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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튼 Mar 28. 2020

이태원 클라쓰가 보여준 객기와 소신

이태원 클라쓰를 놓아주며



술이 참 달다. 박새로이의 마지막 대사다.



이 말엔 여러 의미가 담겨져있다. 박새로이는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행동 하나로 아버지가 신념을 바쳐 일해온 장가에서 퇴사하게 만들었다. 이후 아버지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며 살았지만, 아버지는 가게로 돌아오던 길 장가의 아들 장근원에 의해 차에 치여 사망한다.



박새로이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둘은 술을 함께 마셨다. 그날은 박새로이가 장근원이 학교폭력을 저지르는 행동에 참지 못하고 폭력을 행사해 아버지가 퇴사한 날이었다. 그날 저녁 술을 기울이던 둘은 아버지는 "술맛이 어떠냐"고 물었고, 그는 "달아요"라고 대답한다. 그 때, 아버지가 하는 말 "오늘 하루가 인상적이었다는 거야"



이후 이 술에 대한 대사는 한번 더 등장한다. 그가 큰 시련을 당하고, 혼자 술을 기울이며 "술맛이 어떠냐"고 묻는 아버지의 환영 앞에서 "씁니다"라고 말하며 오열한다. 나는 그 장면이 너무나 뇌리에 박혔다. 객기와 소신을 지키던 박새로이가 가장 약한 모습을 보였던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의 대사가 온전히 꽉 닫힌 해피엔딩으로 와닿았다. 달달한 맛을 드디어 느낀 박새로이의 성공이 느껴져서. 그가 포차의 이름을 단밤으로 지은 것 역시, 달달한 밤. 매일 술이 달달했을 만큼 인상적인 하루를 보냈다면이라는 뜻이었다. 너무 좋았다. 단밤이라니, 매일 매일 달달한 밤.


그렇다. 나는 이태원 클라쓰가 종영한 지 약 일주일뒤 까지도 지겹도록 드라마를 앓고 있다. 유튜브에서 보던 영상을 또 보고, 또 눈물을 흘리고, 또 웃고. 이렇게까지 드라마 자체를 좋아해보긴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건 나 뿐만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를 꾸준히 보게 된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 드라마는 다른 드라마들과 달리 인생에 대해 곱씹게 만들었다. 분명 복수를 향해 달려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는 맞는데, 그 안에 담겨있는 대사나 설정들이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지금 우리를 말하는 것 같았다.



특히나 현실적이라고 느꼈던 부분은 박새로이가 오수아를 만나러 20대에 이태원을 간다. 이태원에 가서, 장가에 대한 복수 계획을 얘기한다. 갖고 있는 것은 아버지의 보험금 밖에 없는데 어떻게 성공을 한다는 말인지 오수아는 믿지 않는다. 그러자 박새로이는 다짜고짜 "원양어선을 타서 돈을 벌겠다"고 말하며, 무려 7년 동안 그렇게 모은 돈으로 단밤을 차린다.



보통 다른 드라마였으면, 박새로이가 단밤을 차리게 되는 과정까지 그런 서사를 부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예를 들면, 장가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XX가게를 차린 주인공. 그렇지만 그 거대한 기업에 복수하기 위해 애초에 단순한 포차라는 설정을 하지 않았을 뿐더러, 전과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원양어선으로 긴 시간동안 가게 하나를 차린다는 스토리를 넣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닳고 닳은 장대희의 책까지.



일단 그 지점부터 시청자들이 박새로이라는 인물에게 온전히 몰입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장가는 악의 축이라는 생각을 확실히 심어주고, 이태원 단밤을 응원하게 만드는 것.


뿐만 아니라, 조이서와 달리 박새로이는 실리주의보다는 답답한 면을 보인다. 매니저로 등극한 조이서는 마현이의 음식이 맛이 없다고 주장하고, 승권이의 서비스가 잘못됐다고 하며, 토니의 외향적인 모습에 대해 "잘라야 한다"고 이야기하거나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박새로이는 "자신의 사람"이라는 것에 큰 비중을 두고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분노한다.



