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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등고 Mar 08. 2023

[영화]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스포)

긍정과 사랑이 세상을 구원할 거야

감독: 다니엘스(다니엘 콴, 다이엘 샤이너트)/주연: 양자경, 스테파니 수, 키호이콴/2022


온 우주에서 가장 실패한 인생일지라도,

구원은 결국 내 옆에 있던데. 내 안에 있던데.



요즘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만큼 고급 취미가 없기에, 1년에 3번 나오는 통신사 무료 영화 쿠폰을 보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어떤 영화를 봐야 잘 봤다고 소문을 낼까?' 그러다 재미있다고 소문은 자자했지만, 넷플릭스에 없어서 보지 못했던 이 영화가 딱 한 관에서 상영 중인 걸 발견했다. 재상영 중이라고 했다. 하마터면 설날 특선 영화 기다리듯 언젠가 넷플릭스에 뜨기만을 기다릴 뻔 했다.


영화는 3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 에브리씽, 2부 에브리웨어, 3부 올 앳 원스.


세탁소를 운영하는 중국계 이민자인 에블린 왕은 골치가 아프다. 국세청에서 탈세로 자꾸 태클이 들어와 세탁소가 압류 예고가 된 것 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하나뿐인 딸은 대학도 그만두고 여자친구와 동거 중이다. 아버지는 조용히나 있지 옆에서 계속 잔소리 피쳐링을 하는 와중에, 남편은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자꾸 물건에 장난감 눈을 붙인다.


머리 속은 시끄러운데, 딸은 또 자기 여자친구인 베키를 자기 할아버지한테 소개하고 싶단다. 어떤 말을 들을지 뻔하기에 에블린은 베키를 조이의 아주 친한 친구로 소개하고, 조이는 굉장히 실망하고 나가버린다.


압류 여부가 결정될 아주 중요한 미팅을 위해 국세청으로 가는 길, 겁나 깐깐한 국세청 조사관의 사무실로 향하는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남편이 변한다.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더니, 쪽지와 이상한 이어폰을 주고 원래의 한심한 남편으로 돌아온다.


멀티버스 시작.


책상 건너편의 조사관이 뭐라뭐라 하지만, 신경은 온통 그 쪽지에 가 있다. 쪽지에 적힌 3가지를 순서대로 하니 에블린의 몸이 사무실 반대편 청소 도구방으로 빨려들어가고, 그 곳에는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남편이지만 남편이 아닌 사람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에블린은 악으로부터 세상을 구할 유일한 사람이지만, 그 악이 에블린을 곧 찾아올 것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갑자기 뒤바뀐 국세청 조사관에 의해 습격당해 죽는다. 에블린도 같이 죽는다.


그러나, 짜잔! 이 둘이 있던 세계는 통신용 1회용 우주였답니다.


원래의 에블린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가고, 아까 그 습격하던 조사관에게 주먹을 날린다. 사무실은 난리가 나고, 경비가 출동한다. 다시 돌아온 세계의 심한 남편은 왜 그러냐며 놀랜다가 다시 한심하지 않은 남편으로 변하여 경비를 물리친다.


그러나 에블린이 어디있는지 발견한 '악'은 에블린을 잡기 위해 온 우주의 하수인을 원래 에블린의 세계에 불러모으고, 국세청은 모든 우주의 운명이 결정되는 최후의 전장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여전히 영문을 모르는 에블린은 이상한 남편에게 설명을 요구한다. 그 남편은 설명한다. 사실 우주는 어떤 사람이, 선택을 할 때마다 분화되고, 선택이 무한한 만큼, 당신이 존재하는 우주는 무한하다는 것. 당신은 모든 우주에서 존재한다.


자신은 수많은 우주 중에 각 우주에 존재하는 자신을 소환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한 알파 우주에서 온 알파 웨이몬드라는 것. 그리고 이 알파 우주에서는 뛰어난 실험체에게 우주를 뛰어넘는 실험을 거듭한 결과, 모든 우주의 모든 험을 다 가지고 있는 어떤 존재가 탄생해버렸고, 최후의 허무함을 깨달아 버린 그 존재는 우주를 소멸시키려 한다는 것을.


그 존재는 항상 말도 안 듣고, 제멋대로이고, 에블린이 싫어하는 문신도 했지만, 딸 조이이다. 아니, 딸의 모습을 한 알파 조이-조부 투바키-였다.


그리고 이 우주의 에블린은, 그 모든 우주 중에서 가장 최악의 선택만 거듭한 단 하나의 에블린이였기에, 오히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에블린이었고, 그래서 우주를 구할 에블린이다. 우주를 구하기 위해서는 각 우주에서 존재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에블린을 현 우주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행동-갑자기 오줌을 지린다거나, 종이로 손가락 사이를 모두 베인다거나 하는 등-을 통해 소환시켜야 하는데, 그 행위를 점프라고 표현한다.


조부 투바키는 이 에블린의 우주를 찾았고, 이 에블린이 자신처럼 모든 우주의 모든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이 본 것을 에블린에게도 보여준다. 이 둘은 전 우주의 에블린과 조이가 된다. 우주의 허무함을 공유한다. 조부 투바키는 함께 이 허무한 우주를 무(無)로 되돌리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에블린은 그 제안을 거부한다. 그러면서 깨닫는다. 밝고, 천진하며, 물건에 장난감 눈알이 붙이는 한심한 남편은, 자신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투쟁해 온 것이라는 것을. 긍정과 사랑으로. 그 허무한 온 우주를, 온 우주의 에블린을, 조이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그 긍정과 사랑이라는 것을.


에블린은 남편의 투쟁 방식을 따라, 남편의 무기-장난감 눈알-로 자신을 막는 것을 물리치고, 조부 투바키를 조이로 되돌린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다.


이 영화는, 꽉꽉 차있다. 딜도로 사람을 쥐어패거나, 손이 소시지로 된 우주가 나오고, 그 소시지에서 나온 소스를 서로 핥고... 더럽고, 때떄로 역겹기까지 한 B급 유머가 쉼 없이 계속된다. 조부 투바키의 옷은 레이디 가가나 샘 스미스가 입을 것 같이 화려하다.

그러면서도 전개는 엄청 빠르다. 각 우주의 에블린의 스토리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 눈을 떼지 못한다.


또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액션. 예전 성룡 영화를 보는 것처럼 도구나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하여 공격과 수비를 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패러디. 나는 영화를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화양연화라던가, 매트리스라던가, 라따뚜이라던가, 패러디들이 보였다. 아마 영화를 많이 보는 분이라면 더 많은 재미를 발견했겠다 하는 아쉬움은 있다.


그런데 그렇게 여백 없던 영화가 순간 조용해진다. 화면엔 파란 하늘과 뻥 뚫린 협곡, 그리고 바람 소리. 깜지의 빈 공간. 그 곳은 에블린과 조이가 돌멩이가 된 우주. 그 우주에서 자막으로 나누는 대화. 우주의 허무함을 말하는 조부 투바키 돌과 에블린 돌. 허무함을 이겨낸 에블린 돌이 장난감 눈알을 붙이고 조이에게 다가가고, 조이를 따라 절벽으로 떨어지는 장면. 돌멩이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게 뭐라고, 그게 감동적이다. 그게 위로가 된다.


꼭 멀티버스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우주를 가진다. 그리고 그 우주는 보통 허무하고, 지치고, 외롭고, 또 때때로 좆같다. 그럴 때 이런 장난감 눈알같은 것이 각자의 우주를 지탱한다. 나의 우주를 지탱하는 장난감 눈알들에게 내일은 전화 한 번 해야겠다.


2023.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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