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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등고 Nov 14. 2018

예멘 내전-세계가 무시하는 전쟁

우리랑 상관이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

중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동하면 우리에게 생각나는 이미지는 뭘까. 검소한 한 가정의 아버지가 작고 투박한 람보르기니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 2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에 손님을 태우며 누추한 집안을 부끄러워하는 한 남성의 모습? 이 이미지의 배경에는 검은 황금이라고 불리는 석유로 쌓아 올린 오일 머니가 있다. 


 때문에 중동과 가난이라는 이미지는 몇 년(2011년 이후 민주화 바람과 ISIS의 등장) 전까지만 해도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석유와 지중해와 인도양을 잇는 천혜의 지정학적 조건을 가진 아덴항을 보유한 예멘이라면 더더욱. 대항해시대에도 아덴항이 중요 항구로 등장한다. 


세계 중요 항구의 기준은 아무래도 대항해시대

 예멘은 동쪽의 사막에서부터 고원과 산, 우거진 숲까지 엄청난 다양성을 가진 땅이다. 그리고 그 땅에는 개코원숭이도 있다. 물론 석유와 석탄이 풍부하다. 이 땅의 특별함은 아덴항에서 극대화된다. 전 세계에 제국주의적 야심(이라고 쓰고 똥이라고 읽는다)을 흩뿌리고 다녔던 영국은 아덴의 지정학적 위치에 집중하고 1802년부터 당시 예멘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의 술탄과 협약을 맺는다. 그리고 1839년에는 아예 무력으로 지배를 해버린다. 여기에 1869년에는 수에즈 운하의 개통되며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1960년대 아덴항, 뉴욕에 이어 세계 2번째 항구였다.


그랬던 아덴이, 그랬던 예멘이 왜 지금은 중동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을까. 문제는 어디서부터 였을까.




내전의 역사


 콜레라는 수인성 질병이다. 또한, 인류에 의해 극복되었다고 생각된 질병이기도 하다. 깨끗한 물과 충분한 영양 섭취만 있다면 말이다. 뒤집어 말하면, 이 둘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언제든 창궐할 수 있다. 마치 예멘처럼. 2017년 9월 기준으로 30만 명이 감염되고 1600명이 숨졌다. 1시간에 1명꼴로 죽는다고도 한다.


2,800만 인구의 3/4에 도움이 절실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처를 할 정부가 없다.  

빨간 부분은 후티(북예멘), 노란 부분은 사우디 주도 연합(남예멘)


 정부가 없다. 이미 예멘은 2014년부터 북예멘과 남예멘으로 나뉘어 내전의 상태이다. 이들이 왜 싸우는지 알기 위해서는 예멘의 역사에 대해서 쪼오금만 알아볼 필요가 있다. 최대한 간단하게 단계별로 알아보자. 


1단계 1517년부터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식민지배


2단계 1839년 영국이 아덴항을 포함한 남예멘을 식민지배(남/북예멘으로 나뉘어 식민지배)


3단계 제1차 세계대전, 오스만 제국 패배로 인한 북예멘 독립(1918)-Yemen Arab Republic(1962)


4단계 남예멘 소련의 도움으로 독립(1967)-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Yemen(1968)


5단계 이후, 먼저 독립을 한 북예멘은 이슬람의 도움을 받기 위해 종교적 권위에 의지했다. 반면, 남예멘은 소련의 도움을 받아 독립을 한 만큼 사회주의를 채택하고, 소련과 제휴했다. 그러면서도 국교를 인정했다. 여튼 이러한 차이로 이들은 1972년과 78년의 내전을 가져온다. 


6단계 그러나 전쟁이 가져온 경제적인 어려움과 막바지에 이른 냉전으로 둘은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협의를 찾기를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그 결과 1990년 5월에는 무혈로 통일을 하게 된다.


7단계 예멘의 통일로 인하여 외국의 투자는 늘었지만, 서로 간의 적의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이는 1994년 남예멘이 연방을 탈퇴하며 폭발하였다.


