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튼 Oct 16. 2020

참아라는 말, 함부로 하면 안 되는 말

"네가 첫짼데, 좀 참아라"


어렸을 때부터, 형제간에 어떤 일이 생기면 부모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럼 , 분노를 표출하다말고 혼자 방에 들어가 화를 히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었던 어린아이 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20대가 되었고, 더하여 6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참고, 스스로 감당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성격은 여전히 나에게 내재되어있다.


나도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니 난 정말 그렇게 커왔던 사람이구나 싶었다. 이건 내 심성이 착하거나 무뎌서도 아니고, 오로지 가정환경 속에서 친구들 관계 속에서 살아남아왔던 나의 방식이었다.


사소한  물리적인 아픔이다. 무릎이 아프거나, 손에 화상을 입었을 . 그리고 어딘가 까지거나 다쳤을  누군가 나에게 "괜찮아?"라고 물으면 ", 괜찮아 하나도  아파"라고 말하는  습관이 됐다.


사실 많이 아픈데, 내가 " 아파"라고 말하는 순간 상대방의 우려 섞인 목소리와 어떻게 보면 호들갑 아닌 호들갑,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한 피곤함 같은 것에 대한 회피일 수도 있겠다. 그것들이 반복되다 보니 결국  문제들이 생겨도  아무렇지 않게 버텨나가야 하는 일들이 생겼다.


7 즈음,  친한 지인과 함께 밤거리를 걸은 적이 있다. 동네를 걸으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자신의 힘들었던 과거를 아무렇지 않게 털어놓는 것이다. 그렇게 가까운 사이인  같진 않았는데 말이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내가  나이에 저렇게 덤덤하게 이야기를   있으려면  단단함을 어디까지 쌓아놓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괜찮은 , 모든  꾸역꾸역 견디다 정말 큰일이 왔을  그때도 내가 버틸  있을까 하는 마음과 함께, 그렇게 버티려면 어느 정도 단단해져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었다. 어떻게 보면 남의 아픈 과거에 공감해주지는 못할 망정   궁리나 했다는 것이 참으로 이기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소위 '웃펐다'. 그 상황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이 자라온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도,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어 늙어도 여전히 세상의 변수엔 어쩔 수 없는 것이 인생이라는 게 답이 아닐까. 아무리 쌓아놓아도 한순간에 무너지는 게 공든 탑이 라지 않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안쓰럽다.


또 어떠한 관계에 있어, 내가 혼자 감당하고 싶었던 여러 순간들. 그리고 실제로 혼자 감당했지만, 그렇기에 감정적 이어졌던 순간들의 결과들이 모두 나쁜 방향으로 흘렀기에 요즘은 어깨에 시한폭탄처럼 올려진 짐들을 나눠지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사실 그걸 알게 해준건, 지금 남자 친구의 편지였던 것 같다. 그걸 읽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난 근본적으로 "나누면 반이 된다"라는 말을 믿지 않았고, 그 사람에게 짐을 지어주는 것이 오히려 이 관계를 해롭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말에 그것까지 나누고 싶다는 글을 읽는데 여태까지 이런 말들을 '징징댄다', '부담스러우면 내가 떠나겠다', '말을 해줘야 알 거 아니야'는 식의 대답으로 들어왔던 과거의 사례들로 내가 너무 내 감정과 힘든 것들을 감추는 것에 익숙해진 게 아닌 가 싶었다. 이렇게 말하면 다툴까 봐, 다 털어놓으면 떠날까 봐.


상대 때문에 내가 겪은 고통은 80인데, 단 0.01%의 단순한 메시지로 전달하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화가 났다. 그렇지만 난 차라리 80을 혼자 짊어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느끼기엔 정말 이기적 이게도 상대는 0.01%라고 믿는 것 같았다.


사랑뿐만이 아니다. 8월에 개인적인 일들로 많이 힘들었는데, 정말 2020년 중에 가장 긴 달이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만났던 친구들은, 지금 생각해도 티는 안 냈지만 참으로 큰 힘이 됐다. 물론 친구들에게 나의 아픈 구석을 속속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또 혼자 감당해야 지하는 습성 때문에 아무도 이 일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조금씩 내가 내 아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겠지.


드라마 속에서,  여인이 밖에서는 환하게 웃으면서 집에 돌아와 현실을 마주할  자신의 방에 들어가 꾸역꾸역 눈물을 삼키는 장면들이 , 고등학교 때부터 나에겐 너무 익숙한 가면 같은 삶이었던  같다. 중학교  친구의 사소한 말에 '부럽다' 동시에 무언가 쓰라린 아픔을 겪었을 , 지난해 가족 문제로 개인적으로  아픔을 겪었을 때도 '나만 이런  아니겠지' 싶다가도 ' 나한테만 이런 거야' 식의 생각이 점점 커져 혼자 많이 울었던  같다.


그런데  어쩌면 친구들도  앞에선 가면을 쓰고, 자신만의 개인사를 매번 삼켜낼지도 모르겠지. 어떻게 보면  나쁘지만 위안을 받는다. 반대로  글로 친구들도, 사람들도  글을 읽고 위안을 받았으면.

작가의 이전글 26살 땐, 명품 가방을 들고 있을 줄 알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