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해를 쫓는 아이들> 출판 일지] #08
캐릭터 시안이 전부 나온 후, 우리는 그림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잡아줄 대표적인 컨셉 이미지 한 장을 만들어야 했다. 이 부분에 있어서 나의 요청은 하나 뿐이었다.
"제가 드린 구도대로 그리되, 달밤님이 가장 자신 있고 잘 살릴 수 있는 분위기로 한 장을 그려오면, 그 이후에 세세한 부분들을 조정해봐요!"
사실 이런 요청은 매우 불친절하다. 구도만 지정하고 그 외의 모든 세부들, 배경에 들어갈 요소, 인물의 표정 등 디테일한 부분들을 전적으로 그림작가님에게 맡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요청은 당시에는 최선의 요구이기도 했다. 나는 아직 달밤님이 '그릴 수 있는' 그림들의 장점들을 전부 알지는 못했고, 그걸 간파할 만한 자료들도 없었다. 무엇보다 나조차 삽화가 주어야 할 분위기의 감을 잡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참고할 만한 이미지 자료도 없었다. 달밤님의 눈이 흔들리는 걸 보았지만 나는 애써 무시했다. 다행스럽게도 그 결과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였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정말 '다행'이다)
그림책의 분위기를 결정지을 컨셉 이미지이자 그림책의 첫 장면(연과 한이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이 완성되자 남은 일은 이제 그림을 그리는 것밖에 없었다. 이 과정은 전적으로 그림작가님의 노고가 투입되어야 하는 단계이지만, 나 또한 손 놓고 놀기만 하였던 것은 아니다. 그림작업은 다음과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다.
사실 달밤님을 만나기 전, 두 번의 협업 동안 모든 장면들의 구도를 구상해두었기 때문에 작업 진행 속도가 빨랐다. '이래서 다들 기회가 오기 전에 미리 준비하라고 하는건가 보다' 생각하며, 나는 구글 문서 하나를 새로 파 각 구도에 필요한 세세한 설명들을 적었다.
예를 들어, 한과 담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의 경우 두 가지 후보가 있었다. 둘 중 어떤 구도가 나을지 회의를 통해 그림작가님과 함께 결정해야 했다.
우선 첫번째 구도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담과 한을 측면에서 바라본 듯한 장면이다. 밤인데다가 동굴 안이기 때문에 무조건 검정색이 부각되어야 했다.
두번째 구도는 동굴 안에 들어가기 전 동굴을 바라보고 있는 한과 담을 묘사했다. 이 경우에는 동굴의 어둠을 강조하기 위해(즉 한과 담이 미지의 심연을 앞두고 있다는 느낌을 부각하기 위해) 하늘을 완전히 깜깜한 밤이 아닌, 어스름한 푸른빛이 도는 저녁으로 설정하려고 했다.
이 장면에서의 동굴은 단순히 공간적 배경으로서의 동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심층심리학적 관점에서 '동굴'이나 '지하'는 주로 의식의 깊은 층, 무의식의 영역을 상징하며, 꿈에서 꿈자아가 동굴이나 지하로 들어가 마주하게 되는 것들은 자신의 무의식에 숨겨진 요소들, 가령 자신의 숨겨진 본성이나 그림자, 오랜 기억 속에 묵혀두었던 과거의 관계나 억압된 욕망 등일 수 있다. 따라서 무의식, 미지의 영역, 신비로운 영역이라는 느낌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강조점을 적어두고, 이를 마주한 인물들의 표정이 중요할 경우, 표정까지도 기입해두었다.
이 모든 요구는 회의 전에 미리 구상되어 회의 시간에 구두로 한 번 더 전달되었고, 달밤님의 의견 중 연출적으로도, 의미적으로도 훨씬 좋은 것들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수용, 수정하였다.
위의 구도 중 최종적으로 채택된 것은 첫 번째 구도였다. 구도 자체의 역동성과 매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선택되었는데, 내지 편집 도중 해당 삽화와 삽입된 글귀가 완벽히 어우러져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우리 둘 다 입을 모아 감탄하였다.
위의 구도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 최소한의 형상 전달에만 중점을 두었고 어둠을 표현하는 선 또한 거칠고 자유분방하다.
그런데 달밤님의 스케치는 간결명료하면서도 형상의 모든 디테일을 살렸다. 그래서 나는 달밤님이 스케치를 가져올 때마다 '어떻게 저 러프를 보고 이런 스케치를 가져올 수 있지?'하고 놀랐다.
