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비치는 사무실 방에서 몇 자 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어렵사리 구해 조금씩 읽고 있다. 이국에서 책을 읽을 수 있으니 새삼 감사하다.
마흔이 되기 전에 타국에서 제대로 된 시간을 보내겠다는 하루키의 결기를 느끼고 있다. 그가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를 집필한 때와 내 나이가 겹친다. 1949년생인 하루키는 1986년 가을 이국생활을 시작했다. 만 3년 동안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살면서 상주적 여행자의 길을 걸었다. 나는 어떤가?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내리는 대가와 나를 같은 선상에 올려놓기가 민망하다. 그래도 1인분의 삶이 주어진 개체라는 점에서,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리라는 점에서 감히 비교를 해본다.
나는 2021년 1월 28일 오후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만 37세의 나이로 처음 미국땅을 밟았다. 나의 시작에는 설렘이 있었고 결의가 있었다. 미국생활 9개월이 지난 지금 나는 어떤가. 아침에 걸어오면서 들은 양동근의 <거울>의 가사처럼 자문한다. ‘어깨를 늘어뜨린 넌 누구니? 초라해 보이는구나, 너의 모습이.’
마흔이 되기 전에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한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어쭙잖은 경험과 판단을 토대로 성장이란 미신에 불과하다고 믿고 있었다. 삶은 본래 허무한 것이라고.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나가는 것이라고. 하지만 무의미에 기반한 소설을 쓴다고 알았던 하루키가 직업인으로서는 결기를 가지고 작업에 임했음을 알고 놀랐다. 그는 마흔을 맞이하기 전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만 2년이 지나면 미국생활을 마칠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나이 마흔이 되는 것이다. 나이는 누구나 먹는다. 하지만 그 시간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통과한 사람의 향기를 품고 싶다. 하루키는 이를 ‘정신적 탈바꿈’이라고 표현했던가.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하루키가 달리기라면 나는 걷기다. 살이 붙어서 오늘 아침 잰 몸무게는 83kg 후반대를 기록했다. 걸으면서 다시 근력을 회복할 생각이다. 걸으면서 몸과 마음을 비우고 나를 보다 투명하게 바라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걷기, 읽기, 쓰기, 생각하기, 정리하기다. 내 선호의 깊이를 보다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앞으로 해나갈 작업의 좋은 참고물을 발견했다. 나는 하루키의 소설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그의 에세이는 틈틈이 탐독할 생각이다. 우선 시작은 <먼 북소리>와 <슬픈 외국어>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새로운 책에 대한 구상이 떠올랐다. 거칠게 생각한 제목은 <미국에서 반미국적으로>다. 나의 반(反)미국적, 반(半)미국적 생활을 정리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