어 시작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데 종료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특이한 설정도 전제된다. 아무튼 세상에 피투 된 존재로써 자기 나름의 방법대로 부를 축적하면 된다. 접속하는 국가별로 상황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국내 서버는 제법 균등한 기회와 시간이 주어지고 이를 적절히 활용하여 대략 10억 원 상당의 부를 축적하면 상위 10% 자본가라고 하니 10억 원을 모았다는 것은 어지간한 미션은 다 깬 셈이다.
우린 어느 시절보다 많은 기회가 주워진 시대에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어느 시절보다 빠르게 미션을 끝낼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참여하는 미션을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거나 회피하는 것은 한편으로 개인의 자유겠지만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교육을 받을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하물며 핸드폰 하나만 있으면 될 수 있는 유튜버나 블로거 같은 직업으로도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이다. 어찌 보면 이와 같이 하고 싶은 일을 제법 잘하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시대인데 앓는 소리 하기엔 과거의 환경은 훨씬 열악했다. 감히 먹방이나 게임하면서 최소한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나는 여전히 학원가에서 일한다. 다만 교육업 근로자에서 교육 사업을 운영하는 대표자가 됐다는 점이 다르다. 이 일을 아직까지 하는 이유는 역시 읽고 쓰는 것을 마음껏 하기 위해서이다. 다시 한번 아이러니하게도 근로 시간은 줄었는데 수익은 비교가 안 되게 극대화됐다. 하고 싶은 걸 더 쉽게 더 자주 할 수 있게 됐다. 어떻게 했냐고 묻는다면 정말 읽고 쓰는 것에 진심을 다했을 뿐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읽고 쓰는 행위는 자기성찰지능, 문제해결능력, 지구력과 집중력 등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핵심적인 능력들을 향상해 준다. 무엇보다 끈기를 갖게 만들고 단기적인 만족을 지연시켜 장기적인 관점을 형성할 지능을 겸비하도록 돕는 최고의 도구라고 생각한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정말 많고 해야 할 일도 너무 많은 사람으로서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에 공감하지 못한다. 특히 시대가 어쩌고 저쩌고 사회가 이렇고 저렇고 하는 식의 불평불만은 장황한 핑계에 불과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이 시대는 누구나 월 1000만 원을 벌 수 있는 시대라고 확신한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겠지만 당장 나가서 하루에 15시간씩 배달을 하거나 호주 같은 나라에 워홀 가서 고생 좀 하면 누구나 월 1000만 원은 벌 수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누구나 10억 원대 자산가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월 200만 원씩 쓰고 800만 원을 저축한다면 연 1억씩 모이게 되는데 10년을 모으면 10억이다. 이는 금리를 0%로 가정한 결과이며 복리나 투자 수익률도 제로일 때의 경우이다. 평균적으로 30년 이상 일하는 시대이니 꼭 월 1000만 원을 벌지 않아도 대한민국 상위 10% 자산가 기준인 10억은 얼마든지 모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 무한히 반복되는 그럴싸한 핑계로 자기 기만하는 것을 당장이라도 멈추고 엑시트 전략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자유롭게 사는 지름길이다.
심지어 아파트를 구매할 땐 은행 대출을 아파트 값의 80%까지도 빌릴 수 있는데 만약 3억을 모으고 6억을 대출받아서 9억 원대 아파트를 분양받는다면 10년 후에 어떻게 될까? 10년 전 국내 아파트 평균 매매가보다 현재 아파트 값은 2.5배 정도 높다. 그 10년 전에도 연 수익률이 10%에 달했으니 10년마다 아파트값이 2배 수준으로 올랐다는 셈이다. S&P500는 10년 전보다 3.5배 정도 올랐고 이러한 추세는 무려 50년 동안 반복됐다. 심지어 안정 자산인 금값은 10년 사이에 5배 정도 올랐고 비트코인은 300배 이상 올랐으며 코스피도 2배 정도 올랐다. 30세부터 50세까지 20년만 일하며 매월 150만 원을 가장 낮은 수익률을 보인 국내 주식에 투자한다고 가정했을 때 연 10% 수익의 복리가 쌓이면 20년 후 11억 원대 자산가가 된다는 단순 계산이 나온다. 20년 후를 예측하는 건 제법 어려운 일이겠지만 10년 전인 2015년을 기준으로 돌아봤을 때 10년 후에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러니 어떠한 핑계나 고상한 말보단 지금의 삶이 불만족스럽다면 과감하게 10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어라. 월 150이 아닌 월 1000만을 저축하겠다는 의지로 살아가면 불과 6년 만에 10억을 모을 수 있고 그 돈을 다시 한번 etf에 넣어 놓고 연 10%의 수익을 거둔다고 가정할 경우 당신이 현재 매일 8-9시간씩 일하며 버는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걸 명심하라. 10억이 연 10% 복리로 굴러가면 10년 후엔 26억, 20년 후엔 67억, 30년 후엔 175억이 되니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일하는 목적은 부의 생산이다. 노동은 인간의 본질이라는 둥 삶의 목적이라는 둥의 거창한 사유들은 어쩌면 자본주의 시대에서 핵심을 놓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철학을 전공한 나로선 한 때 씁쓸한 사실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단순하게 생각하면 많은 고민이 해결된다. 일단 먹고사는 문제부터 해결하면 많은 것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었다. 자본주의 세상에서 일하는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냉정히 말해 돈을 주지 않는데 그것을 직업으로 할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부의 축적은 선택권과 통제력을 획득하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적 불안이 없는 상태이기도 하다. 그 어느 시기보다 다양한 방식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고 모두에게 나름의 기회가 주어져있다. 안타깝게도 자본주의는 결코 공정한 방식으로 설계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매우 아이러니하고 왜곡된 방식으로 흘러간다. 이와 같은 사실은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게임에 강제 참여되어 있으며 불평한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자본주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인가에 관하여 고민하고 이러한 체제 내에서 성공하기 위한 자기만의 방식을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나름의 방식을 찾게 되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으며 일이 즐겁고 삶이 자유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