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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다

by 김삶

캐나다 휴가 마지막 날이다. 여행을 정리하며 쓴다. 어제는 밤에 뻗어서 바닥에서 잤다. 새벽 4시 반쯤 깨서 침대로 갔다. 조금은 뻑적지근하다. 숙소 앞 스타벅스로 와서 아침루틴을 회복한다. 내일부터는 일상으로 돌아가겠다. 마지막날인 만큼 힘을 내서 밴쿠버 여행을 마무리해보자. 스탠리파크를 가고 노스밴쿠버의 파노라마파크와 이란 이민자 동네도 가보려 한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미국이 그립다. 집이 그립다. 미국과 캐나다를 선택하라고 하면 미국을 고르겠다. 캐나다는 시장이 작다. 미국의 힘을 새삼 실감한다. 남은 기간 국외여행은 없을 것이다. 시간을 아껴서 미국의 다른 주를 여행하고 싶다.

밴쿠버-빅토리아를 오가는 배에서 이름을 응시한다. 난 뭐라고 불리고 싶은가. 태어나서 받은 이름, 스스로 만든 이름, 자연스레 붙은 별칭까지, 이름이 내 관문이다. (촬영: 김삶)

이번 여행은 가족을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싶어한 딸을 위해 짧게나마 플레어(Flair) 항공을 탔다. 긴 자동차여행을 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미국을 여행했다면 조금 더 동기부여가 됐을 것이다. 작년에 시애틀과 포틀랜드를 여행하면서 느꼈다. 하지만 작년 여행을 마치고 나서는 바로 살이 붙었다. 이번에는 살을 빼지 못하고 돌아가는 대신 실리콘밸리에서 체중조절을 시도하겠다. 전화위복이라고 했던가.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나는 비장한 마음을 품는다. 미국에 돌아가서는 다시 출발해야 하는 것이다.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겠다. 노스밴쿠버에 가서 이란인 마을을 보고 오겠다. 씨버스(Seabus)를 타겠다. 어제는 그랜빌 아일랜드를 갔고 돌아오는 길에 보트도 탔다. 엉겁결에 해볼 것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7월 마지막날에 도착해서 8월 1일부터 일주일 동안 빅토리아와 밴쿠버를 여행했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은 새벽에 일찍 나가야 한다. 6시 비행기를 타려면 늦어도 4시에는 집을 나서야 한다.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캐나다 여행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지 않았지만 영국에서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한 형을 만나서 신세를 갚았다. 예전에 빚을 진 마음이 컸지만 이제는 홀가분하다. 9월에는 영국에 가야 한다. 아일랜드를 거쳐서 매튜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오겠다. 여러가지로 2007년과 2008년이 중요한 시기였다. 제대를 했고 유럽에 있었다. 2009년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에 지금 회사에 합류했다. 새로운 기회가 왔을 때 잡아야 한다. 회사생활에 지쳐가는지도 모르겠다. 실리콘밸리까지는 집중해서 잘 마치고 돌아가겠다. 돌아가서 새로운 접점이 생긴다면 그건 그 때 가서 고민하겠다. 이제는 몰두해서 집필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밴쿠버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세 번째 책을 구상했다. <실리콘밸리, 일상의 혁명>으로 가제를 정하고 목차를 짜야겠다. 출판사도 슬슬 접촉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밥벌이로써의 글쓰기>를 번역한 출판사를 접촉해보려 한다. 오랜만에 좋은 책을 읽었다. KQED 라디오 방송국에도 투고를 해야 하고. 할 일이 많다. 이번 캐나다 여행을 반환점으로 삼는다. 남은 반기를 나는 알차게 악착같이 보낼 것이다. 오늘 노스밴쿠버의 이란 이민자 동네를 가서 새로운 분위기를 느끼고 오자. 밴쿠버 화이트캡스의 경기도 볼 수 있었다면 좋아겠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다. 대신 해보고픈 다른 경험을 했다.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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