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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등고 Jan 18. 2023

[영화]더 퍼스트 슬램덩크(스포있음)

울컥

감독, 원작, 각본: 이노우에 다케히코 / 주연: 송태섭 / 2023


아는 내용과 뻔한 내용인데 자꾸만 울컥한다.

 

산왕전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고, 송태섭의 이야기는 진부하다. 그런데 뽕이 찬다. 기억 속에 스냅샷으로 남아있던 명장면이 스크린에서 재생되면 소름이 돋는다. 어떤 냄새, 어떤 음악은 나를 과거로 데려다 놓곤 한다. 영화도 그렇다.

언젠가 슬램덩크를 재밌게 봤던 사람이라면, 기억을 새롭게 덮어쓰기에 아쉽지 않 영화였다.


영화의 정보를 전혀 찾아보지 않고, 예고편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들었던 생각은 '이거 좀 프리스타일 같다?'였다. 아마 90년대 생, 아마 남자들이라면 더욱 익숙한 그 농구 게임. 인물이 짙은 펜선으로 표현되어 배경과는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는 그림체에, 시작하자마자 농구코트에서 1on1하다보니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어디선가 '모두 함께 거리로 뭉쳐!' 같은 BGM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다 북산고 멤버들이 한 명씩 그려지면서 앞으로 걸어나가는 타이틀. 송태섭부터 시작해 정대만, 채치수, 서태웅, 강백호. 20년 가까이 거의 떠올려 본 적 없는 이름들이, 화면속에서 그 특유의 펜선으로 하나씩 그려지면, 그 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솔직히 그 때부턴 영화가 어떻게 되든 난 만족할 준비가 되었다.


근데 산왕고는 다 빡빡이라 그리기 귀찮았나 싶긴 했다.


영화는 산왕전과의 경기에 송태섭의 과거가 교차되면서 펼쳐진다. 원작에서는 상대적으로 비어있던 송태섭이라는 캐릭터에 서사를 부여하고자 했던 것 같은데... 너무 익숙한 맛이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사망, 농구를 잘하고 성격좋은 동경의 대상이었던 형의 죽음, 그 형을 쫓아 7번 등번호를 달고 농구에 매진하는 동생, 결국 큰 경기에서 해내는 태섭. 이야기로서는 새로울 게 없다.

새벽에 혼자 런닝하는 송태섭의 혼잣말을 어디선가 나타나 한나가 듣는 것? 좀 무리수였다. 이런 무리수들이 태섭의 이야기에서 중간중간 보인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나는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을 정도로 너그러워진 상태였다.


경기의 연출과 음악, 특히 그림이 정말 좋았다. 압박을 뚫어내는 송태섭과 경기 마지막의 음소거 연출은, 이 것 만으로도 영화를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근데 중간중간 강백호, 서태웅의 티키타카? 이건 못참 지.


물론, 명장면이더라도 극의 흐름에 방해가 될 수 있는 장면-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구요 등-은 꽤 많이 걷어냈다. 담백하게 산왕전의 큰 흐름에 집중하고 잔 가지는 조금 쳐낸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걷어내도 많더라.


훌륭한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영화였다.

2022.01.18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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