이 때의 감동은 겪어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다. 막연한 구상은 있지만 그것을 현실로 구현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 그 구현을 도와줄 친구를 만나, 그 결과가 눈 앞에 하나하나 드러나는 순간들의 즐거움은 세상 어떤 즐거움에도 비할 수 없다.
스케치 이후에는 스케치에 대한 피드백을 드리고 채색에 대해 논의한다. (이 장면의 경우 채색까지 나온 이후에야 수정사항이 생겼다)
앞서 구도 설명에서 이 장면의 핵심은 '어둠'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검정'이 이 장면의 대표 색감이 되었다. 다만 이 검정들 속에서도 한과 담의 형체와 디테일이 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요청을 드렸다. 그리고 이 요청을 달밤님은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담의 갈기와 꼬리의 반짝임을 살린 디테일을 보아라)
담은 이야기 담(談)이라는 한자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 담이 품고 있으며 또한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매우 다채로운데, '동굴 속으로 들어가는 담'은, '검정색 어둠만 가득한 무의식의 세계에 총천연색의 이야기가 들어가는 것'의 상징인 셈이다.
그래서 어둠 속에서도 담의 갈기의 빛을 살린 연출은 매우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또 한의 동그래진 눈과 벌어진 입은 심연을 마주한 사람들이 으레 보이는 두려움과 호기심을 나타낸다.
이 장면에 얽힌 비하인드를 간단히 풀자면, 동굴 벽면의 테두리, 즉 선과 동굴 벽면의 색이 조금 다르다는 피드백이 있었다. 동굴 벽면의 테두리는 고동색인데, 동굴 벽면은 검정색이라 테두리가 너무 튀지 않냐고 달밤님께 물었을 때, 달밤님은 '이런' 이라는 표정으로 웃고는 '예리하시네요' 대답했는데, 그 모습이 웃겨서 웃으며 무어라 했다.
2022년 6월부터 2023년 3월까지 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니, 중간에 휴식한 한 두 달을 제외하고 거의 8-9달 동안 매주, 나와 달밤님은 이 과정을 반복했다. 작업 진행 속도는 2주에 일러스트 2장을 완성하는 정도였다. 당시 센터는 매주 치뤄지는 프로젝트로 인해 매우 빡빡한 일정이었으므로, 달밤님은 깨어있는 거의 모든 시간에 그림을 그려야 했다. 달밤님이 센터의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그 장면을 보는 모든 센터분들이 농담 섞어 나를 '착취자', 혹은 '학대자'라고 불렀다. 나는 미미한 죄책감을 느끼며 달밤님께 자주 음료를 사주었다.
"조금만 더 참아요! 제가 돈 많이 벌게 해줄게요!"
장담할 수 없는 미래에 기대어 약속을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하지만, 당장 내가 달밤님께 해줄수 있는 약속은 이것 뿐이었다. 그 약속을 들을 때마다 달밤님은 귀엽게 웃었다. 종종 예상보다 바빠진 센터의 일정, 좋지 않은 달밤님의 건강 상태, 오랜 작업으로 인한 번아웃 등으로 그림작업이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는 주간에 나는 매우 불안해하며 몰래 속을 태웠다. 그간의 작업 실패 경험은 나에게 '이번 작업도 당장 시작은 했지만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막연한 불안을 심어 주었다. 그럴 때마다 달밤님은 나를 안심시켰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예상보다 조금 늦어질 수도 있지만, 마무리 짓는 거는 자신 있어요!"
달밤님의 책임감은 10달 동안 나에게 큰 위안이었다. 이렇게 서로의 지지와 격려, 그리고 책임감에 힘입어 드디어 저번주 마지막 일러스트가 완성되었다. 물론 아직 수정 작업이 남았지만, 그동안 공을 들인 덕에 수정 작업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예정이다.
매 장면을 그릴 때마다 소소한 일화와 농담, 격려, 그리고 창조성이 있었다. 펀딩을 오픈하고, 글 교정과 표지 및 내지 디자인, 내지 편집까지 거의 완성해가는 이 시점에 지난 나날들을 돌이켜보니 감회가 새롭다. 동시에 약간의 우수마저 일지만, 다시 그 당시로 돌아갈 것이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나와 달밤님은 매순간 작업에, 그리고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다.
매순간의 인연 속에서 태어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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