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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정화 Aug 16. 2023

그럼에도 귀한 인연들, 귀한 배움

[그림책 <해를 쫓는 아이들> 출판 일지] #13

 불행한 사건이 터지면 언제나 그보다 자주 찾아왔을 행운들을 간과하기 마련이다.

 시야는 불행에 국한되고, 그 너머, 그보다 넘쳤을 빛들은 눈 옆으로 새어나간다. 하지만 그보다 어리석고 나 자신에게 해가 되는 실수는 없다. 이미 첫번째 인쇄소 업체에 대한 신뢰가 크지 않았던 나는, 혹시 몰라 두번째 업체에 추가 주문을 넣어두었다. 이 선택은 정말 현명한 것이었다. 첫번째 업체만 믿고 있었다면, 나는 텀블벅 선물전달예정일이 한참 넘도록 선물을 전달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고객의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첫번째 업체의 무례함과 안일함이 다시 한 번 상기된다.)




 다행히 그 뒤에 선정한 업체들은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해주셨다. 수정사항이 생긴 파일 검수부터 인쇄 과정, 배송 진행 상황까지 꼼꼼히 공유되었다. 또 대면 배송 계획이 전부 틀어졌으므로, 모든 선물을 전부 택배로 보내야 했다. 약 200건의 택배를 처리하기 위해 선정한 택배 대행사 역시 배송목록을 발송한 당일에 바로 운송장 번호들을 보내줄 정도로 신속했다. 양장본이니만큼 배송 과정에서의 파손이 걱정되었는데, 막상 받아본 택배는 지나칠 정도로 철저히 포장되어 있었다. 두번째 인쇄소와 택배대행사 덕분에 이 모든 과정이 3주 안에 완벽히 마무리되었다.




 3년 간의 작업과 2월부터 오픈되었던 펀딩이 깔끔히 마무리된 5월 중순, 그 주는 마침 내 생일이 끼어있던 주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첫 책 출간과 생일을 축하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의 연락이었다. 그림책 출판을 함께한 모든 사람들, 그림작가, 디자이너, 교정가, 두번째 인쇄소 업체, 택배대행사, 무엇보다 몇  달 동안 믿고 기다리며 후원해주신 후원자분들... 귀하고 감사한 인연들이 넘쳐났다.  




 하지만 나는 이 주를 마냥 즐기고 자축할 수 없었다. 마치 콩알 하나 때문에 그 두터운 이불 위에서도 편히 잠들지 못한 공주처럼. "하암, 책 출판은 감사하지만, 아직 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바람에 마냥 편하게 기뻐할 수가 없네요..." 날이 갈수록 분노는 커져만 갔다. 이 상황에서 어떤 조치를 취하는 것이 현명할까?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정당한 권리를 되찾으려는 시도를 해봐야 이후에 비슷한 상황이 와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단다. 네가 만약 이 상황이 압도적이라고 그냥 돈 버린 셈 치자, 하고 넘어가다 보면, 나중에 비슷한 문제가 생겨도 또 회피해버릴지도 몰라." 맞는 말이었다. 또다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이 더 많잖아. 책을 만들었으니 이제는 책을 팔아야 하고, 다음 작업도 해야 하지 않겠니? 지금 잃은 돈을 챙기려다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게 될 수도 있어." 역시 맞는 말이었다. 이 분들은 모두 내 상황에 대해 자신이 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을 해주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여러 조치들을 취했다. 민사 절차들을 밟았고, 여러 피해자들의 연락을 받아 피해상황들을 확보했다. 하지만 민사의 효력이 발생하고, 피해자들이 예전부터 꾸준히 발생하고 늘어나고 있어도 마땅히 취할 형사 조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대한민국의 사법체계가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피해자들에게 불리하게 짜여져 있는지, 얼마나 돈 많은 기득권층에게 유리하게 짜여져있는지 알았다. 경찰 측에서사소한 문제들은 적당히 처리하고 만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기죄가 기망 의도의 입증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 입증의 의무가 피해자측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중범죄와 사기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실 이 또한 배움이라면 배움이었다. 그림책 하나 출판하다가 사법 체계의 부조리와 불완전함에 관심을 갖게 될 계기는 흔치 않다. 나의 피해상황에 대한 관심과 울분은 비슷한 피해자들에 대한 관심과 위로, 그리고 부조리한 법 체계로 인해 피해를 해결하지 못하고 끙끙 앓는 숱한 피해자들 전반으로 뻗어나갔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악이 어느 정도로까지 퍼져나갈 수 있는지 탐구했다. 정신병에 걸린 것처럼 자신의 거짓말이 거짓말인 줄 모르고 피해자 행세를 하는 한 인간의 위선을 그저 들어 알고 있는 것과 눈 앞에서 생생히 마주하는 것은 그 충격의 정도가 매우 달랐다. 마치 나와 친했던 누군가가 알고 보니 살인자였다는 비하인드를 알게 된 양 간담이 서늘했다. 한동안 잔혹한 범죄 드라마들과 프로파일러들의 인터뷰 영상, 세계사들을 훑어보면서, 인간의 악행이 어느 정도로까지 잔혹할 수 있는지 가늠해보았다.




