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과 반중력 사이

by 김삶
나의 아침은 봄이다. 중력을 거슬러 일어난다. (촬영: 김삶)

커피를 내리면서 쓴다. 어제 차를 타고 이발소에 들른 후 바로 집으로 갔다. 6시가 조금 되지 않은 시각에 일어나서 차를 몰고 사무실로 왔다. 차를 회사에 대놓고 집까지 걸었다. 하루를 나만의 의식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어쩌면 이번 생은 걷기 위해서 태어난지도 모르겠다. 걷기를 내 생각과 존재를 점검하는 수준기로 사용하고 싶다. 잠자리에서 좀더 뒤척일까 하다가 ‘맞다, 이번 생은 걷기로 했지’ 떠올리고 문을 나섰다.


나의 고민에 대해 쓰려고 한다. 하루하루 떠올리는 나의 서성거림에 대해서 쓰겠다. 어제와 같은 시간에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우선 아침 30분은 쓰는 시간을 확보해야겠다. 차츰 그 시간을 늘려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미국생활을 반(反)미국적으로, 반(半)미국적으로, 반미국적(半未國籍)으로 하겠다고 마음 먹으니 조금 편해진다. 고민이 있다면 그 고민을 피하지 않겠다. 하루키가 수필에 썼듯이 깊이있게 고민을 마주하려고 한다.


직업적인 불만족이 나를 서성이게 한다. 확신을 품고 직장을 다니고 싶지만 나는 틈만 나면 도망갈 곳을 찾고 있다. 마땅한 도피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나를 다그쳐서 마음을 옭아맬 수도 있겠지만 일시적이고 과도적일 뿐이다. 아마 예전이라면 그랬을지도 모른다. 지금 서성거릴 시간이 어딨냐고, 앞을 보고 나아가라고. 하지만 요즘은 나의 서성거림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게 나를 이루는 정체성이라면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나의 본질은 무엇일까? 회사에 다니는 걸 나의 뿌리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내 마음이 평온해지는 사고와 행위가 나를 정의한다. 내가 행복감을 느끼는 일이 나를 설명할 수 있다. 걷기는 나다운 일이다. 달리기가 아닌 걷기. 오랜시간 걷기. 정처없이 걷기. 떠돌기. 정착하는 것이 아닌 유동하는 삶. 부유하는 삶. 중력과 반중력 사이에서 서성이는 삶. 이것이 내가 떠올리는 지금까지의 모습이다. 어느 한 곳에 뿌리내리지 않는 인생.


중력이 필요하다. 나를 끌어당길 힘이 절실하다. 내게는 가족이 있으므로 내키는 대로 살기에는 나도 덩치가 커졌다. 나와 가족의 균형을 잡아줄 중력이 있어야 한다. 중력으로 삼고 싶은 행위를 찾아서 갈고닦아야 한다.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나를 가다듬을 도구는 쓰기 아닐까? 뭐라도 써야겠다. 순간이 힘들다면 힘듦에 대해 쓰고, 순간을 벗어나고 싶다면 벗어남에 대해 쓰려고 한다. 쓰는 행위는 순간을 아끼도록 돕는다.


내 나이 만 서른여덟. 30대 후반이면 산술적인 삶의 반환점을 맞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미국생활은 어쩌면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축구로 치면 하프타임인 것이다. 나는 작전을 세워야 한다. 나는 이기고 있을까? 지고 있을까? 아니면 비기고 있을까? 뭐든 좋다. 지금까지 썩 나쁘지 않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다행스런 인생이라고 여긴다. 골을 노리는 마음은 여전하다. 나는 숨을 고르며 작전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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