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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맨션 Apr 25. 2022

3.장소를 찾을 시간

단편영화 <햇볕을 볼 시간> 제작일지

<햇볕을 볼 시간> 제작일지 

<햇볕을 볼 시간>은 2021년 여름, 6명의 동료와 함께 찍은 단편영화다. 







 03. 장소를 찾을 시간 - 가끔 찾아오는 ‘우연’


 

     “‘우연’이 저에게 찾아올 수 있도록 여유를, 그리고 발견 할 수 있는 눈을 주세요.”

영화 작업에 들어가기 전 마음속으로 되뇌는 기도문이다. 영화 현장이 매력적인 이유는 예상치 못한 일들이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사건은 좋을 수도 있고 어려움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우연히 발생한 일로 섭외한 장소에서 촬영을 못 하거나, 영화의 분위기를 움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운이 좋으면 능력치보다 더 뛰어난 장면을 얻을 수도 있다. (물론 운이 찾아올 가능성은 노력에 비례한다고 믿는다.) 영화는 혼자서 하는 작업이 아닌 만큼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있고 그러다 보니 예상치 못한 사건이 자주 일어난다. 나는 사건 속에서 발생하는 우연을 쭉 끄집어내어 영화에 담는 행위를 좋아한다. 여전히 작업 기간 동안 스태프에게 오는 전화가 무섭지만 (약속한 배우의 스케줄이나 장소가 펑크날까 봐) 어려움을 극복하고 찾아오는 행운을 믿으려 한다. 그래서 예상할 수 없는 영화작업이 매력적이다. 


     단편영화 <햇볕을 볼 시간>은 관악산 밑에서 동거하는 재경과 현수의 이야기 — 관악구에서 오랜 시간 동거해 온 커플 재경과 현수는 여러 번의 이사 끝에 난곡동 옥탑방에 살고 있다. 그들은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돈을 벌며 지낸다. 재경은 독립 영화에서 활동하는 배우이고 다음 작품을 위해 외바퀴자전거를 연습하며 생계유지를 위해 문화센터에서 구연동화 알바를 한다. 현수는 소리를 수집해 음악을 만드는 엠비언트 음악 작곡가이지만 그 또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괴물 소리를 녹음하는 일을 한다. 그들의 일상은 집주인으로부터 월세를 올리자는 연락을 받고 흔들린다. 그즈음 재경은 같은 동네에 사는 이웃으로부터 중고 캠코더를 구매하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동네의 풍경과 마주한다. 이사에 대한 스트레스와 불안한 마음을 품고 있던 그들은 캠코더 속 담긴 동네의 흔적들을 보며 작은 위로를 받는다. 그 날밤 그들은 동시에 따뜻한 꿈을 꾼다. — 를 담고 있다.


     ‘이사’ ‘동네’의 단어를 담고 있는 이 영화에서 장소(로케이션)는 중요하다. 흔히 미디어 속에서 노출되는 서울의 좁고 더러운 골목이 아닌 주인공이 품고 있는 동네에 대한 애정이 이미지로 나타나기를 바라며 수많은 골목을 걸어 다녔다. 대부분의 장면은 시나리오를 쓸 당시 머릿속으로 특정 장소들을 그렸기 때문에 장소를 정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딱 한 장면을 제외하고. 


     주인공 재경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골목 입구에 버려진 의자에 걸터앉아 통화를 한다. 속상한 통화를 마치고 ‘우연’히 고개를 돌리면 캠코더 속에 있던 동네의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이 장소는 동네의 상징 같은 골목이어야 하고, 흔한 배경과 달라야 했다. 그래야 관객들도 “아! 캠코더 속에 나왔던 그 골목이구나!”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골목을 찾기란 영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서울의 골목은 거기서 거기고 특징 있는 골목의 담벼락에는 해바라기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것 (담벼락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 건 좋지만, 영화 속 장소로는 곤란하다) 이럴 때, 나는 ‘우연’을 바라게 된다. “우연이 저에게 찾아올 수 있도록 여유를, 그리고 발견 할 수 있는 눈을 주세요.” 다시 기도문을 되뇐다.


     <햇볕을 볼 시간> 전에 작업한 다른 영화에서도 상징적인 장소들이 등장했다. 그 작업들을 하면서 좋은 장소를 물색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1) 무조건 발품을 판다.

2) 네이버 로드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3) 가지고 있는 장소 리스트에서 가치를 발견한다.

4) 잊는다. (과한 집착은 안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이번에도 위의 방법들을 이용해서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1번과 4번을 이용해서 찾았다. 몇 주에 걸쳐도 마음에 드는 골목이 나오지 않자 그 장소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기로 했다. 시나리오 속 다른 장소들을 먼저 찾기로 계획을 변경하고 골목을 ‘난곡동’에 방문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운명의 장소를 만났다. 난곡동은 비탈진 언덕을 계단식으로 일구어 그 위에 집들을 지어 만든 마을이다. 특이한 마을 구조로 인해 윗동네로 올라가면 아래의 그림과 같이 풀들로 둘러싸인 터널 형태의 골목을 만날 수 있다. ‘우연’이 찾아온 것이다. 나는 두 손 벌려 그 ‘우연’을 끌어안았다. 인물들이 이 동네를 애정하는 이유가, 골목의 풍경이 주는 위로를 설명할 수 있는 장소를 드디어 찾았다. 



     매년 단편영화를 찍는 이유가 뭘까. 글 쓰는 걸 좋아하면 글만 쓰면 되는데, 왜 영화로 만들고 싶은 걸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를 뽑으라면, 가끔 찾아오는 ‘우연’ 그 녀석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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