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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Jul 13. 2020

26살 땐, 명품 가방을 들고 있을 줄 알았다

"나 26살 되면, 명품 가방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어"


부산에서 함께 대학교를 다녔던 나와 내 친구는 나름대로의 알맞은 시기에 취업을 했고, 함께 상경을 하며 서울에서 자주 만남을 갖게 됐다. 만나면 '각자의 월급을 어떻게 나누며 사는가'가 가장 큰 화두였고, '나만 이렇게 돈이 없는 건가'라고 절망했던 감정들에 심심치 않은 위로를 주고받았다.


1억이 훌쩍 넘는 전세는 부모님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야 꿈도 꿀 수 없었고, 차선책으로 선택한 50만 원이 넘는 월세에 매달 빠져나가는 적금과 주택청약은 월급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이것뿐이랴, 그렇게 이것저것 돈이 다 나가고 나면 수중에 남은 돈은 50, 60만 원. 30일이 훌쩍 넘는 한 달이 야속할 정도였다. 심지어 나와 내 친구의 회사는 점심까지 지원해주지 않았고, 식비를 제외하면 정작 나에게 투자할 돈은 얼마 남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돈을 적게 버는 것인가? 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그런 편이지만 친구는 이름 있는 회사를 다님에도 그런 것이다. 20살 때 처음 만난 우린, 각종 드라마와 예능을 통해 20대 중반의 사람들이 명품차와 가방을 메고 광화문으로 출근하는 일상을, 또래 아이돌들이 온갖 명품으로 휘감은 모습들을 보아왔다. 하지만 그런 모습과 정반대로 흘러가는 우리네 삶에 자조적인 말을 던진 것이다. 


정말 그럴 줄 알았다. 내가 학창 시절부터 그린 나의 26살, 그리고 20대 중반은 두 명 이상 들어가도 복잡해져서 불편한 원룸이 아닌,  친구들을 불러 홈파티를 하며 인스타그램 속 멋들어진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집에 사는 것이었다. 지하상가, 쇼핑앱으로 산 1-2만 원대 가방이 아니라 200만 원짜리 가방이었고, 2-3만 원 대의 한 번 빨면 늘어나는 티셔츠가 아니라 십만 원 대가 넘는 가로수길 편집샵의 옷들이었다. 20대는 가장 예쁘고, 좋은 걸 누릴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 친구와 나는 종종 연남동으로 쇼핑을 다녔고, 한 가게 앞에 멈춰 섰다. 들어가자마자 셔츠를 본 친구는 "면이 참 좋다"라고 말하자마자 가격표를 보고 이내 옷을 내려놓았다. 


친구는 가게를 나오면서 "이런 옷은 우리가 월 300만 원 정도 벌면 그때 사자"라고 말하며 웃어 보였다. 그 셔츠는 한 장에 9만 원이 훌쩍 넘었던 것이었다. 당시 친구의 말에 든 생각은, "서울에 와서 팍팍해진 걸까, 돈을 적게 벌어서 팍팍해진 걸까"였다. 생각해보면 셔츠 가격은 그렇게 큰 액수는 아니었다. 어쩐지 그 친구는 단지 가격이 비싸서가 아닌, 이 셔츠를 구입함으로 인해 일어날 이후 팍팍해질 삶에 대해 걱정하는 듯 보였다. 


부산에서 꽤나 안정적인 집에서 태어났고, 부족함 없이 자랐던 내가 상경을 하게 된 계기는 너무나도 단순했다. 나는 취준생이었을 당시, 수도권에 사는 전 남자 친구와 교제를 했었고 이 '취준생'이라는 신분과 '장거리 연애'라는 지긋지긋함을 어서 떼어내고 싶었다. 마침 내가 하고 싶었던 직업에 공고가 올라왔고, 사회생활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는 한 달에 190만 원, 연봉 약 2300만 원이 큰돈이라고 착각했다. 


"190만 원이면 괜찮지 않을까?" 상경을 고민하던 나에게 공사에 다니던 당시 나의 남자 친구가 던진 말은 의외로 나의 결정에 파도의 물결을 얹게 했고, 결국 난 상경을 하게 됐다. 


막상 살아보니, 성격이 팍팍해지는 것은 덤이며 '돈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사람의 인생에 있어 비참한 일인지 몇몇 순간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다. 남자 친구에게 고기를 사주기 위해, 여행을 가기 위해 부모님에게 돈을 빌리기도 했다. 월세는 내야 했으니까. 뭐 그런 처절한 감정들을 겪고 나니, 결국 꾸역꾸역 이어지던 남자 친구와의 인연 역시 자연스럽게 정리가 됐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나는 서울에서 살고 있다. 어느 순간, 부모님과 강아지가 있는 삼시세끼 풍족한 부산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가도, 한강 한번 보면 그런 생각들이 눈 녹듯 사라진다. 집 앞 동네 언덕에 올라서면 다시 '여기 있고 싶다'는 미련한 생각이 든다. 


사실 난 지금 당장 명품가방을 사지 못해서, 명품 지갑을 사지 못해서 슬픈 것이 아니다. 그런 삶을 동경했었던 과거의 내가 그렸던 삶이 지금의 삶과 다르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과거의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과 지금 이루고 있는 일이 달라서 슬픈 것이다. 


명품 가방이라는 건, 언제 매든 상관없지만 다만 지금의 나이에 들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픈 것이다. 그러므로, 성공의 상징이 되는 '그것'을 들기 위해서는 앞으로 30대까지 이뤄나가야 할 일과 더불어 굴곡 역시 많을 것이라는 게 슬픈 것이다. 누구는 '배가 부른' 젊음이라고 표현하는 그것들을 그럼에도 앞으로 겪어내야하는 게 슬픈 것이다. 


물론 나와 동년배들이 모두 이런 이야기에 공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은 넓고, 생각보다 내 나이에 나보다 곱절 이상은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 친구들이 있다. 그럼에도 쓰는 이유는 내가 비참해지고 싶어서도 아니고, 나의 이야기를 자랑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지금의 나의 26살은 이랬다, 고스란히 담고 싶은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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