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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기 Apr 18. 2024

여전사

그리고 쟁반에 담긴 머리

어느 날 장군 홀로페르네스가 이끄는 아시리아 군대가 베툴리아를 침략합니다. 그곳에 살던 유대인들은 산 위에서 돌을 던지며 분전했지만, 얼마 못 가 마실 물이 다 떨어지며 내부로부터 분열이 일어났어요. 이때 과부 유딧이 꾀를 내어 하녀 한 명과 함께 거짓으로 투항해 적진에서 기회를 엿보기로 합니다. 유딧에게 한눈에 반한 홀로페르네스는 자신의 막사 안으로 그녀를 초대해 연회를 베풀었는데, 술을 너무 많이 마신 나머지 그만 곯아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유딧은 정신을 잃은 적장의 칼을 들어 칼질 두 번에 그의 목을 베고, 하녀와 함께 잘린 머리를 들고 베툴리아로 돌아왔습니다. 날이 밝고서야 대장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아시리아 군사들은 크게 놀라 뿔뿔이 흩어져 달아났어요. 그림을 봅시다.

미켈란젤로 메리지 다 카라바조,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1602ca, 캔버스에 유채.

칼이 들어간 자리에서 피가 솟구치는 와중에 아직 죽지 않은 장군은 유딧과 눈을 마주치고 있습니다. 카라바조의 유딧은 적진 한복판에서 대담하게 적장의 목을 베는 여장부라는 설정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어요. 살짝 찌푸린 얼굴에서는 하기 싫은 일을 해야만 한다는 짜증과 불편함이 드러나고 있고, 어정쩡한 자세는 그녀가 홀로페르네스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있고 싶어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화가가 영웅 서사에 초점을 두는 대신 남자를 파멸로 이끄는 팜므 파탈로서의 유딧을 그려내려 했기 때문인데, 이러한 의도는 유딧과 비교되는 늙고 못생긴 하녀의 모습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자르는 유딧], 1620ca, 캔버스에 유채

이 그림에선 잠에서 깨어 버둥거리는 홀로페르네스를 유딧과 하녀가 온몸으로 찍어누르고 있습니다. 더운 피가 사방으로 뿜어져나와 일부는 침대보를 적시며 흘러내리고, 몇 방울은 두 여인의 몸에도 튀어 있네요. 화가는 유딧의 오른팔, 살짝 뒤틀린 채 칼을 꼭 쥐고 있는 손에 빛을 집중시킴으로써 그녀가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카라바조의 유딧과는 정반대로 퍽 적극적인 모습이죠. 젠틸레스키는 이 그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던 걸까요?


아르테미시아 로미 젠틸레스키는 로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여섯 남매 중 첫째로, 열두 살이 되던 해 어머니를 여의고 피사 출신 화가였던 아버지 오라찌오 밑에서 일을 도우며 그림을 배웠어요. 젠틸레스키의 재능을 알아차린 오라찌오는 우연한 기회에 자신과 함께 일하게 된 거장 아고스티노 타씨에게 딸의 지도를 부탁하게 되는데, 이는 커다란 실수였음이 곧 드러납니다. 타씨는 끊임없이 자신의 제자에게 관계를 가지자 집적거렸지만 전부 거절당하자 오라찌오가 없는 틈을 타 그녀를 강간했습니다. 이후 타씨는 자신이 젠틸레스키와 결혼해 둘의 명예를 지키겠다며 오라찌오를 구슬렸는데, 얼마 못 가 유부남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에 격분한 오라찌오가 교황 바오로 5세에게 고발장을 보내 사건을 공론화시킵니다.


긴 재판 끝에 타씨는 "꽃을 꺾은" 혐의가 인정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지만 실질적으로 내려진 형벌은 약간의 벌금뿐이었습니다. 그에게는 로마를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인지, 아니면 5년간 옥살이를 할 것인지 선택할 권리가 주어졌는데, 그는 추방형을 택하고는 죽을 때까지 로마에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그의 충성스러운 고객들, 소위 말하는 빽들이 그가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덕이었죠. 젠틸레스키는 재판에서는 이겼지만 타씨가 매수한 사람들의 거짓 증언으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받았어요. 그녀 자신의 명예는 물론이고 가문의 평판 또한 땅에 떨어졌으며 로마 시내에는 그녀를 음탕한 거짓말쟁이라 부르는 노랫말이 나돌아다닐 지경이었습니다. 결국 젠틸레스키는 로마를 도망치듯 떠나 피렌체로 향하는데, 그곳에 살던 삼촌 아우렐리오의 도움으로 코시모 2세 데 메디치의 눈에 들어 전폭적인 후원을 받게 되었으며 갈릴레오 갈릴레이나 미켈란젤로와 같은 좋은 친구들을 사귀며 재능을 꽃피우게 되었습니다.


