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기 죠반니의 산호 목걸이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아르고스의 왕 아크리시우스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고심하던 끝에 델포이 섬의 신관을 찾아갔는데, 바라던 해결책은 고사하고 자신이 땅끝에서 외손자의 손에 살해당하리란 신탁을 받게 됩니다. 겁에 질려 아르고스로 돌아온 그는 곧바로 탑 아래 깊은 곳에 청동으로 감옥을 짓고 하나뿐인 딸 다나에를 가둬버렸습니다.
그러나 구름 위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제우스는 신탁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황금빛 빗줄기로 변신해 땅 밑으로 스며들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감옥으로 들어온 그는 자고 있던 다나에를 흠뻑 적셨고, 그리로부터 공주는 페르세우스를 뱄습니다. 시간이 흘러 아기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아크리시우스는 차마 제 손으로 딸과 손주를 해치지는 못하고 그 둘을 상자에 넣어 바다에 던져버리지만, 제우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상자는 저 멀리 세리포스의 바닷가에 닿아 곧 어부 딕티스의 손에 낚이게 됩니다.
딕티스의 형이자 세리포스의 왕이었던 폴리덱테스는 다나에를 처음 본 순간 반해 몇 번이고 구애했지만 그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기회를 노리던 폴리덱테스는 페르세우스에게 괴물 메두사를 물리치고 그녀의 머리를 잘라 자신에게 바치기만 한다면 더는 다나에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는 눈엣가시였던 그를 먼저 없애버리고 다나에를 취하려는 속셈이었죠. 그러나 왕의 기대와는 다르게 페르세우스는 세 신의 도움으로 과업을 무사히 완수해 냅니다.
메두사의 머리를 자루에 담아 세리포스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바닷가 바위에 쇠사슬로 꽁꽁 묶여 있는 여인을 발견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안드로메다로 에티오피아의 왕 케페우스와 왕비 카시오페아의 딸이었습니다. 카시오페아는 일전 자신의 미모를 과신한 나머지 그것을 감히 님프들의 아름다움에 빗댄 적이 있었는데, 이에 분노한 님프들은 커다란 뱀을 닮은 바다괴물 한 마리를 보내 항구와 바닷가 마을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죠. 어찌할 바를 몰라 전전긍긍하던 케페우스와 카시오페아에게 성난 님프들을 달래기 위해선 딸을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신탁이 내려옵니다.
그림을 봅시다. 무엇이 나타나 있나요?
나치 독일에서 도망쳐 미국으로 망명한 유대인 미술사학자 에르빈 파노프스키는 [모자를 들어올리는 신사] 를 예로 들어 그림에 나타난 도상을 해석하는 방법을 설명했습니다.
처음에는 표면에 집중합니다. 한 남성이 쓰고 있던 모자를 손으로 잡고 들어올리고 있어요.
다음에는 그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모자를 들어올리는 제스처는 중세 기사들이 투구의 가림막을 들어올려 스스로를 위험에 노출시키며 공격 의사가 없다는 뜻을 알리던 데서 생겨난 서양의 관습으로, 한때 널리 사용되었던 인사 방법 중 하나입니다. 저 남자는 저에게 인사하고 있네요!
마지막으로 그의 진정한 의도를 알아내야 합니다. 저렇게 인사하는 방식은 요즘엔 잘 사용되지 않죠. 저 사람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도 않고요. 아무래도 일부러 장난스럽게 행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작품에 나타난 장면을 관찰하고 등장인물들과 사물들이 누구이며 무엇인지 인지한 후, 작품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바탕으로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죠.
이제 바사리의 그림을 보면서 파노프스키의 방법론을 따라 해석해 봅시다.
1. 표면 관찰: 중앙의 큰 바위에 벌거벗은 여인이 쇠사슬로 묶여 있습니다. 그녀의 왼쪽에는 날개 달린 신발을 신은 청년이 있고요. 쇠사슬을 풀어 그녀를 구하려는 것 같아요. 그들의 발치에는 거울과 잘린 머리가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인어들 (수면 밑에는 물고기 지느러미가 보입니다) 이 모여 물장구치고 놀고 있는데, 그들 중 몇몇은 손에 새빨갛고 뾰족뾰족한 무언가를 들고 있습니다. 저 멀리 뒤편에는 이국적인 항구 도시의 풍경이 펼쳐져 있네요.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껴 우중충해 보입니다.
