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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Jan 18. 2021

지금도 어디선가 죽음은 계속된다

차크라, 그리고 영화 '부력'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공간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이 공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일까. 영화 ‘부력’은 세상이라는 중력에 저항하기 위해 차크라가 띄어올린 이야기로 동남아시아의 현실인 ‘인간 노예제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차크라(삼 행)은 또래들과 달리 학교 배낭 대신 소금 가방을 매며 일터로 향한다. 빈민 가정에 속한 차크라는 가족들과 밥을 먹는 자리에서, “맨날 죽어라 일하면 뭐해요 어차피 한 푼도 못 벌텐데”라고 말하며 자신의 아버지를 원망한다. 빈부격차의 현실과, 노예제의 굴레라는 캄보디아의 갑갑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차크라는 한 친구의 제안으로 돈을 벌기 위해 태국으로 떠난다. 

영화 '부력' 스틸컷

조금이나마 나은 삶을 살고자 떠난 태국에서 차크라는 케아(모니 로스)를 만나게 된다. 500달러가 부족해, 파인애플 공장으로 간다는 말을 믿고 그들이 간 곳은 한 어선. 케아는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그 공간을 벗어나려 하지만 무력에 의해 저지된다. 결국 그들은 ‘죽음의 배’로 향하게 되고, 매일 반복적으로 생선들을 분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찌거기와 같은 생선들을 분류하면, 흰쌀과 물만이 그들이 일용할 양식으로 제공되고 한 사람도 편이 뉠 수 없는 공간이 유일한 휴식처로 그려진다. 


끝이 나지 않는 일에 차크라와 함께 온 노동자들은 그 공간에서 벗어나려 한다. 멍 때리며 일을 하지 못한 노동자에게 “엄마가 보고 싶구나”라는 말로 굵은 체인으로 온몸을 묶어 물로 던지는가 하면, 성적 쾌락을 즐기기 위해 방문한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 헤엄치는 노동자를 붙잡아 무참히 죽이기도 한다. 케아와 차크라는 이러한 현장을 모두 목격하고, 그들 앞에도 ‘죽음’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케아는 묵묵히 일만 하는 차크라에게 “말 잘 듣는다고 쟤 내가 보내줄까? 우린 다 죽어, 너도 죽어 여기서 다 죽는 거야”라고 말하며 경고한다. 결국 롬 란(타나웃 카스로)를 죽이려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이를 계기로 밧줄로 사지가 묶이며 더욱 잔혹하게 물 안에서 목숨을 잃게 된다. 

영화 '부력' 스틸컷


영화는 어선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인물들을 포착하는데 집중하며, 차크라의 심리 묘사는 단지 표정으로만 드러나게 된다. 그의 앞에 죽음이 있다는 것을 실감했을 때도, 어떠한 동요를 하지 않고 대사 없이 묵묵히 일을 하던 차크라의 목적은 ‘돈’이었을 것이다. 롬 란에게 가서, “돈은 언제 주나요”라고 묻기까지 하며 태국으로 온 목적을 잊지 않는다. 하지만 유일하게 의지했던 케아의 죽음 이후 차크라의 심리는 두 가지로 읽힐 수 있다. 이 어선에서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모두를 죽이는 방법’과 ‘이 삶에 순응하며, 여기서 커나가는 법’이라고. 

영화 '부력' 스틸컷

영화는 전자의 흐름으로 전개되어가지만, 케아의 죽음 이후 롬 란에게 생선을 건네며 인정받은 뒤 노동자의 시기를 받게 된 장면은 후자를 연상케한다. 차크라를 시기한 노동자가 그와 같은 방식으로 롬 란에게 물고리를 건네자, 그는 건져올린 나무가지로 그를 죽이기에 이른다. 또, 롬 란은 젊은 차크라를 자신의 과거에 빗대어 이야기하는가하면, 성적인 사진을 건네며 신뢰의 다른 형태를 보여줬고 차크라 역시 어떠한 저항 없이 이들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부력' 스틸컷

하지만 사람을 죽인 뒤 차크라의 심리는 전자의 형태로 변화하게 된다. 자신이 탄 어선, 망망대해에 물에 뜬 시신이 그의 앞에 지나가게 되고 차크라는 어망에서 사람의 뼈를 발견한다. 잔혹하게 죽어간 사람들의 시체로 아비규환이 된 바다에서 하나의 시체를 마주하게 된 차크라는 결국 그 뼈로 모두를 죽이기에 이른다. 마치 이 바다의 시체는 모두 당신들의 ‘인과응보’인 것이라는 메세지를 던지는 듯, 한 소년이 그들을 심판한다. 


결국 ‘부력’은 끊이지 않는 반복적인 일이 일상이 된 ‘죽음의 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죽임을 저지르는 것이라는 잔혹한 이야기를 던진다. 결국 선상의 핵심적인 인물을 차크라가 모두 살해하고 나서야, 자신의 집으로 방향을 틀 수 있었다.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온 차크라는 가족을 찾았고, 먼발치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본다.

영화 '부력' 스틸컷

하지만 차크라는 그들의 앞에 나서지 않고, 뒤를 돌아 자신의 길을 가게 된다. 끔찍한 상선을 경험했다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차크라가 고향을 선택할 것’이라는 생각하게 되지만, 이와 반대로 차크라는 그런 선택을 내리지 않는 것이다. 이미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른 자신의 잔혹함과 냉정함이 있었을 것이고 그곳에 다시 들어가게 된다고 해도 다시 돈, 가난의 연결고리를 끊을 수 없을 것을 인식했을 것이다. 


로드 라스젠 감독은 영화 속 캄보디아라는 공간과 태국의 상선을 묘하게 닮은 공간으로 연출한다. 영화 초반, 차크라는 자신의 일을 하는 밭을 계단으로 오르며 제일 위에서 밑을 내려다본다. 상선 안에서도 조종 키가 있는 구역으로 올라가기 위해, 비슷한 계단을 여러 번 올라가 아래에서 밑을 바라보게 된다. 캄보디아와 태국이라는 공간을 대조하는 것이 아닌 동등한 시각으로 동남아시아의 현실을 그려내, 관객이 영화의 결말이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읽히게 만든다. 

영화 '부력' 스틸컷


차크라는 그저 자신이 배에서 잡은 작은 ‘게’가 되고 싶지 않았을까. 손과 발이 가장 자유로운 공간인 바다 안에서 온전히 자신의 부력으로 뜬 차크라는 케아의 도발로 잠깐의 자유조차 허락받을 수 없게 된다. 하지만 게는 물의 저항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앞으로 나아갔고, 그들의 발을 묶어 놓은 공간은 사실 가장 자유로운 공간인 망망대해인 것을 인식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실제 이러한 일이 동남아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생환률이 단 8% 밖에 되지 않는다”라는 문구로 우리는 영화 중반의 메세지를 다시 읽게 된다.이 썩은 물고기들이 ‘개밥사료’에 쓰인다는 대사는, 사실 우리 주변엔 수많은 노동력의 착취 누리고 있는 것들이 있으며 영화는 단지 그 실상의 단면을 비출 출 뿐임을 전한다. 

영화 '부력' 스틸컷


이는 케아와 차크라가 돈을 들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며 본질적인 것은 “왜 그들이 돈을 벌고자 했는지”, “왜 태국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그러한 공간으로 갈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 말한다.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악순환 연결고리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가에 대해 인식하게 만들며, 관객들에게 묵직한 메세지를 던지며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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