로마에서의 비극적인 경험은 아르테미시아의 작품 주제 선정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녀는 압제자로부터 스스로와 민족을 구한 여성 영웅들을 즐겨 그렸는데요. 작가의 다른 그림을 잠깐 살펴봅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야엘과 시사라], 1620ca, 캔버스에 유채.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남자가 보입니다. 발치에 놓인 검의 화려한 장식과 질 좋은 옷으로 미루어보아 꽤 높은 계급의 군인인 것 같아요. 그런 그의 오른쪽에 꿇어앉아 있는 여인은 한 손으론 남자의 머리에 정을 대고, 다른 손으로는 망치를 쥐고 한껏 들어 금방이라도 내려칠 기세입니다. 이 둘의 이름은 야엘과 시사라로 구약성경 판관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도착했을 때 그곳의 이교도들을 쫓아내는 대신 같이 살며 결혼하고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했는데, 이에 분노한 야훼는 그곳의 왕 야빈과 그의 장수 시사라의 손에 그들을 팔아넘겨 스무 해 동안 고통받게 만들었습니다. 백성들이 뒤늦게 뉘우치며 도움을 청하자 야훼는 시사라의 군대를 와해시켜 그들을 구했는데, 난리 도중 시사라는 제 한 몸만 빼내어 도망치다 모세의 자손인 헤베르의 아내 야엘의 천막에 숨어듭니다. 야엘은 겁에 질린 그에게 모포와 양젖을 내어주며 안심시켜 잠재운 뒤 망치와 말뚝을 가져와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 죽여버렸어요.


[잘린 머리]라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어요. 신약성경의 여러 복음서에 헤로디아의 딸로 등장하는 살로메입니다. 헤로디아는 남편이 죽은 후 시숙 헤로데 안티파스와 재혼했는데, 세례자 요한이 이에 대해 비난하자 그를 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마음 같아선 바로 죽여버리고 싶었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들고일어날까 두려웠던 탓이었어요. 그러던 차에 헤로데의 생일잔치가 열렸는데, 헤로디아는 딸 살로메에게 나가서 춤을 추거라 말하며 만약 헤로데가 상을 내리려 하거든 세례자 요한의 목을 달라 하라고 일렀습니다. 살로메의 춤은 헤로데의 마음에 쏙 들었고 그는 그녀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주겠다 약속하였는데, 그녀는 제 어미가 시킨 대로 세례자 요한의 목을 쳐 쟁반에 담아 달라 청했습니다.

귀도 레니,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든 살로메], 1639ca, 캔버스에 유채.

성인의 머리를 들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한 모습의 여인은 방금 일어난 일이 자기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 한 점 감정의 편린도 찾아볼 수 없는 무심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저 두 눈 너머에 도사린 악을 누가 알아챌 수 있을까요? 


이제 아래의 그림을 보고, 나타난 인물이 누구인지 생각해 봅시다.

프란체스코 마페이, [유딧과 홀로페르네스의 머리], 1660ca, 캔버스에 유채.

많은 사람들이 쟁반에 담긴 머리를 보고 이 여인이 살로메일 것이라 추측했었어요. 그러나 이 그림에는 살로메와는 어울리지 않는 요소가 존재하는데, 그건 바로 칼입니다. 칼은 스스로 나서서 싸우는 이를 상징합니다.

살로메는 직접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자르지 않았어요. 스스로 바래서 청한 것도 아니었죠. 엄마 말만 듣고 남에게 살인을 의뢰한 악녀의 서사와 맞지 않는 도상입니다. 마페이의 그림처럼 쟁반 내지는 그릇에 담긴 머리와 유딧을 함께 나타낸 작품들이 독일과 북부 이탈리아에서 몇 점 발견된 것과는 다르게, 칼을 든 살로메의 그림은 지금까지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어요.

산드로 보티첼리, [베툴리아로 돌아가는 유딧], 1472ca, 목판에 템페라.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유딧과 하녀], 1618, 캔버스에 유채.
죠르죠네 다 카스텔프랑코, [유딧], 1504ca, 캔버스에 유채.

여담으로, 화가가 전통적인 도상의 사용을 거부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작품의 주제를 착각하도록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칼을 들지 않은 유딧을 그렸는데요, 그림을 봅시다.

구스타브 클림트, [유딧과 홀로페르네스] 또는 [유딧 1], 1901, 캔버스에 유채.

정말 칼이 없습니다. 하녀도 보이지 않고요, 홀로페르네스 역시 잘린 머리의 반절만 나타나 있습니다. 잠깐... 그러면 그냥 쟁반 없는 살로메를 그린 거 아닌가? 헐벗은 여인의 아름다운 몸과 뇌쇄적인 눈빛을 보다 보니 이 여인이 누가 됐던 유딧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자신의 작품을 자꾸 곡해하는 (?) 사람들에게 질린 클림트는 금속 공예가였던 동생 게오르그를 시켜 [유딧과 홀로페르네스]라고 적힌 액자를 만들어 붙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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