8단계 3번의 내전 후에 같은 해 7월에 북예멘에 의해 재통일이 되며, 북예멘을 이끌고 있던 살레 대통령의 인민당(General People's Congress)이 의회를 장악하고, 장기 독재를 위한 준비를 해나갔다. 그리고 그의 통치는 2011년 아랍의 봄 물결이 닥치기 전까지 계속되었다.





파괴, 혼돈, (도)망가


 살레 대통령의 통치기간 동안 많은 잠재 불안 요소가 존재했다. 독재자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독재자 기본 소양. 당시 예멘인들이 하루 3달러도 못 버는 동안 수십억 달러를 훔쳤다거나 뭐 그런 것들. 이와 동시에 중동의 특수성, 종교적 탄압도 자행되었다. 특히, 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자이드 시아파가 소외되었다. 재밌는 것은 살레 대통령 자신도 자이드 시아파 가문이었다는 것이다. 이웃해 있는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의 눈치를 봤다고 볼 수밖에 없다.  

자신의 앞날이 보이지 않는 알리 압둘라 살레 전 예멘 대통령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외받는 다수파인 자이드 시아파 그룹이 생겨나는 것은. 1990년대 사우디 보수 종파의 성장, 미국에 대한 적대감 등은 자이드 시아파 그룹인 후티(Houthis)의 등장을 촉발했다. 켕기는 것이 있는 살레 대통령은 이들을 국가전복 세력으로 지목했고, (사실 살레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군과 후티 사이의 전투에서 2004년에서 2010년 사이에 후티의 지도자를 포함한 수백 명이 죽었다.


 2011 아랍의 봄은 독재자를 몰아내는 듯했으나 많은 다른 중동 국가들이 그랬듯 그는 그의 부총리인 하디(Hadi)에게 직을 물려주었다. 거기에 하디 정부가 평화협정으로 후티에게 약속한 땅은 천연자원도 없고, 바다와 접하지도 않은 곳이었다. 정부 내 직위 보장도 없었다. 후티는 당연하게도 하디를 인정할리가 없었다. 후티는 2014년 11월 수도인 사나(Sana'a)를 점령한다. 아덴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사실 수도는 사나였던 거임. 하디 정부는 아덴으로 도망가고, 그곳을 임시정부로 삼았으나, 후티는 이듬해 3월에 아덴까지 점령한다. 하디 정부는 사우디로 빤스런.


 이 정도면 후티의 승리로 내전이 끝나야 되는 걸로 보이나...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 그 이유의 힌트는 위에서 나온다. 첫 번째 힌트는 후티가 자이드 시아파라는 점. 두 번째 힌트는 인접국이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 아라비아라는 점. 


 사우디가 본격적으로 개입을 하고 내전은 더욱 길어진다.




사우디와 싸우기


 사우디는 하디의 핑 신호에 갱으로 응답한다. 8인 갱으로. 근처 걸프만 국가들, 이집트와 모로코, 요르단, 수단, 쿠웨이트, UAE, 카타르, 바레인을 포함하는 연합을 조직하고, 영공과 영해에서 예멘에 공습을 퍼붓는다. 하디 정부에게 아덴을 돌려주기는 했으나, 바위로 계란치기 같아 보이는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  

 수니파가 대거 개입하는 데,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이란 개입에의 뚜렷한 물증은 없지만 하티군은 일개 반군이 가질 수 없는 중무장을 갖추고, 이들에 대항하고 있다. 대항하는 수준이 아니라, 2016년 2월에는 후티 반군이 사우디 내륙으로 진격하기도 하고, 2017년에는 사우디 수도인 리야드 왕궁과 공항에 탄도 미사일 공격을 한다. 이란의 지원이 없다면 힘든 이야기다. 이란은 모른 체한다. 하지만 다들 이란 짓이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 했으면 사우디도 발 빼기가 어렵다. 사우디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사우디는 이미 레바논의 민병대 헤즈볼라라는 실패 사례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지척에 헤즈볼라와 같은 시아파 대리인을 세우는 것을 달가워할 리가 없다. 이는 동시에 레반트 지역에서의 패권과도 관련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국제 사회의 비난이 확대되고, 후티의 게릴라 전술로 인한 국경지대의 정세가 불안해지고, 저유가 정책으로 인한 재정압박과 UAE와의 의견 충돌로 인한 UAE군 일부 철군 등 악재가 겹치고 있다. 

