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된 삶과 격변하는 삶

by 박태윤

나는 지루한 게 싫다. 변화무쌍한 게 좋다. 정형화된 것보단 유동적인 게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격변하는 이 시대에 내 성향은 적절한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위기대처능력, 문제해결능력, 추진력 등은 내가 제법 활용하는 재능들이다. 남들이 복잡하고 어렵게 느끼는 것들을 나름의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해답을 찾는 것이야 말로 가장 가슴 뛰는 일이다. 이러한 내 특이한 성향은 타고난 부분도 있겠지만 아마 환경에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내 삶은 약간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대부분 평범했지만 항상 또래에 비해선 다사다난한 편의 삶을 살았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내가 어릴 적부터 자주 이사를 다녔다. 지방 출신인 부모님은 나의 영유아기만 고향에서 보냈고 돌즈음에 아빠가 서울에 취직하여 이사를 왔다. 연고가 없던 터이기도 했고 대부분 그렇듯이 사회 초년생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니 조금 더 좋은 곳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둘리가 사는 방이동, 아빠의 여의도 회사와 가까운 당산동, 신축 단지가 들어서던 영등포동 등을 2년 단위로 살다가 7살에 목동으로 이사와 유치원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13년을 살게 된다. 참고로 나는 전현무와 고등학교만 빼고 유치, 초, 중, 대학교까지 동문이다. 전현무는 외고를 졸업했고 나는 진짜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점만 다르다.

이렇게 보면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되던 해부터 홀로 해외로 보내졌다. 당시 해외 유학이 유행처럼 불던 시절이기도 했고 외동아들을 잘 키우려는 부모의 교육열도 한몫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각각의 시절마다 1~2년 정도씩 해외에서 보냈다. 초딩 때도 1~2년 정도 있다가 돌아와서 졸업하고 중딩 때도 1~2년 정도 있다가 돌아와서 졸업하는 식으로 말이다. 덕분에 나는 어려서부터 연락하는 친구가 없다. 당시에는 SNS가 없던 시절이고 내가 고딩 때쯤에나 싸이월드가 유행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1~2년 정도 사귀다 헤어지기를 반복해야 했고 조금 친해질 법하면 떠났으니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절친이라 할 수 있는 친구 만들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지방령이 쓰인 마냥 떠돌이 생활을 했다. 학교가 신촌에 있으니 2호선 문래동으로 이사를 나오며 13년 간 살았던 목동을 떠나게 됐다. 1학년을 마치고 국제 교류 학생으로 또다시 미국에서 1년을 보냈다. 돌아와서 군대를 가기 위해 휴학하고 대전에 있는 아는 형의 학원에서 일했다. 나는 92년생으로 베이비붐 세대에 해당하는데 당시에 입영하려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최소 1년은 기다려야 군대를 갈 수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조금 머리를 써서 재수 좋게 공익을 받아냈고 5년 후 자동으로 전시근로역이 됐다. 어려서부터 가족이나 친구와 떨어져야 하는 강제 이별을 경험하며 분리불안이 있었는데 그게 불면증으로 이어져서 수면제를 먹어야만 겨우 잠에 들 수 있어서 정신과 처방을 받아야 했고 이를 활용하여 재검을 신청하니 4급 판정해 줬다. 공익도 오지게 밀려 있어서 본인이 직접 입영 신청을 하지 않는 이상 영장 날아올 일이 없었는데 법이 웃기게도 공익 판정 후 5년 내에 입영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면제됐던 것이다.

대전 학원에서 1년 좀 넘게 근무하며 경험을 쌓던 참에 세종시가 특별자치시로써 신도시화 되고 있는 우연히 겹쳐 공부방을 창업하게 됐다. 세종시에는 인구 상승 대비 신축 아파트가 과하게 들어서고 있었는데 35평 래미안 신축 아파트 월세가 2000/60 수준이었다. 어차피 집이 필요했기에 계약하고 혼자 35평 아파트에 살기에 너무 넓으니 화장실 달린 안방과 옆에 작은 방 하나만 개인 용도로 활용하고 거실과 나머지 방 하나를 공부방으로 활용했다. 학원가에서 일하며 나만의 학원을 차려보고 싶다는 꿈을 꾸곤 했는데 그 꿈을 불과 24살의 나이에 이루었고 1년 만에 정점에서 매각해 버렸다. 당시 기회의 땅 세종시로 진출하려는 원장들이 많았고 덕분에 기대보다 많은 권리금을 받은 채로 대학에서 만난 가장 친한 친구와 형이 있는 대구로 이사 왔다.

그렇게 25살부터 나의 대구에서의 삶이 시작됐다. 우연히 들린 교회에서 만난 여자친구는 아내가 되었고 우연히 본 수성구의 저렴한 월세방은 또다시 공부방이 되어 5년 만에 7개의 학원으로 성장하게 됐다. 경제적 안정을 갖춘 후 작년에 결혼하여 딸을 낳았고 현재는 매일 아침마다 “아빠아빠”하며 깨우는 딸의 목소리에 눈을 뜬다. 딸을 낳은 이후엔 하루에 4시간 이하로만 일하기로 정했고 나머지 시간엔 되도록 딸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격변하는 삶이 지나 고요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 어쩌면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삶일 수도 있고 또 어쩌면 남부럽지 않은 감사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평생 동안 위태롭던 삶이 잔잔해지니 온몸에서 경고를 보낸다는 것이다. 이렇게 아무런 일 없이 매일 이토록 즐겁고 행복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삶이 온전해지니 자꾸 문제를 만들려고 한다. 아무 일 없는 게 불안하니 무슨 일 있기를 바라는 역설적인 심보이다. 비정상의 반복이 정상이던 삶이 정상만 반복되니 오히려 비정상으로 느낀다. 빈번하던 비상 상황에서의 문제는 잘 해결했는데 일상 상황을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선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상황으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르겠다. 안정적인 삶과 유동적인 삶 사이에서의 균형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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