이런 지점이 "박새로이 좀 답답한 사람이다"라고 느끼도록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새로이는 달랐다. 오히려 마현이에게는 자신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월급을 두배로 주는가하면, 승권이에겐 조폭생활을 그만두고 자신에게 온 마음을 떠올리게 만든다. 뿐만 아니라 토니의 잃어버린 아버지를 직접 찾아주기 위해 두발로 뛴다.



새로이가 사람을 대하는 방법은 상당히 장기적이었다. 이서처럼 당장 맛이없어서, 당장 별로여서 이 사람을 없애야한다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이 사람의 장점을 찾고, 이 사람이어야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 것이다. 그의 소신에 믿음으로 보답하듯, 마현이는 최강포차에서 우승을 했고 승권이는 이서와의 사랑을 지켜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토니는 아버지 대신 할머니를 찾았고, 그 할머니는 투자계의 큰 손이었다. 박새로이가 장가에 의해 큰 빚을 떠안았을 때 그 인연으로 투자를 받게 되어 성공으로 이끄는 발판이 됐다.



남이 보기엔 참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신념, 소신이지만 그가 지켜낸 것들로 인해 이뤄낸건 성공이었다. 마치 돌덩이 가사처럼 말이다. "그저 정해진 대로 따르라고, 그게 현명하게 사는 거라고. 쥐 죽은 듯이 살라는 말. 같잖은 말 누굴 위한 삶인가. 뜨겁게 지져봐 절대 꼼짝 않고 나는 버텨낼 거니까"



난 드라마를 볼 수록 광진 작가의 신념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저 가사도 직접 작사하고 시까지 적었다고 한다. 광진 작가는 "저는 새로이 같은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이 캐릭터를 만드는 건 무척 쉬웠습니다. 제가 살면서 아쉬웠던 것과 돌이키고 싶은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떠올랐거든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 그의 말은 마지막회에 근수가 말했던 "누구나 새로이 형처럼 살 순 없어"라고 부르짖었던 말과 동일한 맥락일 것이다. 누구나 정해진 길이 아닌, 내가 만들어나가고 싶은 길을 걷지만 그 길이 매번 평탄할 수는 없는 것. 그 일을 향해 박새로이처럼 신념 하나만 가지고 달려들기엔 광진 작가 말처럼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뭐랄까. 그런데 그렇게 비현실적이어서, 이 드라마가 더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 특히나 이태원 클라쓰는 시청률이 13회 정도까진 한번도 떨어지지 않은 상승 곡선을 탔지만 14회부터 이미 성공에 다가와버리자 시청률이 주춤하기도 했다. 그 이유 역시 박새로이가 처절하게 앞으로 나아가면서 겪는 전개들에 시청자들이 더 열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난 이태원 클라쓰 같은 드라마가 많이 나와야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드라마. 타임슬립, 로맨스보단 이 드라마는 교훈을 준다. 제대로 살아야한다는 것. 모두가 박새로이 처럼 살 순 없지만, 그 갈림길에 선 청춘들에게 해답을 준다는 것. 그리고 박새로이처럼 살면, 속도는 늦지만 자신의 목표에 정방향으로 향하며 결국 그것을 이뤄낸다는 것. 그 시간 속에 깊은 농도를 가진 삶을 살아간다면 분명 해답은 있을 것이라는 것.



자신의 소신을 지키고 사는 것은 어렵다. 내 소신은 오로지 내 것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이해시키도 힘들다. 하지만 새로이를 보면, 그 끝이 결코 쓰진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찌보면, 위험한 생각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난 소신에 대가가 없는 삶을 살거야"



"내 가치를 네가 정하지마 내 인생 이제 시작이고, 원하는거 다 이루고 살거야"



- 이태원 클라쓰, 박새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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