 내전 중에도 이득을 보는 사람 아니 국가는 존재했으니, 미국과 영국, 프랑스이다. 이전에 세계의 경찰인 것처럼, 최소한 '그런 체'라도 하려고 노력했던 미국 대통령들과는 다르게 2017년 4월에 리야드를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은 후티에 대한 사우디의 "강한 조치"를 칭찬하고 1100억 달러의 상당의 무기를 팔아치웠다. 당시 영국 수상인 데이비드 카메론도, 그리고 프랑스도 무기를 팔기 위해 UN의 전쟁범죄 조사 위원단 구성에 물타기를 했다. 



후티의 후진 상황


 그렇다고 후티가 선(善)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럴리가여;; 후티의 가장 근본적 문제는 이들에게는 예멘을 통치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마치 프랑스 대혁명 직후의 혼란처럼 얼떨결에 수도를 접수했다. 이들에겐 어떤 정치적 어젠다가 없다.


 전력은 부족하고, 쓰레기는 쌓인다. 국제사회도 후티에 대해서 싸늘하다. 이란을 제외하고는 국제사회는 후티의 통치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아덴으로 대사관을 옮겼다.


포탄 위에 콜레라 끼얹기


 중재하려는 UN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후티는 UN이 해결책이 그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UN사절을 공격하기도 했다. 물론 후티 안에도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으며 현재 리더도 온건파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질수록 강경파가 득세하는 것은 역사가 보여준다. 하디 정부는 후티의 지배에 대항하는 시위대가 나오길 바라지만 딱히 그럴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이 와중에 후티와 동맹을 맺은 상태에서 사우디와 양다리를 걸치려던 살레 전 대통령은 2017년 12월 4일에 피살된다. 


 무정부 상태가 길어지면서 예멘 내의 평범한 사람들만 고통받고 있다. 사우디와 그 연합은 무기 반입을 막는다는 핑계로 음식과 연료, 약이 북예멘으로 들어가는 것도 막고 있다. 동시에 공장과 식량 저장 창고를 폭격했다. 깨끗한 물과 음식이 없는 상태에서 현대 최대의 콜레라 사태가 생겼다. 뒤이어 디프테리아도 유행하는 걸로 의심되고 있다.




고통에는 끝이 없다


 2018년 1월에는 하디 정부와 동맹관계였던 남예멘 분리주의자들이 UAE의 지원하에 아덴을 장악하며, 북예멘과 남예멘의 2자 구도에서 또 하나의 축이 되어버렸다. 이는 사우디 주도의 반후티 연합국의 구도에도 분열이 생겼음을 의미한다. 


 사막 지역의 특성상 부족으로 뿔뿔이 나뉘어 있는 예멘은 이를 기회로 할거하는 세력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조조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엄백호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정부 상태와 다름없기에 몰락한 IS의 잔당이나 알카에다 등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이 숨어들어와도 저지할 수 없다.


 이미 예멘은 더 이상 '예멘'으로 존재하기는 힘들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최소 2개에서 그 이상의 국가가 수립될 전망이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죽어가는 것은 결국 평범한 삶의 영위를 소원으로 생각하는 예멘인들 뿐이다. 



주 참조 기사 : The economist December 2nd p.19~22 「From bad to worse」


보조 참조 자료

http://www.unchartedwatersnewhorizons.com/downloads/

http://alamree.net/aden_p115/P8/maalla-aden-10.jpg

https://en.wikipedia.org/wiki/Colony_of_Aden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29720

https://www.economist.com/briefing/2017/11/30/how-yemen-became-the-most-wretched-place-on-earth

https://www.liberationnews.org/death-of-saleh-end-of-an-era-for-yemen/

ICG(국제위기 감시 기구)의 April Longley Alley

https://www.economist.com/briefing/2017/11/30/how-yemen-became-the-most-wretched-place-on-earth

saleh al-samad 후티의 리더

https://www.aljazeera.com/news/2017/12/houthi-media-ali-abdullah-saleh-killed-sanaa-171204123328290.html

https://msf.or.kr/article/3630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arabafrica/830208.html


 [잘 알지도 못하면서 기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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