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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인장맨션 May 02. 2022

4.소품을 만들 시간

단편영화 <햇볕을 볼 시간> 제작일지

<햇볕을 볼 시간> 제작일지 

<햇볕을 볼 시간>은 2021년 여름, 6명의 동료와 함께 찍은 단편영화다. 





04. 소품을 만들 시간 -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 손으로 만든다는 것



    <햇볕을 볼 시간>은 ‘가내수공업 x 자급자족’ 방식으로 동료들과 함께 제작했다. 대부분의 영화 현장은 업무 분담이 정확하다. 단편영화와 같이 규모가 작은 현장은 업무들이 뒤섞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주요 업무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소품을 구하거나 만드는 일은 연출부 (소품 담당)가 진행하고 장소를 섭외하거나 예산을 정리하는 일은 피디와 제작부가 맡는다. 이렇듯 보직에 맞게 업무가 정해져 있다. 그러나 <햇볕을 볼 시간>은 적은 인원으로 진행되다 보니 업무를 자로 재듯 나눌 수 없었다. 우리는 이 일 저 일 도맡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배우가 의상 리스트를 확인해야 했고, 촬영감독이 콘티 정리를 해야 하고, 피디가 조연출 일까지 진행 해야 했다. 연출인 나 또한 시나리오를 쓰고 배우 리딩을 진행하는 것 외에도 소품을 만들고 장소를 섭외하고 스케쥴을 고민해야 했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영화를 만들어 내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극 중 주인공은 어린이 소극장에서 인형극을 한다. 그 장면을 꾸밀 인형극 - 아기 돼지 삼형제 -  재료를 만들어야 했다. 시나리오를 쓴 나 자신을 원망하며 어떻게 소품을 만들지 구상했다. 맡았던 여러 업무 중 가장 곤란하고 생소한 업무는 소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소품을 구하는 데에는 일가견이 있었지만 직접 만드는 건 자신이 없었다.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에는 재능이 없고, 애초에 나와 친해질 수 없는 영역이라 여겨왔다. 


    학창 시절 예체능 수업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 중 미술 실습 시간을 버거워했는데, 교과서에 나온 대로 수행하면 되는 체육이나 음악과 달리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미술은 늘 나에게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술사나 원리를 공부하는 수업이 훨씬 편했던 나와 달리 친했던 대부분의 아이들은 실습 시간을 즐겼다. 친구들이 만든 작품을 보며 감탄하는 동시에 나의 작품(?)을 등 뒤로 숨기기 급했다. 나의 것은 한없이 모자랐고 뻔했고 부끄러웠다. 친구들은 나의 빈 책상을 보고 나서서 실습을 도와줬다. 기꺼이 시간을 내준 친구들 덕에 학창 시절 미술 실습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애초에 잘하는 친구들이 도와주니 어설픔을 견디는 시간과 시행착오를 겪을 일은 없었다. 그렇게 무언가 손으로 만드는 일은 나에게서 멀어졌다. 


    그런데! 결코 만날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만들기’와 마주 해야 했다. 그 시절 친구들도 없는데 말이다. 막막했지만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뭐라도 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극 중 ‘어설픈 인형극’로 설정되어있다는 점이다. 참 다행이다. 우선 인형극의 배경이 되는 무대를 제작하기 위해 우드락으로 기둥을 세워줬다. 그리고 원색의 부직포로 우드락을 감싸고 캐릭터 모양의 부직포 찍찍이를 붙였다. 아기 돼지 삼형제 중 첫째 돼지와 둘째 돼지의 지푸라기 집과 나무집도 만들어줬다. 지푸라기 집은 고깔모자에 지푸라기를 본드로 붙였고, 나무집은 하드보드지에 나무젓가락을 붙여 갈색으로 색칠했다. 일부로 어설프게 만들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다행히 설정에 맞게 만들어졌다.



    이게 어떻게 소품이냐, 미술이냐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초반의 어설픔을 견디는 중이다. 여전히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일은 어렵지만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못 해’, ‘나는 할 수 없어’라고 스스로 주입했던 문장들에 갇혀있었다. 그 문장들로부터 빠져나온 기분은 꽤 짜릿하다. 할 수 없는 건 없다. 하지 않으려고 했을 뿐이다. 머릿속에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 손으로 만든다는 것, 영화와 다를 게 없었다. 영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상대적으로 빠르게 완성된다는 거 아닐까. 요즘은 손으로 만드는 재미에 빠져있다. 머릿속에 떠다니는 세상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는 희열을 느끼며 주위에 돌아다니는 재밋거리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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