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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Mar 01. 2021

서울 사람들은 행복할까

나만 이방인으로 느껴질 때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드라마 ‘겨우 서른’의 주인공들은 모두 상하이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간다. 만니는 어찌 보면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이라도 하듯, 상하이에서 살아가는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전한다. “누군가 고향을 떠나기로 했다면, 집 밖을 나오는 순간은 자기 자신이 바로 집이다”. 올라가는 집세보다 두려운 건 한 군데에 정착할 수 없는 현실이다. 살고 싶은 곳에 자리잡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가장 크게 느껴질 때, 삶은 다른 방면으로 절실해진다. 


이직을 하기 위해 연봉협상 절차를 걸쳤던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내가 이 정도 받으면, 50만 원은 월세니까 빼고”라고 말하자마자, “너는 왜 월급의 기준을 월세로 생각하냐”라고 다짜고짜 화를 냈다. 월급, 그리고 급여라는 것은 나를 나타내고 내 삶을 결정짓는 중요한 부분인데, 그 부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월세만 낼 수 있으면 된다 식의 나의 마인드를 꾸짖었다. 하지만, 휴학 이후 서울살이 약 3년 차. 짧지도, 길지도 않은 기간이지만 매달 나가는 집 월세는 삶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사고방식까지 바꿔놓았다. 


막 취업을 하고, 지하철을 탔을 때. 가장 크게 힘들었던 점은 콩나물 같이 빽빽했던 사람들과 그 공간의 틈 마저 주지 않았던 각박함이었다. 9호선을 처음 탔을 때, 어떻게든 몸을 욱여넣으려는 할머니를 향해 욕설을 하는 한 아줌마를 처음 보았을 때. 평소, 눈치가 보이면 그저 밖에서 지켜보고 일부러 들어가지 않는 ‘미련한’ 성격이었던 나는 그런 장면을 보고 처음으로 충격을 받게 됐으며, 도대체 들어갈 틈이 없는데 절실한 사람들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서울 지하철은 남다르게 깊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느낀 서울은 지하철에서도, 회사에서도 이어졌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 좁은 집 안에서 나는 안정감을 느꼈다. 여긴 아무도 나를 밀치고, 해치지 않는 조그마한 공간이구나. 물론 책상에서 뒤를 돌면, 아주 가까운 곳에 침대가 있으며 바로 옆엔 부엌, 그리고 화장실이 있는 곳 이지만. 그래서 내 집이 좋았다. 비록, 내 것은 아니었지만 나를 서울 살이에서 지탱하는 것. 하지만, 야속하게도 너무 비싼 이 집이 놓고 싶은 때는 매 순간 존재한다는 것. 


언제는 한번, 집 근처 공원을 걸으며 이런 생각을 했다. 모두가 나 같을까? 특히나 동네 사람들이나 가족끼리 해맑게 웃고 있는 장면을 보자면, ‘저 사람도 이 공간의 사용료를 내겠지’ 리는 생각과 함께, 저 나이 때가 된다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나 그래도 ‘서울살이 잘했다’라는 말을 하며, 이 공간에 둥지를 틀까. 아니면 치솟는 집값을 감당하지 못하고, 아빠와 함께 강원도에서 하하호호 웃으며 지낼까. 이런저런 선택지들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정말로 여기서 버티는 삶이 행복한 것일까 하는 본질적인 물음이 생기곤 한다. 


서울의 사용료는 각박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두 명이 들어왔을 때, 좁은 공간 때문에 친구지만 가족이지만 동선이 부딪힐 일이 생길 때,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었던 순간. 이를 독하게 갈고, 더 넓은 공간으로 가야겠다는 생각만 되뇌었지만. 서울은 “그러기 위해선, 돈을 더 달라”라고 말한다. 하루의 끝에서, 집이라는 공간에서 그만큼의 평안함을 느끼려면 대가를 치루라고 이야기한다. 기꺼이, 나는 오늘도 그 대가를 치르고 그만큼의 가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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