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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교 일출: 해야 솟아라, 날자꾸나

by 김삶

새해 첫 일기를 쓴다. 오늘을 여는 글이자 어제를 닫는 기록이다. 새해를 맞이해 금문교로 일출을 보러 갔다. 2022년의 마지막날 하루 종일 비가 왔다. 토요일 집에서 미적거렸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에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어설프게 잠을 청했고 새해 첫날 늦잠을 잤다. 일어난 시각은 6시 15분이었다. 전날 확인한 해뜨는 시각은 7시 25분 경이다. 집에서 금문교까지는 차로 1시간 넘게 걸린다. 아침이라 길이 막히지 않는다고 해도 1시간은 빠듯하게 걸릴 터였다. 갈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입고 차를 몰았다. 아내도 간다고 했다. 우리는 이승환의 <천일동안>을 들으면서 골든게이트 브리지로 차를 몰았다. 우리가 미국에서 체류하는 기간이 얼추 1,000일은 된다. 조금 넘겠지만 어림짐작으로 천일이다. 400일이 채 남지 않았다. 디데이 계산기로 찍어보니 390일 정도 남았다. 시간이 얼마 없다. 마음을 다잡아야겠다.

해가 솟는다. 마음을 다잡는다. 연말에 들떴다가 연초에 가라앉았다. 도약을 준비하는 높이뛰기 선수의 심정으로 새해를 맞이하겠다. 나는 힘껏 뛰어올라 날아갈 것이다. (촬영: 김삶)

떠오르는 태양을 보면서 속으로 되뇌었다. ‘할 수 있다, 해낼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해낼 것인가. 만 39세를 며칠 앞두고 있다. 한국으로 복귀할 때 나는 만 40세가 된다. 마흔이다. 마흔이 된 나는 어떤 존재로 우뚝 설 것인가. 왠지 모를 조급함과 초조함이 나를 감싼다. 2021년 나는 포기하고 싶을 만큼 좌절했다. 2022년 나는 저항함으로써 방어했다. 2023년 나는 도전함으로써 비약해야 한다. 비약은 무엇인가. 비상과 도약이다. 그동안 내가 만트라처럼 읊조린 ‘할 수 있다, 해낼 것이다’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나는 2023년을 여는 슬로건을 ‘해야 솟아라, 날자꾸나’로 정했다. 두 문장 모두 대가의 작품에서 인용한 것이다. 박두진의 시에서 ‘해야 솟아라’를 가져왔다. 이상의 소설 ‘날자꾸나’를 가져왔다. 2023년은 첫날 둥그런 해가 솟았다. 날아갈 것이다.


금문교 해돋이를 보고 커피를 한 잔 뽑아서 돌아왔다. 차에는 기름이 얼마 없었다. 억지로 주유소까지는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늘 가던 코스트코 주유소로 향했다. 무슨 일인지 문을 닫았다. 아마 새해 첫날이니까 휴무였을 테다. 다음 목적지를 바로 정하지 못한 채 방황했다. 집 근처로 갈까 고민했다. 빙빙 돌다가 몇 번 간 적이 있었던 세이프웨이 주유소로 차를 몰았다. 목적지까지 거의 왔지만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자동차가 멈춰 버렸다. 머리가 하얘졌다. 보험사를 부를 것인가. 걸어가서 기름을 받아올 것인가. 비상등을 켜고 차에서 내렸다. 몇 분을 고민하다가 뒤에 오는 운전자에게 말을 걸었다. 1킬로 정도 되는 곳에 있는 주유소까지 태워달라고 했다. 고맙게도 나를 내려줬다. 기름통에 2갤런 휘발유를 채웠다. 나가는 차를 얻어타고 비상 정차한 곳에 다시 왔다. 새해 첫날 야생으로 나온 심정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온실 속에서 편안하게 살고 있었던가.


박경리 선생이 토지 서문에 썼듯이 나도 예감을 응시하며 마친다. “포기함으로써 좌절할 것인가. 저항함으로써 방어할 것인가. 도전함으로써 비약할 것인가. 다만 확실한 것은 보다 험난한 길이 남아 있으리라는 예감이다. 이 밤에 나는 예감을 응시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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