2. 내용 이해: 고대 그리스 신화의 영웅 페르세우스가 에티오피아의 공주 안드로메다를 구출하고 있습니다. 날개 달린 신발과 거울 방패는 신들이 내어준 보구들이고요. 발치의 잘린 머리는 괴물 메두사의 것입니다. 왕비의 교만함을 벌하려 보내진 바다괴물은 그림의 왼쪽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미 죽어 바다에 둥둥 떠 있어요. 사람들이 그것의 목에 밧줄을 감고 뭍으로 끌어올리는 모습이 보입니다. 차근차근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글과는 달리 그림은 단 한순간만 보여줄 수 있죠. 이런 제한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화가들은 오랫동안 고민해 왔는데, 바사리는 페르세우스가 괴물과 싸우는 장면을 과감히 포기하고 한쪽에 작게 그 시체만 표현함으로써 전투가 이미 일어났으며 영웅이 승리했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피에로 디 코시모의 [안드로메다를 구출하는 페르세우스]를 잠깐 살펴볼까요? 바사리의 그림과 주제는 같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사뭇 다릅니다. 디 코시모는 이야기의 완전한 전달을 위해 세 명의 페르세우스를 동시에 나타냈습니다. 괴물에게 날아가는 페르세우스, 괴물과 싸우는 페르세우스, 그리고 왼쪽 저 멀리에서 안드로메다와 꽁냥대는 페르세우스. 다른 등장인물들도 자세히 보면 슬픔에 잠겨 엎드려 우는 이들과 연주하고 춤추며 기뻐하는 이들이 공존하고 있죠. 이러한 표현법을 Continuous Narrative, 이어지는 이야기 방법이라 부르는데, 바사리는 보는 이가 헷갈릴 수 있다는 이유로 사용을 꺼렸어요.
3. 의도 파악: 그렇다면 바사리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요?
14세기 이탈리아의 시인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는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오티움과 네고티움,
즉 내향적인 정신과 외향적인 정신 사이의 균형이 필수라고 주장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열심히 일하며 정치에도 활발히 참여하는 것도 좋지만, 그만큼 홀로 지내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이죠. 그리고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선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자연과 맞닿은 곳에서 지내야 한다고 말했어요. 많은 학자들과 귀족들이 이에 공감해 자신들의 별장에 스투디올로, 그러니까 작은 개인 서재를 갖추게 되었는데, 얼마 가지 않아 원래의 용도를 잃어버리고 귀중품을 모아놓는 금고 내지는 창고로 변질되고 맙니다.
프란체스코 1세는 아버지 코시모 데 메디치의 뒤를 이어 토스카나의 대공이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예술가들과 기술자들을 후원했으며 우피치 미술관을 지은 것으로도 유명하며, 열정적인 과학자이자 연금술사였다고 전해집니다. 대공은 특별한 힘을 가졌다 여겨지던 갖가지 보석과 광석들을 수집해 자신의 스투디올로에 보관했는데, 바로 그곳에 바사리의 그림 또한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보니 뭔가 이상합니다. 상자는 고사하고 선반이나 탁자 하나도 안 보이네요. 그는 어디에 그 무거운 돌덩이들을 보관했던 걸까요? 바닥부터 차곡차곡 쌓아놓았던 걸까요?
사실 벽에 걸린 그림 뒤에는 서랍장이 숨어있었습니다. 그림들은 서랍장의 문 역할을 함과 동시에 서랍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려주는 꼬리표이기도 했어요. 그렇다면 바사리의 그림 뒤 서랍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을까요? 그림을 다시 봅시다.
산호는 예로부터 치유력을 가지고 있다 여겨졌어요. 그리스 사람들은 산호를 곱게 갈아 약으로 썼고, 로마인들도 산호가 질병을 막고 악운으로부터 몸을 지켜준다 믿어 아기가 태어나면 산호로 만든 장신구를 선물하곤 했습니다. 특히 붉은 산호는 특유의 색과 형태 덕분에 중세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생명의 상징인 피와 그것이 흐르는 혈관을 연상시켜 돌림병과 기근으로 고통받던 사람들이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답니다.
산호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가 쓴 설화집 [변신 이야기] 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거기서 그는 메두사의 상처에서 솟구친 피를 해초가 빨아들여 붉고 단단해져 산호로 변했다고 썼어요. 바사리 또한 저서 [회상] 에서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며 산호가 생겨나는 순간에 대해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그림 뒤 서랍에는 산호가 보관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