 이건 또 나름대로 인간과 세계,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의 계기가 되었다. 이와 비슷한 전화위복의 계기들이 몇 있었다. 적극적으로 뛰어다니며, 내가 취할 수 있느 모든 조치를 취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닥쳐도 (그게 부조리한 사법체계의 방해를 받지 않는 한) 어떻게든 해결해나갈 수 있겠다는 자기 효능감과 신뢰가 쌓였다. 인간의 심리와 악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해보았다. 내 내면에서 치솟아 오르는 분노 중에 부조리와 부당함, 정의롭지 않음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뼈저리게 녹아있는가도 알게 되었다. 그 분노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삶에 대한 분노가 나왔는데, 그 분노들이 그간 내 무기력증과 권태의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도 알았다. 무엇을 해도 그렇게 큰 흥미와 열정을 느끼지 않는 내 심리의 원인을, 우연찮은 계기로 발견한 것이다. 꽤나 고질적인 내 성향의 원인을 파악했다는 점에서, 손해본 몇 백만원은 심리상담 값으로 쳐도 괜찮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처음 사건을 마주했을 때와 약 세 달이 지난 후의 나는 인식의 측면에서 아주 다른 사람이 된 듯하다. 처음 현실에 압도되고 무력감을 느끼며, 악에 대해 분노하던 나는 점점 희미해져갔다. 대신 현실이란 원래 어느 정도 부조리하고 멍청하며, 그것을 보고 악을 쓰고 발버둥치는 것은 소용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외부의 악 못지 않게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의 요소들을 발견했다. 그것들을 억압하는 것은 학습된 도덕성일 뿐, 양심이 아니라는 사실 또한(이 부분이 꽤 충격이었다). 이 치열한 사색과 격렬한 감정들은 이후의 창작에 도움이 되었다. 그간 내 도덕적 검열과 현실에 대한 낭만적이고 순진한 견해로 인해 묶여있던 에너지들이 자유롭게 풀려나기 시작했다. 글을 쓰는 것이 쉬워졌다.




 "모든 불행은 특정한 개인에게 닥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사건은 그저 발생한 것이고, 피해자들은 우연히 똥을 밟은 것이었다. '나에게' 왜 이런 불행이! 하고 외치는 것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었다. 세상에는 이런 류의 불행이 판치고 있고, 그것에 우연하게 걸려 들었던 사람 중 하나가 '내'가 되었던 것이다. 문제를 지나치게 '개인화'하면 상황을 냉정하게 볼 수 없게 되거나 감정에 잠식당하고 만다. 똑똑한 사람이라고 덜 속고, 멍청한 사람이라고 더 속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사기꾼들이 악의를 가진 것이 아니라 위선에 갇혀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시야가 넓어졌다. 나는 불행에서 벗어나 좀더 거시적으로, 밝은 면도 온전히 보게 되었다. 마냥 밝은 면을 바라보며 순진한 몽상에 빠져있지도, 마냥 어두운 면을 바라보며 염세와 비관주의에 빠져있지도 않은 채, 어둠과 밝음 전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훈련. 나는 이번 사건을 통해 이러한 훈련을 했다고도 생각한다. 그렇게 불행한 사건은 그저 불행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시 한번 나의 배움을 위한 계단이 된다. 나는 '어떤 비극이든 희극으로 변할 단초를 품고 있다'는 믿음을 더 강하게 품게 되었다. 그리고 그 밝음 속에 있는 감사한 인연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 그림책을 징검다리 삼아 언젠가 오늘의 뒷이야기도 그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어떤 비극이든 희극으로 변할 단초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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