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증후군]
나는 어려서부터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맞벌이 부부의 외동아들로 자랐고 12살부터 해외에서 유학하며 혼자 살았을 뿐만 아니라 13살 때 부모님이 별거하여 지금까지 20년 넘게 세 가족이 따로 살고 있으므로 일반적인 가족의 통념으로부터 다소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심리 검사를 해보면 나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혈연관계로 맺어진 사람들보다 당장 함께하는 주변 사람들 혹은 오랫동안 만나온 친구들을 가족으로 인식하고 살아간다고 한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낯선 사람과도 금세 친해질 수 있는 능력이 자연스레 개발됐던 것 같고 동시에 안타깝지만 그들로부터 쉽게 상처받거나 거절당하는 느낌을 본의 아니게 꾸준히 받고 살아왔던 것 같다.
자식 입장에서 부모와 맺어진 가족 관계는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지만 그렇기에 원하던 원치 않던 영원한 것이므로 좋게 생각하면 가족이라는 평생의 든든한 지원군을 얻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형제가 없고 청소년기 시절 부모의 안정적인 보살핌과 안식처 바깥에서 살았던 내 심리를 잘 들여다보면 다소 불안정했고 지금도 여전히 온전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나는 사춘기 이후에 부모의 생일이나 어버이날을 단 한 번도 챙겨본 적 없을 정도로 부모에게 무관심한 편이다. 그렇다고 사이가 안 좋다거나 특별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사춘기 시절부터 인생의 2/3를 부모와 떨어져 살았던 그 나비효과가 아직도 부모 앞에선 사춘기 시절 그대로 멈춰버린, 피터팬 증후군을 앓는 아들이 돼버린 것 같다.
[동급최강]
동급최강이란 말을 종종 듣는다.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그래서 동급최강이 되고 싶었다. 항상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것 같고 그 노력이 결과로까지 이어지길 바랐던 것 같다. 실제로 나는 내 나이 또래에 비해 분명 앞서 있는 부분들이 있다. 딱히 관심 없는 분야를 제외하고 내가 최고 수준이 되고 싶다고 마음먹은 영역에선 대부분 동급최강이 됐다. 이러한 아들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는 부모에게 관심은 없지만 최소한 내 걱정은 덜 하고 살게 해 줬다. 오래 만난 연인과 결혼하여 자식도 낳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알아서 잘 살고 있으니 말이다. 종종 아빠가 결혼식 때 했던 말이 기억난다. 요즘 세상에 너처럼 한 푼도 안 받고 결혼식까지 다 알아서 하는 애가 어딨냐며 또래랑은 비할 수 없게 잘 살고 있어서 안심이라는 말대로 나는 동급최강이다.
최근 이혼율이 급증하거나 현대 사회가 점점 더 병들어간다는 말을 빈번히 듣는다. 가족 안에서 안정되지 못하니 밖으로 엉뚱하게 표출되어 문제시된다. 괜찮은 사람 중에 어릴 적 혹은 현재의 가족 상황이 불안정한 경우는 드물다. 이처럼 가족이 주는 영향력은 한 사람을 너머 사회 전반에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하여 가족을 꾸린다는 것은 중대사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결혼의 진정한 의미가 퇴색되고 있는 것만 같다. 지나치게 보여주기식으로 변질되어 진정 사랑하는 연인과의 가족 형성이 아닌 겉으로 드러난 것들에 더 집중한 쇼윈도 퍼포먼스가 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큰 문제겠지만 심지어 본인 능력이 아닌 부모가 다 해줘서 하는 결혼이야말로 가장 큰 사회 악이다. 아무런 능력도 갖추지 못한 사람끼리 결혼할 나이가 됐으니 부모 손 벌려서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데 어떻게 아무런 문제가 없겠는가? 학원에 오는 여러 학부모 중에 상당수가 그냥 그렇게 막 어쩌다 보니 때 돼서 결혼하여 애 낳고 살아가는 수준인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진다.
사실 내 부모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멀쩡히 살아가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르는 두 사람이 결혼하여 지금까지 사회 생활하며 안 죽고 어찌어찌 살아남아 있는 것만 같다. 지금 내 나이에 대비하면 내가 가진 지식과 자산의 1/10도 안 되는 수준일 텐데 이 험난한 세상을 악으로 깡으로 버텨냈고 그 덕에 우리 세 가족이 멀쩡히 살아있는 게 기적인 것만 같다. 다들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우리 세대가 결혼하여 살아가는 것은 더 위태롭게 느껴진다. 물론 우리 세대도 앞선 세대가 그래왔던 것처럼 어떻게 서든 잘 살아남을 것이니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다. 불과 100년 전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정약결혼하고 일제강점기에는 강제 결혼당했으니 결혼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인간 본성에 부합하는 고차원적인 행위인지조차 솔직히 모르겠다. 단지 세상이 조금 더 안정적인 가족 구성원으로 이뤄지길 바라며 그 선한 영향력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너그럽게 만들길 한 아이의 부모로서 바랄 뿐이다.
[코페르쿠니스적 전환]
나는 작년 1월 초에 결혼했고 6월 중순에 딸을 만났다. 이 사건은 내가 알고 있던 가족의 개념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가족 같은 친구”나 “태어나고 보니 가족”의 개념이 아닌 전적으로 “내 선택에 의해 형성된 가족”이란 점에서 내 나름의 가족의 정의가 코페르쿠니스적으로 전회했다. 우리 가족은 명료하게 내 판단과 결정의 연속으로 형성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가장 적절한 때에 가장 적절한 방법으로 가장 적절한 사람끼리 이뤄졌다. 그래서 삶이 훨씬 안정되고 바깥보다 안쪽으로 더 집중하게 됐다.
며칠 전 헤이딜러에서 차를 감정받았다. 5년이나 됐지만 여전히 1억 원대로 제시하는 딜러들이 많아서 조만간 팔 계획이다. 정들었던 차를 파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제는 운전자석보다 뒷좌석이 더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더불어 더 유용하고 가치 있는데 최대한 쓰려고 한다. 누구는 아이 명의로 10년 전에 엔비디아 주식을 사줬다는데 나는 비트코인을 사줄까? 아무튼 이 모든 게 가족을 결성한 후 바뀐 내 사고관이다. 욜로인데 하고 싶은 건 다 해봐야겠다며 살았던 게 불과 작년이다. 가족을 형성하니 진정한 행복, 사랑, 지금-여기의 의미를 조금씩 경험하고 이해하게 된다. 백문이불여일견이다.
[스피노자]
우리는 수많은 선택의 연속선상에 서 있고 선택 가능한 옵션 중 가족도 있다. 나는 더 이상 가족이 생겼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가장이 된 이후에는 가족은 생기는 게 아니고 형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은 스스로 선택하여 행동한 결정에 대하여 책임질 필요가 있다. 가족마저 선택하는 마당에 지금의 나를 형성하는 것 중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게 뭐가 있겠는가?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내 삶은 전적으로 내가 원하여 선택한 결과물들이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선택으로 마무리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